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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Apr 09. 2023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_스즈메의 문단속

feat. 스포일러 주의

아이를 낳고 나서 제일 마음을 졸이게 된 소식이 세상의 사건사고 소식이다.


특히,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들, 아니 어쩌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들.

가까이는 터키의 지진이나 이태원 사고가 그랬고, 멀리는 세월호 사고 같은 것들.


가슴에 사무치고 슬픈 마음이 어디 그 가족들에 비견하겠냐마는.

같은 시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만약 그런 재앙을 미리 막을 수만 있다면?!



오랜만에 본 영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


내가 본 영화 중 이상한 제목 베스트 five 안엔 들어갈 듯.

아무리 그래도 문단속이 뭐냐....했는데 보고 나니 문단속이 맞다... 문단속해야지...로 끝나는 영화.


내용은 '평범한 고등학생인 스즈메는 등굣길에 아주 우연히 일본 내의 재앙이 시작되는 문을 단속하는 문지킴이를 만나게 되고 그러다 그와 얽히게 되어 재앙을 막으려 국내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라는 다소 황당하고 급작스러운 전개이지만.


일단 그 문지킴이가 훈남이고(다소 이해되는 부분)

스즈메가 그런 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고(매우 이해되는 부분)

거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채색과 디테일한 일본 풍경 묘사가 있기에

오랜만에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항상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만나는 이어지는 지점,

그리고 그 세계를 그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거 같다.

이 영화도 비슷한 모양새여서... 전작이랑 비슷하구나 했지만.


스즈메가 사실은 재앙의 생존자라는 것이 영화 말미에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변한다.


동일본 대지진.

그게 일본인들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평생 동안 살아왔던 고향을 잃고, 가족, 친구, 이웃들이 죽었고, 뿔뿔이 흩어졌고,

두려움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만큼 흉터가 되어 남았지만

그걸 드러내기보다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그런 것.

그게 재앙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스즈메는 재앙이 나오는 문을 닫아버리기 전에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의 일상들을 떠올리는데

황폐했던 곳이 여러 사람들의 즐겁고 평범한 기억으로 덧입혀지는 것들이 참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소타라는 남자주인공이 항상 기도문처럼 외우는 신이시여...라는 주문이

처음에는 참 오글거린다...일본스럽구나...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 기도문을 생각하며 그들의 안녕을 염원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도 근래에 큰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4.16도 그렇고. 이태원도 그렇고.

정치적인 일들을 차치하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들이었고, 사고를 당한 사람뿐 아니라 그걸 지켜본 사람들의 가슴에도 생채기처럼 남아있는 기억인 거 같다. 그래서 애써 잊어버리고, 그 일이 없던 일인 양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래도 두렵다. 언젠가 내가 그런 희생양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님 내 아이가, 혹은 내 가족이? 그런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어쩌면 이 사건들을 가지고 여러 분쟁이 나오는 것이 모두에게 죄의식처럼 남아있는 기억을 또 헤집는 일인 거 같아서 불편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냥 다 잊어버리고 싶은데. 이런 영화를 보면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

그런 싸움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


마지막에 엄마를 잃고 우는 4살 스즈메에게, 미래의 스즈메는 말한다.


'스즈메, 지금은 아무리 슬퍼도.

스즈메는 앞으로 잘 클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미래 따위 무섭지 않아.

너는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널 사랑해 줄 누군가와도 많이 만날 거야.

지금은 캄캄해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꼭 아침이 올 거야.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되어 갈 거야.

꼭 그렇게 될 거야. 그건 확실히 정해져 있는 일이야'


그래, 지금은 그 기억이 너무 힘들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고.

그래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그걸 직접 겪었던 어렸던 아이들에게. 그걸 지켜보며 마음 졸였던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은 이런 위로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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