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눈치있게 모른 척.

컨셉놀이와 과몰입 세계관



오랜 기간 무명에 가까운 시절을 보낸 개그맨 추대엽은, 단 한 번의 유튜브 방송 출연으로 일약 스타가 되어 버렸는데요. 바로 유병재 채널에 '카피츄'로 출연한 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산에서 평생을 산 산사나이인 '카피츄' 선생이 부르는 노래가 부를 때마다 어떤 노래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죠. 사실 해당 컨셉은 추대엽이 오랜 기간 밀던 컨셉이었는데요. 심지어 공중파 개그 프로그램인 MBC에서 아예 정엽이나 김태원 짝퉁 가수로 등장하기도 하고, 현장 코미디 계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코미디 빅리그에서도 조세호와 함께 컨셉을 잡아 활동했었죠.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불타오르고 있을까요?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겁니다. 기존의 특정 가수 짭퉁 컨셉이 아니라 산에서 살아 평생 다른 음악을 안 들어봤다거나, 카피추와 같은 copy를 연상시키는 이름이지만 또 그 안에 디테일한 설정이 있는 점(카피추의 뜻은 가능한 한 추한것은 피한다 라는 말이랍니다 ㅋㅋㅋ)  같은 것들이 살렸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의 노래도 기존의 그의 노래에 비해 조금 더 발전되기는 했구요.


오늘 아침, 그런데 조금 다른 실마리를 찾아 보았습니다. 해당 클립을 촬영하는 것이 전참시에 방영되었더라구요. 해당 클립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클립 댓글에 보면 눈에 들어오는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한테 밈 보여주면 나오는 반응 그대로네"


카피추의 노래 '그냥 웃지요' 가사는 이렇습니다.


"여보세요 효영이 전화 아닌가요. 

맞아요 효영이 지금 씻어요




음..


어허


..음..


너 누구냐~~~"


이런 플로로 쭉 가죠. (써 놓으니 좀 이상합니다만 꼭 클립을 보세요)

그런데 카피추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이 노래에 대해 전참시 패널들의 표정이 볼만합니다.




이영자, 전현무, 양세형이 보이는 반응은 아주 심각합니다. 무슨 불륜 현장을 잡은 것마냥 표정이 뜨악해지죠. 부모님들에게 밈을 보여주면 딱 반응이 그렇거든요. 관짝춤을 보여주면 장례식장에서 무슨 짓거리인지 아주 예의가 없다는 평가를 하는 것 같은 이야기죠. 


세계관에 과몰입하는 MZ 세대 이야기는 정말 많이 보셨을 겁니다. 세계관 안에서 부캐와 본캐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 된지 한참이 지나서야 TV에서 받아들이고 있죠. 근데 그걸 완벽히 살려서 나오는 프로그램은 아직 없습니다. '놀면 뭐하니'요?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다른 캐릭터인 것처럼 연기하지만 결국 유재석의 친분과 인맥, 영향력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놀면 뭐하니'의 부캐는 부캐라기보다는 연기자가 맡은 배역 정도라 생각합니다.


TV가 유튜브에 밀리네 마네를 떠나서, 이미 TV는 나이 든 사람들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TV를 통해 새롭게 발굴되는 사람이 있던가요?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50대까지도 올라갑니다. 탁재훈, 박명수, 지석진 등은 물론 재능이 넘치고 셀럽의 기질을 타고 난 사람들입니다만 너무 늙었죠. 이효리도 10대들이 보기엔 이미 경로당 수준입니다. 과장 아니냐고요?



계산해봤더니 05년생에게 79년생인 이효리는 85년생인 제게 59년생 현숙 뻘입니다(…) 


나이가 많아질 수록 안 좋은 버릇이 뭐냐면 평가를 하게 됩니다. 도덕적, 사회적 기준을 갖고 어떤 현상을 평가를 하죠. 그리고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코미디는 이런 형태가 'punch line/straight man', 일본어로는 츳코미/보케 같은 말로도 표현이 됩니다. 컨셉을 잡고 있으면 그걸 후려치거나 비틀어서 웃음을 주고는 했죠. 그런데 그런 웃음의 형태가 지금은 많이 없어져 갑니다.




카피추를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이고 계속 웃지만 끝까지 컨셉을 놓지 않는 유병재가 카피추를 살리고, 소련이 무너진 한참 후에 태어난 소련여자를 진짜 소련 여자처럼 대하는 팔로워들이 더 그들의 영향력을 키워 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상대방의 컨셉을 유지하도록, 세계관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상부상조형 구조가 더 세계관의 확장과 유지, 구축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여전히 그런 세계관이 어른들의 세계로 나오면 현실 세계의 잣대를 들이대어 올바른 것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카피추가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유튜버가 라디오스타에 나왔을 때, 자신의 최애캐가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거 기분 나쁘셨던 분들 많을 겁니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관과 컨셉 놀이는 분명 트렌드고 특히 MZ 세대에서 인기다

- 세계관과 컨셉은 디테일하고 깊어야 하며,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교정하려고 하면 거부감을 일으킨다

- 현재의 권력은 TV에 아직 있을지 모르나, 미래의 헤게모니는 이미 그 상자 밖에 있다

- 세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점은 충돌하면서 바뀌어 갈 것이다.

- 어쨌든 이미 꼰대가 된(ㅠㅠ) 우리의 대응 방식은 그들의 세계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인정하면서 반응하며, 잠시 현실을 잊고 신나게 노는 것이다.

- MZ 세대가 바보라서 컨셉에 호응해 주는 게 아니다. 교정하려 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비대면의 시대, 쏠림은 가속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