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부터 야금야금 살이 찌더니
10kg가 불어버린
무거워진 몸을 반성하며
일단 걸어보기로 한다.
뭘 해야 할까?
다행히 걷는 것은 자신이 있다. 2만 보쯤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다. 대략 3~4시간 동안 14km 정도를 걸으면 '당신은 상위 1%'라는 스마트폰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식도락은 도대체 포기가 안되니 걷기라도 해야겠다.
일단 걸어 보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쌀쌀하고 변덕스러운 2월 날씨 탓에 집 밖을 나설 결심이 서지를 않는다. 50대 후반임에도 마라톤 풀코스를 한 해 동안 3~4번을 완주하는 운동중독자 동료들이 주변에 있는데,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남편이 흔쾌히 길동무를 해주면 좋으련만..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주말 나들이로 풀어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주말은 소파에 누워서 TV 보는 루틴에서 힐링을 얻는 집돌이 성향이다. 사정하거나 다투거나 하여 함께 길을 나서기도 미안하여 혼자 다닐만한 방법을 생각한다.
그래.. 해파랑길, 너다!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라도 걸어볼까 하니 너무 친숙한 맛집들이 골목마다 유혹한다. 이럴 바에야 거창하게 풍경 좋은 타지를 걸어보고 싶어졌다.
우선 강원도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볼까? 요즘에는 지자체마다 걷기 좋은 길 만들기가 경쟁적이다.
거창한 소망에서 시작해서 바닷길을 걷기로 했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하는 1코스를 시작으로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고성에서 끝나는 50코스까지 이어진 750km이다.
50(고성)에서 시작해서 1(부산)까지
통계적으로 사람들의 90% 정도는 오른손잡이다. 나도 그런 다수에 속한다. 이런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시선과 집중도는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이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광고나 PT강의 등도 이런 점을 이용한다. 왼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해파랑길 설계는 부자연스럽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세도 좋지만 해안절경이 무기 아닌가? 그러니, 고성을 1코스로 출발해서 왼쪽으로 바다를 즐기는 게 더 편안할 것이다. 그래서 50부터 시작한다.
해파랑길 50
2024.2.24.(토)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번거로움이 있다. 안보교육을 받고 군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통행자를 확인하는 제진검문소를 지나 4km쯤 민통선구역 진입은 도보로 이동이 제한되어 개인차량이나 택시로 통일전망대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파랑길 49
50길 시작 지점에서 거진항까지 10.7km이다. 해수욕장과 포구도 지나고 응봉이라는 122m 작은 숲길도 넘는다. 가보면 김일성 별장이 있다.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응봉 정상으로 오르는 2~30분을 제외하면 평지길이라서 초보에게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날씨가 아직 추워서일까? 눈이 많이 왔다는 뉴스 탓일까? 토요일임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이 한가했다.
하루에 돌아보는 49, 50
차로 이동한 구간을 제외하니 운동시간 약 3시간 운동거리 14km 정도였다. 하루에 돌아보기가 충분히 가능하다. 통일전망대도 구경하고 중간에 방파제에 앉아 차 한잔 여유까지 부려도 된다.
49길 종점인 거진항에서 인증 스탬프를 찍고 노곤해진 몸과 조금은 뿌듯한 기분으로 먹었던 생선구이와 생태탕 지리가 지금도 생각난다. 포구 주변으로 80년대로 돌아간 듯 한 철공소와 양철지붕 처마 끝 매달린 고드름이 한적한 포구풍경과 어울려 한껏 겨울분위기를 돋운 걷기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