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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14. 2023

인도가 달의 남극으로 간 까닭은?

인도의 달 남극 탐사가 가진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자면...

[# 1] 달의 남극 착륙에 첫 번째로 성공한 나라


2023년 8월 23일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경, 수억 인도인의 시선은 한 곳을 향했다. 인도가 보낸 달 착륙선이 달의 남극에 착륙하기 직전이었다. 2023년 7월 14일 발사된 찬드라얀 3호(Chandrayaan-3)는 38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어둡고 추운 우주 공간을 40일간 묵묵하게 전진하였다. 이윽고 발사체에서 분리된 비크람 착륙선(Vikram lander)이 달 표면을 향해 수직 하강을 시작했다.


달 착륙 몇 시간 전부터 거의 모든 TV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벵갈루루에 위치한 인도 우주연구국(Indian Space Research Organisation, 이하 ISRO)의 통제센터를 가득 채운 연구진과 시시각각 찬드라얀 3호의 줄어드는 착륙 속도와 높이를 보여주는 통제센터의 대형 화면, 더불어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을 위해 남아공을 방문하는 와중에 화상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모습이 인도의 모든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물론 인도다운 모습도 빠지지 않았다. 성공적인 달 착륙을 기원하고자 커다란 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 주문을 외우는 수십 명의 힌두교 사두(힌두교 종교 지도자)와 교도들 모습도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달 착륙을 기원한다면서 학교 수업을 중단하고 인도 깃발을 흔들어 대는 중고등학생들과 인도 전통 무용수의 춤 공연도 빠지지 않았다(인도에서는 국가적 행사가 있으면 학생들을 동원하는 일이 자주 있다. 우리나라의 70년대를 상상하면 된다). 최첨단 과학과 다신교의 주술의식, 거기에다가 민속춤 공연과 학생을 동원한 관제(管制) 행사가 뒤섞인 시끌벅적한 축제판이 절정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찬드라얀 3호의 성공적인 착륙을 기원하는 각종 행사 모습


얼마 후 비크람 착륙선이 무사히 달의 남극에 착륙하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인도우주연구국 직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화상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착륙이 성공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인도우주연구국의 수장인 스리다라 솜나뜨(Sreedhara Panicker Somanath)가 연단에 올랐다. 그의 첫 발언은 연구진이나 인도 국민이 아닌 나렌드라 모디를 향했다. 


"총리님, 우리는 달에 착륙했습니다. 인디아가 달에 도달했습니다(Sir, we have achieved the soft landing on the Moon. India is on the Moon)." 


이렇게 인도는 전 세계에서 미국·구소련·중국에 이어서 4번째로 달에 착륙한 국가에 등극했다. 더불어 달의 남극에 착륙한 세계 최초 국가가 되었다. 참고로 인도가 달에 착륙하기에 이틀 앞서 러시아가 달 남극 착륙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터였다.  

달착륙 성공 직후 인도우주연구국의 모습.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고자 남아공을 방문 중이던 모디 총리도 화상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 2] 인도의 거침없는 우주탐사 역사 


1969년에 창설된 인도 우주연구국은 1962년에 만들어진 인도 우주 연구위원회를 전신으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인 1975년에 인도 최초 자체 제작 인공위성인 아리아바타(Aryabhata)를 만들었다. 1979년에는 최초 자체 개발 발사체인 SLV-3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에 찬드라얀-3호를 탑재한 GSLV-3호는 제5세대 발사체로 저궤도(Low Earth Orbit) 기준으로 최대 8톤의 화물 적재가 가능한 최신형 모델이다. 참고로 2022년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 로켓이 저궤도 기준 3톤까지 적재할 수 있다. 자전거 뒷자리에 로켓 부품을 실어 나르던 인도가 이제는 어떤 나라도 감히 발을 디뎌 보지 못한 달 남극에 최초로 도달한 나라가 되었다.


