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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n 30. 2023

꽉 막힌 엄마와의 성에 관한 대화

나는 엄마가 아니야.


지금까지 제가 쓴 글 중 '섹파에서 연인으로'와 '섹파에서 연인으로 2'가 탑 5 조회 수 안에 듭니다. 왜 제가 굳이 섹파에 대해서 썼을까요? 섹파가 연인이 돼서? 아닙니다. 제 성생활을 이해하지 못 하는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남자친구랑 하는 걸 가지고 뭐라 하면 남자친구도 아닌 사람이랑 하는 걸 말해버려야 되겠다는 게 제 소심한 반항이었습니다. 책임지지 못할 때 했던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돼서 책임질 수 있을 때 한 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꽉 막힌 엄마가 상처를 받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입장이었죠.


저라고 뭐 엄마가 제 성생활에 대해 알게 되길 바랐겠나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가 있는 앞에서 성관계 경험 유무를 물어보면서 엄마가 제가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소해버리고 싶습니다. 놀랐던 엄마는 그날 저한테 쌍욕을 하며 저를 잡히는 대로 때렸습니다. 제가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그렇게 잘 못 된 것인지 저는 그날 처음 느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성관계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랑 자는 게 그렇게 좋니?


쨌든 그 이후로는 다들 상상하실 수 있다시피 저희 사이에서 성생활에 대한 대화는 금기시되었고 남자친구네서 자고 온다거나 남자친구랑 여행을 간다거나 그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저를 벌레 보듯이 보며 비꼴 수 있을 만큼 비꼬았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가다실을 맞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비싸긴 했어요. 하지만 제 친구들은 전부 다 맞았고 그것도 맞으면 예방률이 높은 시기가 있는 거라 놓치면 예방률은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다 설명했지만 돈이 없다는 말, 그게 끝이었습니다. 저한테는 그럼 돈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하루 벌고 하루 사는데 무슨.


그런데 어제 검사 결과를 받았고 HPV 52번과 54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방할 수 있었는데 예방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 서럽고 억울했습니다. 그게 돈 때문이었다는 게... 왜 그때 저는 아무것도 없었을까요? 52번은 고위험군입니다. 자궁경부암 검사를 6개월마다 한 번씩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요.


문란한 성생활을 누굴 탓해?


그런데 서럽고 억울한 거보다 더 화났던 건 엄마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요. 성생활 때문에 생긴 걸 수도 있어요. 아닐 수도 있지만요. 그런데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HPV가 생긴 건 아니죠. 성생활은 다 문란한 건가요? 아니면 누가 제가 하는 성생활은 특히나 더 문란하다고 하던가요? 남들 하는 성생활 똑같이 하고 예방주사 하나 못 맞아서 예방 못한 거 생각 안 하고 저를 꾸짖는 엄마를 이해하려 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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