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취업을 했다고 말한 게 일 년 전이다. 계약직이었다. 그동안 동생은 다른 정규직 직원들보다도 열심히 일했으며, 내가 옆에서 봐도 그냥 열심히가 아니라 잘 했기 때문에 그 회사에, 그 부서에 꼭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처음에 했던 얘기와는 달리 회사는 그 부서에 사람을 더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동생이 정규직 전환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속상해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생에게 어떠한 결과가 있어도 앞으로 너에게는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고 말해주는 것뿐이었다. 그게 이번 기회이든 앞으로 올 기회이든. 그리고 그 여정 속에 항상 내가 옆에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언니!!!!! 나 됐어!!!!!
부장과 팀장이 인사팀 담당자들을 설득하고 설득해서 동생의 정규직 전환을 도왔다고 했다. 그렇게 동생은 정규직 중국어 연구원이 되었다. 자랑스러웠다. 너무 자랑스러웠다.
동생은 내가 국제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중국인 선생님들과 친구들 속에서 이방인처럼 중국 학교를 다녔다. 내 학교의 언어가 영어였던 것처럼 동생의 학교의 언어는 중국어였는데 그래서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중국어를 하면 중국인처럼 보일 정도로 중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걸 전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어 했다. 동생이 중국어 연구원을 꿈꾸게 된 건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증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교육을, 언어를, 중국어를 향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꿈이라는 건 정말 특별한 것 같다. 우리는 나름 평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그 꿈이 우리를 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돈을 많이 벌며 살기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하지만 할 때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며 살기를 꿈꿨다. 그리고 부모님은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해 주셨으며 우리는 운이 좋게도 꿈의 스타트를 끊었다. 세상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걸 하며 사는 사람은 또 몇일까. 물론 회사 생활이 다 그렇듯 괴로울 때도 있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헤쳐나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우리는 분명 복에 겨운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트를 끊었을 뿐, 시도하고 또 도전하며 많은 기회들과 무대들 속 더 큰 꿈을 꿀 것이다. 그렇게 계속 꿈을 꾸는 삶을 살고 싶다. 두근거림과 설렘이 있는 삶 말이다.
동생아, 이제 너의 인생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