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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얻어지는 권위의 자리는 없다

오래 일했다고 존경받을 수 없는 시대를 사는 고민들


주말에 대사형. ‘빅 브라더’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정무문’으로 유명한 ‘견자단’이 불량 학생들이 가득한 반의 선생님으로 부임하는 영화죠. 영화는 그리 기발하지는 않습니다만, 생각했던 스토리를 잘 전달한 영화였습니다. 



 이야기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갑니다. 불량 학생들(이라고 해봐야 그냥 공부 안하는 좀 노는 애들 같지만)이 신입 교사에게 갖가지 장난을 치지만 전직 미국 특수부대 출신의(..) 선생님은 가볍게 모든 장난을 피하고 오히려 아이들을 곯려줍니다. 놀라운 신체 능력과 무술 실력, 그리고 매끈한 포마드 머릿결은 학생들이 그를 허투로 볼 수 없게 만들죠.  


교권이라는 말이 우습게 느껴지는 건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하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 ‘배틀로얄’에서는 선생이 칼을 맞지 않았던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범대 출신인데, '아부지 뭐하시노'가 통하던 시절에 선생님을 했다면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생각해보면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지위'만큼 확고한 급 차이를 나누는 것도 없는데요. ‘교권’이라는 말이 ‘무너진다’라는 동사와 붙지 않았던 시절은, 지위에 따른 권리가 당연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이라는 지위가 맹목적인 신뢰와 존경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존경은 커녕, 이제 말을 듣는 사이도 아닌 듯 하네요. 권위에 대한 존중보다 조롱이 더 익숙한 사회가 된 거죠. 



사실 학생들은 몇 십년간 능력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스템을 충실히 체화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 능력이 본인의 지력이거나, 부모의 재력이거나의 차이일 뿐 같은 '지위'에 있어도 능력에 따라 대우와 혜택,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바뀐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펜트하우스'와 '스카이캐슬'이 다큐가 아니라 드라마로 봐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등장 인물이 너무 예쁘고 잘생겼다는 것 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그렇게 20여년간 충실히 교육받고 당도한 곳, 바로 회사입니다. 직급제가 살아있건 없건 간에, 우리는 하루에 같이 열 시간씩, 일주일에 5일씩 일하다 보면 바로 느끼게 됩니다. 이 사람은 이것이 장점이고, 저것이 단점이구나. 그리고 맘 속으로 딱지를 붙이죠. '일못' '일잘'


능력주의가 불러온 탈권위화를 아직은 마음껏 드러내기 힘든 것이 지금의 회사 구조죠. 하지만 마음 속 인식마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위치는 있지만 존중은 보증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뒷담화 뿐일까요?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면, 이 쯤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에게 그 기준을 대 봐야 합니다.  저는 아래의 질문을 요즘 제게 하고 있습니다.  


1. 내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2. 내 일을 잘하려면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 


어차피 인간은 만능이 아닙니다. 모든 걸 다 잘할 순 없죠. 일의 본질적인 부분을 잘 하면 됩니다. 다 못할 것 같으면 중요한 순서대로 잘 해도 됩니다. 아니 그냥 잘 하도록 해 보는 정도만 해도 나쁘지 않은 출발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답을 생각하면 개인사업자를 내면 됩니다. 우리는 무조건 팀으로 일합니다. 월말의 외로운 싸움인 ‘지결서류 제출’ 외에는 같이 뭔가를 이뤄내야 하죠. (박찬 최꽃섬 매니저님 매번 죄송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 질문을 추가했습니다. 


3. 같이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잘이라서 행복해 보이심>


‘넷플릭스’의 대표,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비밀을 다룬 ‘No rules rules’ 이라는 책에서 팀원에게 혹독한 조언을 할 때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심각할 정도로 솔직하게, 명확한 메시지와 행동을 담아서, 상대방과 나의 발전을 위하는 마음으로" 말하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 결정하여 그 의사를 명확히 회신하라" 


압니다. 오늘 팀장님 자리에 가서 심각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마지막 날에도 말 못하고 가는 분들이 대다수겠죠. 하지만 더 나은 사람은 피드백으로부터 개선하고 발전합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하는 욕보다는, 면전에서 하는 평가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넷플릭스의 no rules rules는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별도의 글로 써 보려 합니다.


'대사형'의 견자단 선생님은 과연 무술 실력으로만 아이들을 감화시켰을까요? 결국 아이들을 돌려 세운 것은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난 진정한 조언과 방향 제시였습니다. 학생들은 그 동안 자신을 알아주고 위해주는 '어른'을 무척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졸업한 지 벌써 오래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무척 덜 배운 것 같고, 그에 비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교사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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