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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23. 2023

현장에서 바라본 G20 정상회의 뒷 이야기

뉴델리에서 9월초에 개최된 G20 정상회의의 모습

2023년 9월 9일에서 10일까지 양일간 인도 뉴델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국가수반뿐만 아니라 국가수반의 예우를 받는 각종 국제기구 수장까지 합치면 43명이 한꺼번에 뉴델리를 찾았다.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한두 개 단신으로 처리하였겠지만 뉴델리 한복판에서 바라본 G20 정상회의는 몇 달간 지속된 '1년짜리 행사'였다.




1. 어디를 돌아봐도 그분이 있다


2023년 9월의 뉴델리에는 어디를 돌아봐도 '그분'이 계셨다. 조금이라도 큰길에 들어서면 네루 베스트(Nehru Vest)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인도식 조끼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백발의 '그분' 사진이 있었다. 바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다. 분명히 G20을 홍보하는 포스터인데 G20 심볼보다 더 크게 떠억하니 자리 잡은 모디 총리의 총천연색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게 G20이라는 국제 행사를 홍보하자는 건지 아니면 모디 총리 개인 선거운동을 하자는 건지 도통 구분이 가질 않는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 G20 홍보 포스터(라고 쓰고 모디 총리 선거운동 포스터라고 읽는다)는 9월 초가 되자 그야말로 뉴델리 시내를 온통 뒤덮어버렸다. 이쯤 되니 산지사방에 나타난 모디 총리 사진이 부담스럽기 시작한다. 


분명히 G20을 홍보하는 포스터인데 모디 총리밖에 안 보인다..ㅠㅠ


인도 정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여당인 인도인민당(BJP)이 G20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지는 아래 사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가장 앞에 가장 크게 그려진 모디 총리 옆에 쓰인 숫자 78%는 그의 지지율이다. 그렇다. 모디 총리는 세계 주요국 지도자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 취임 이후 코로나 사태 당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간 동안 70%를 넘는 탄탄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컬러로, 가장 크게, 그리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진 모디 총리와 그 뒤에 흑백으로, 크기도 작게, 그리고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다른 나라 국가 정상들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마치 선생님 앞에 불려 나온 중딩들 같은 모습이다. 누가 기획하고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치선전물로는 100점짜리 작품이다. 이쯤 되면 이 포스터가 어떠한 이미지를 인도 국민들에게 전달하려 하는지 명확해진다. 


모디 총리만 컬러로 대문짝만하게 나와있고 나머지 국가들 지도자들은....ㅠ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모디 총리이며, 이 위대한 지도자께서 G20을 개최하자 '흑싸리 껍데기'처럼 지지율도 낮고 별 볼 일 없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황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굽신거리면서 인도로 찾아온다~" 바로 이렇게 왜곡한 이미지 말이다. 




2. 인도의 바가지요금은 레벨이 달랐다

 

중장기 거래관계를 도모하기보다는 눈앞에 놓인 단기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도인 상거래 관행도 G20을 통해 드러났다. 각국 대표단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호텔 객실로 인해서 곤란을 겪었는데, 심지어 대다수 호텔이 '기회는 찬스다'라는 생각에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호텔 요금을 요구한 것이다. 이런 행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현지 신문에서조차 호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걱정하는 기사가 날 정도였다. 힌두스탄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2021년 G20이 열렸던 로마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 방이 대략 60만 원 내외였고 2022년 발리에서는 그보다도 훨씬 싼 25만 원 내외였는데, 이번에 뉴델리에서는 1박에 무려 350만 원을 부르는 호텔도 등장했다.


우리나라 정부 대표단 역시 인도인들의 바가지요금 횡포에 고생했다. 너무 비싸진 호텔 요금 때문에 뉴델리 시내에서는 호텔을 구하지도 못하고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른 주(州)에 있는 신도시에 숙박해야만 했다. 그나마 뉴델리보다 그 신도시에 거주하는 재인도 동포와 주재원 숫자가 많았기에 재외동포 만찬에 참석하고자 이동한 거리가 짧았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우리나라 정부 대표단은 해당 호텔에서 실제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회담장까지 주(州) 경계선을 넘나드는 장거리 여행을 해야만 했다. 거의 분당에서 일산 킨텍스까지 이동하는 거리다. 


렌터카 업체들도 이 특수를 놓칠 수 없다. 평소에 하루 빌리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몇만 원 하지 않던 뉴델리 렌터카 업체들이 일제히 담합이라도 한 듯 "계약은 무조건 최저 3일" 기준으로 하고 3일간 요금도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만 원부터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인도 평균 임금노동자의 몇 달 치 급여에 해당한다. 뉴델리 시내에 호텔을 구하지 못한 많은 대표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렌터카를 급하게 구할 수밖에 없었다. 




3. 인도가 아니라 바라트? 불타기 시작한 국명(國名) 논쟁


2023년 7월, 28개의 인도 야당이 한자리에 모여 '빅텐트' 야당 연합전선을 결성했다. 2024년 4월로 다가온 총선에서 현 여당인 BJP에 맞서기 위한 야당의 움직임이 첫 결실을 본 셈이다. 여기에는 1885년 창당되어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수십 년간 인도 정치를 좌지우지해 왔던 인도의회당(Congress Party)과 같은 유서 깊은 정당은 물론이고 뉴델리 및 펀잡주의 지방정부를 장악하면서 최근 들어 세력을 넓히고 있는 비교적 신생정당인 AAP까지 합류하였다. 이 연합전선의 작명이 멋들어진다. 이름하여 I.N.D.I.A. 정식 명칭은 Indian National Developmental Inclusive Alliance로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인도전국개발 포용동맹'쯤 되겠다. 그렇다. 인도 국명과 동일하게 연합전선 이름을 지은 터이다.