1963년 ISRO의 전신인 인도우주위원회가 나사(NASA)로부터 제공받아 시도한 초기 실험용 로켓의 발사 장면. 과학자들이 자전거 뒷자리에 부품을 싣고 발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나사의 1년 예산은 무려 240억 달러다. ISRO 예산은 나사의 약 20분의 1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예산을 기반으로 순수과학부터 군사 목적까지 다양한 목적의 우주개발에 나서는 미국과는 달리 인도는 지금까지 자체 발사체와 통신위성 개발 등 철저하게 돈이 되는 실용적 연구에 매진해 왔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성공 사례를 쌓아온 인도의 우주개발 성과는 다른 나라의 눈에도 띄기 시작했다. 수십 년에 걸쳐서 축적된 성공적 발사 경험에 값싼 비용 덕분에 인도 발사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도 발사에 드는 비용을 아끼고자 왕왕 인도의 발사체에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위성을 얹어 발사하곤 했다. 결국 철저하게 가성비 위주로 기관을 운영함으로써 ISRO는 '돈 버는 우주 연구기관', '실용적인 우주 탐사에 있어서는 최고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008년에는 달 탐사를 목적으로 하는 찬드라얀 1호 발사에 성공했다. 달에 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를 최초로 찾아내기까지 하였다. 그로부터 5년 후 ISRO 우주선이 미국·구소련·유럽우주국(European Space Agency)에 이어 4번째로 화성궤도에 진입했다.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화성 궤도에 진입한 것은 ISRO가 처음이었다. 당시 발사 비용은 약 7,400만 달러였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마션>의 제작비용인 약 1억 달러보다도 적게 들어서 두고두고 화제에 올랐다. 

ISRO의 자체 발사체 변천사출처-<인디아 타임즈>


물론 성공담만 있지는 않다. 2019년 9월 발사된 찬드라얀-2호는 달 표면에 착륙한 후 무인 탐사 로버(Unmanned Rover)를 이용한 달 탐사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달 착륙 최종단계에서 소프트웨어 에러와 엔진 오작동이 겹치면서 달 표면에 추락하고 말았다. ISRO는 실패 원인에 관한 내부 조사 보고서를 완성하고도 이를 외부에 공표하지 않고 미적거렸다. 언론의 끈질긴 추궁에는 '강하게 착륙한 착륙선은 온전하며 다만 기울어져 있을 뿐이다(hard-landing lander was in one piece but in a tilted position)' 라고 둘러댔다. 


ISRO의 서투른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찬드라얀 2호가 실제로는 추락해서 산산이 조각났다는 사실을 불과 몇 달 만에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밝혔기 때문이다. 인도 첸나이에 거주하던 33살의 젊은 아마추어 천문학자 샨무가 수브라마니안(Shanmuga Subramanian)은 미국 나사가 찍은 달 표면의 사진이 찬드라얀 2호의 추락을 전후하여 미묘하게 달라진 점을 발견하고 미국 나사에 재확인을 요청했다. 나사 연구진은 추락으로 표면이 교란(攪亂)된 듯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인도 정부가 숨기고 싶었던 찬드라얀 2호의 추락 사실은 이렇게 3개월 만에 인도 출신 아마추어 천문학자의 발견과 미국 나사의 확인으로 만천하에 뽀록난 것이다. 머쓱해진 ISRO는 몇 달이 지나도록 진상을 밝히지 않은 자신들 행위가 '전략적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였다. 추락 사실을 발견한 아마추어 천문학자에게는 축하 인사를 전함으로써 웅대한 그릇(?)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출처- YTN



[# 3] 찬드라얀 3호를 둘러싼 비판과 비호의 공방전 


찬드라얀 3호의 프라기얀 로버(Pragyan Rover)는 착륙 다음 날부터 탐사 활동을 시작했다. 프라기얀은 지혜를 뜻한다. 로버란 행성의 환경·자원 등을 탐사하는 장비로서 행성 탐사에 빠질 수 없는 수단이다. 착륙선에서 빠져나와 달 표면에 '인도의 발자국' 아니 바퀴 자국(^_^;)을 찍는 로버의 모습이 어찌나 자랑스러웠던지 인도 TV는 그 모습을 무한 재생했다. 프라기얀 로버는 아이돌처럼 대접받고 있다. 로버에 관한 보도가 몇 시간 단위로 줄을 이었다. 


'오늘은 직경 몇 미터짜리 크레이터(crator, 행성·위성 따위의 표면에 보이는, 움푹 파인 큰 구덩이 모양의 지형)를 건넜다.' 