인도의 국명이 어떻게 기원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바라트(Bharat)라는 지명과 인디아(India)라는 지명은 둘 다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바라트는 고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여 발음이 바뀌지 않고 현대에 이르렀다. 인디아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인더스강을 일컫던 'Sindhu'에서 유래했지만 그리스로 전해지면서 두음(S)이 탈락한 '인디카'로 변형된 후 '인디아'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BJP에게 이 두 개 국명 모두에 정당한 역사적 기원이 있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 BJP당은 India라는 이름을 영국 식민지 시절의 잔재라고 여기며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야당이 '인디아'를 연합전선 명칭으로 채택하자 이 기회에 '인디아'라는 국명을 제거해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듯하다.


그 때문이었을까? 여태까지 일부 극렬 힌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만 회자하던 '국명 변경' 논의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들 주장은 간단하다. 인디아라는 국명을 '바라트'로 바꾸자는 것이다. 인도 헌법에는 India라는 명칭과 Bharat라는 명칭을 병기하고 있다.

G20 정상회담 모습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얼핏 들으면 의미 없는 논쟁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도 영어로는 Korea라고 쓰지만 우리끼리는 한국이라 부른다. 일본도 영어로는 Japan이라고 쓰지만 자기들은 니뽄이라고 부른다. 누구도 '이 중 하나만 올바른 표현이고 나머지는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India와 Bharat의 관계도 똑같다. 지금처럼 정치적 대립이 심한 인도에서 국명에 관한 갈등은 상당히 중요한 논쟁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말하자면 인도인들에게 바라트는 힌두교도만 사람대접받는 신정일치 국가를 뜻하고, 인디아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적인 국가를 의미한다. 


현 야당인 의회당이 다양성, 무슬림을 포함한 소수 종교에 대한 포용적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아'를 상징하는 정치세력이다. 반면 현 여당인 BJP는 통일성, 힌두교가 우위를 차지하는 일사불란한 종교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바라트'를 상징하는 정치세력이다. 정상회의가 열리는 이틀 동안 나렌드라 모디 총리 앞에 놓인 명패에는 India라는 국명 대신 Bharat라는 국명이 적혀 있었다. 철저하게 국내용으로 연출된 이 이미지는 인도 국내 언론매체에 노출되어 인도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G20 회의장에서 의장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Bharat라는 명패를 앞세워서 국내 정치용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 앞에 Bharat라고 쓰인 명패가 보인다


인도 시민들의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휘발성이 강한 '국명 변경' 논쟁 또한 매우 훌륭한 선거 전략이다. 비록 인도가 G20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청년 인구의 절반가량이 실질적인 실업 상태에 놓여 있다. 게다가 저소득층에게 2천만 채의 주택을 지어 공급하겠다거나 농민들의 빈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터다. 이런 마당에 유권자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국명 변경 논쟁은 너무나도 탁월한 수단일 수밖에 없다. 모디 총리를 앞장세운 G20 포스터만큼이나 기발하다. 




4. 러시아가 재미를 봤다


많은 사람은 G20이 아시아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1999년에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가 참여하는 회의체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다시 말하자면 G20를 만든 최초 목적은 국가 간 협력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이다. 2008년 정상급 회의체로 승격되면서 금융 부문뿐만 아니라, 투자와 교역, 관광, 문화, 국제개발과 원조 등으로 논의 분야를 확대하였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금융 관련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2017년을 전후하여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의 미국의 국제적 기여가 상당 부분 축소되었다. 이후 G20에서의 경제 및 금융 분야 논의가 힘이 빠진 것이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더 이상 다른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돈을 쓰지 않겠다고 지갑을 잠가버렸는데, 무슨 논의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G20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와 국제정치 이슈가 많은 관심을 받았다. 회의 종료 후 발표한 정상 선언문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경제·금융에 치우쳤던 G20의 관심 분야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경제와 금융을 중점적으로 다루던 G20의 동력이 분산된다는 평에서 벗어날 수 없는 터이다. 거기에 더해 2023년 G20에서는 그나마 우크라이나 사태도 더욱더 희석되었다. '러시아'라는 언급도 사라지고 '국제법이 존중되어야 한다'라는 있으나 마나 한 표현만 정상 합의문에 실렸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장 반발했다. 자국 내 비판 여론에 직면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진화에 나서야만 했다. G20로 이득을 본 건 누구일까. 


이번 G20 회의에서 새롭게 회원으로 가입한 기구는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이다. 55개 아프리카 국가를 대표하는 기구이다. 과거부터 아프리카와 경제교류가 많았던 인도가 G20 내에서 개발도상국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아프리카 연합을 끌어들이는 데 공을 들였다. 인도의 외교적 승리였다. 한편, 불참한 국가 정상은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딱 두 명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대로 신규 가입한 회원보다 불참한 두 나라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연합이 G20의 회원이 되었다.


G20에서 의외의 재미를 본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정상 합의문에서 빠지면서 푸틴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고 성과를 거뒀다. 전체 원유의 약 4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인도가 경제적으로 밀착한 러시아를 돕고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상 합의문 수위 조절에 힘쓴 결과였다. 이렇게 인도가 의장을 맡았던 2023년 G20 회의는 외교 천재가 그린대로 마무리되었다. ///



* 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82327232#comment_78251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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