'오늘은 높이 몇 미터짜리 바위를 무사히 피해 갔다' 


프라기얀 로버는 약 14일 동안 달의 토양을 포함한 각종 환경을 조사한다. 달의 하루는 약 28일인데 14일은 따뜻한 낮이 14일은 혹독하게 추운 밤이 계속된다. 태양열 전지로 움직이는 프라기얀 로버가 달에서 탐사가 가능한 기간은 태양 빛을 받을 수 있는 14일 내외이다. 14일이 지나 달의 밤이 시작되면 프라기얀 로버는 작동하지 못한다. 참고로 8월 23일 착륙한 찬드라얀 3호의 프라기얀 기버는 9월 3일까지 1차 탐사를 마쳤다. ISRO는 프라기얀 로버가 14일간의 밤이 끝난 뒤 9월 22일 다시 작동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도의 달 탐사 로버가 착륙 후 이동한 경로.가운데 착륙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남짓 이동했다. 출처-ISRO


한편 몇몇 네티즌은 이미 70년 전에 다른 나라의 우주선이 도착해서 지구로 보내준 달 표면 사진 몇 장 찍으러 인도 같이 가난한 나라가 엄청난 돈을 낭비했다면서 비아냥거리고 있다. 7억 명이나 되는 인구가 제대로 된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하는 빈곤 국가에서 무슨 언감생심 우주탐사 타령이냐는 이야기이다. 자국민 사이에서도 막말로 유명한 영국 극우 정치인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는 나라에서 (빈곤 타파에 집중하기보다는) 달 탐사선을 쏘아 올렸다···. 영국이 이런 나라에 막대한 원조를 주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 인도에 원조를 단 한 푼도 줘서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비난을 들은 인도 언론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나이젤 파라지의 발언이 어디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조목조목 따지는 기사가 인도 현지 영어신문에 게재되었다. 영국을 향해 독설도 한 바가지 퍼부었다.  '영국인들은 여러 가지를 착각한다. 독일계 가문(하노버 왕조로부터 유래한 영국 왕실을 지칭함)을 보존하는 것이 국가 통합의 길이라고 착각하고, 빈스 온 토스트(Beans on Toast, 영국의 음식 이름)가 제대로 된 식사라고 착각한다.' 인도인들이 국뽕 한 사발 시원하게 드링킹하고 기분에 취해있는데 옛 식민지 종주국이 귀에 거슬리는 드립을 시전하자, 영국 왕실 뿌리까지 언급하면서 대차게 쏘아붙인 셈이다. 

찬드라얀 3호의 비크람 착륙선이 포착한달 표면에서의 첫 번째 광경출처-ISRO




[# 4] 찬드라얀 3호가 착륙한 곳에 힌두식 이름을 붙이다 


찬드라얀 3호가 달에 착륙하기 며칠 전 러시아의 우주선도 달 남극에 착륙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군사 강국 러시아도 실패한 미션에 성공한 인도는 어깨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다. 2020년 이전에는 다섯 개에 불과하던 인도의 우주 분야 민간 스타트업 기업의 개수가 현재는 140개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벤처캐피탈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산업 분야가 되었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예산 부족에 시달리던 인도 정부는 2019년에 ISRO 소속 과학자들의 월급을 삭감하는 조치를 찬드라얀 2호 발사를 불과 1달 앞두고 시행했다. 우주 탐사 활동이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한껏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ISRO 소속 과학자들에게는 힘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찬드라얀 3호의 달 남극 착륙선 비크람(왼쪽)과프라기얀 로버(오른쪽)출처-ISRO


브릭스 정상회담을 마치고 인도에 돌아오자마자 모디 총리는 벵갈루루에 소재한 ISRO로 향했다. 달 착륙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모디 총리는 찬드라얀 3호가 달에 착륙한 8월 23일을 '국가 우주의 날'로 선포했다. 물론 인도의 제조업 자립 정책이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Make in India' 정책이 이번 달 착륙을 가능하게 했다는 자화자찬도 잊지 않았다. 


출처 : YTN

 

찬드라얀 3호가 착륙한 장소에 이름도 붙였다. 이름하여 쉬브 샥티(Shiv Shakti). 쉬브(또는 쉬바)는 힌두교에서 가장 유명한 신의 이름이고 샥티는 힘(power)이라는 뜻이니 '쉬바신의 힘', 또는 '쉬바 신의 위대함'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힘을 얻어가는 힌두교 국수주의 세력 때문에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를 포함한 소수 집단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인도인 터다. 힌두 국수주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이름을 달나라 한복판에 남긴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그리고 ISRO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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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https://www.ddanzi.com/ddanziNews/78132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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