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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07. 2023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인도와 캐나다의 외교관계

트루도의 판단 미스인가? 아니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몽니인가?

[# 1] 1974년 5월 18일.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 포크란 핵실험장


1974년 5월 18일. 인도 북서부의 라자스탄 주에 소재한 포크란 핵실험장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웃고 있는 부처님 작전(Operation Smiling Buddha)’이라는 평화로운 코드명으로 불리던 인도 최초의 핵실험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부처님의 미소만큼이나 아름다운(^_^;) 버섯구름을 만들어내겠다는 의미로 붙여진 코드명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인도 땅에서 부처님이 아주 심하게 활짝 미소 지은 셈이다.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인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이외의 국가 중에서 최초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인도 외무부는 쏟아지는 전 세계적인 비난에 맞서 ‘평화로운 핵폭발 실험’이었다는 황당한 논평을 내놓았다. 남아시아의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인도라는 나라가 순식간에 강대국들만의 게임이라 할 수 있는 ‘핵무기 정치학’이라는 게임의 플레이어로 새롭게 등장했다.

1974년 당시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가 핵실험 직후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사용된 핵물질은 어디에서 왔을까? 포크란에서 남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마하라슈트라주의 트롬베이라는 도시에는 인도가 1954년에 캐나다로부터 제공받은 40 메가와트급 소형원자로가 있다. ‘캐나다 인디아 원자로 서비스(Canada India Reactor Utility Services : CYRUS)’라는 이름의 이 원자로는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하에 도입되었다. 


제 아무리 연구용이라고 하지만 원자로는 엄연한 원자로였다. 매년 약 6∼10kg 내외의 플루토늄이 생산되었고 이중 일부를 인도 핵과학자들이 야금야금 훔쳐서 모아놓기 시작했다. 1974년 포크란 핵실험에 사용된 플루토늄은 이렇게 캐나다가 제공한 원자로에서 인도가 몰래 훔친 것이었다. 수년간의 조사 끝에 이러한 사실을 알아낸 서방국가 특히 캐나다가 얼마나 화가 났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캐나다와 인도 사이의 모든 핵 관련 협력은 전면 중단되었다. 그동안 캐나다가 인도에 판매해 왔던 우라늄 판매도 전면 중단되었다. 그 덕분에 인도가 보유하고 있던 각종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 부족으로 인해 지속적인 가동중단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산업화와 빈곤 퇴치로 갈 길이 바쁜 인도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서방의 압박에 굴한다면 그건 인도답지 못하다(^_^;). 인도는 자신들의 행위가 국제질서에 반하는 행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CYRUS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몰래 빼돌린 것은 사실이지만, 핵무기의 군사적 목적 사용 등을 금지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각종 세이프가드 및 핵확산방지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이 국제사회에서 채택되기 이전의 일이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마디로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서방 세계가 부당하게 자신들을 괴롭힌다는 뻔뻔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 2] 1985년 6월 23일, 아일랜드 남서부 190km 대서양 상공


캐나다 몬트리올을 출발해 영국의 런던, 인도의 뉴델리와 뭄바이까지 가는 에어인디아 182편이 아일랜드 남서부 190km 대서양 상공에서 깜쪽같이 사라졌다. 고도 31,000피트에서 화물칸에 놓여있던 폭발물이 터지면서 329명의 탑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한순간에 사망했다. 추후 조사가 진행되면서 에어인디아에 대한 폭탄테러가 한 건 더 시도된 것이 밝혀졌다. 일본의 나리타 공항을 떠나려던 에어인디아 301편에 화물이 탑재되기 직전에 수하물 속에 섞여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지상근무요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번째 테러마저 성공했다면 최소 수백 명이 추가적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일본은 서머타임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테러리스트들이 시간을 잘못 설정한 덕분에 더 큰 참사를 가까스로 피한 것이었다.

폭탄테러 당하기 며칠 전에 찍힌 에어인디아 182편

에어인디아에 대한 테러 공격이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크교(Sikh) 분리주의 무장단체의 소행이라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하지만, 캐나다 경찰과 항공당국의 엉성한 초기 대응과 수사로 인해 진실을 밝히고 범죄자를 체포하여 재판에 넘기는 일은 느리게 진행되기만 했다. 인도 정부와 시민들은 ‘캐나다 정부가 인도출신 자국민을 2등 시민 취급한다’며 캐나다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고작 3명이 재판에 넘겨졌고, 이중 1명만 유죄를 선고받아 복역했다.

      

아무리 과격한 무장단체라 하더라도 생뚱맞게 민간항공기를 폭파한 것은 아니었다. 1년 전인 1984년 6월,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은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거의 2년 가까이 인도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협상은 결렬되었고, 이들은 시크교도의 성지인 펀잡주 암릿차르의 황금사원에 들어가 최후의 저항을 준비하게 된다. 1970년대 후반에 결성된 바바르 칼사(Babbar Khalsa)라는 무장조직을 중심으로 시크교도들의 격렬한 저항이 계속되면서 블루스타 작전(Operation Blue Star)라고 명명된 진압작전은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인명 피해는 매우 컸다. 인도정부 공식 발표에 다르면 시크교도 포함 민간인은 554명 사망했고, 진압군은 83명 사망, 236명 부상했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 숫자가 5,000명에서 최대 1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루머는 그 이후로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크교도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난 숫자의 사망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성지인 황금사원이 인도 군인들의 군화에 짓밟혔다는 것은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시크교도들의 분노가 채 가라앉지 않은 1984년 10월의 마지막 날. 당시 인도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가 자신의 경호원에게 무차별 총기난사를 받고 사망한다. 범행을 저지른 경호원들은 젊은 시크교도 2명이었는데, 암릿차르 황금사원에서 벌어진 군사작전에 대한 보복이었다. 인디라 간디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이번에는 뉴델리를 중심으로 한 북부 인도에서 힌두교도의 시크교도에 대한 폭행과 살해가 들불처럼 타올랐다. 간디 총리 살해에 대한 힌두교도들의 보복이 사실상 시크교도에 대한 인종청소의 성격으로 변질된 것이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광기는 4일이나 계속되었고 인도 정부 공식발표에 따르면 3,300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하지만, 시크교도 사망자만 최소 8,000명에서 최대 17,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비공식적인 추산이 나오기도 했다.




[# 3] 20023년 6월 18일, 서리(Surrey)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British Columbia), 캐나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의 서리(Surrey)시에 있는 시크교도 사원(Guru Nanak Sikh Gurdwara) 주차장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 사원의 지도자였던 하르딥 싱 니자르(Hardeep Singh Nijjar)가 암살당한 것이다.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인 칼리스탄 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아왔던 그는 1997년 자신을 쫒는 인도 정부를 피해 인도의 펀잡을 떠나 캐나다로 도망쳐왔다.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 후 낮에는 평범한 배관공으로 살아왔지만 블루스타 작전에 등장했던 바바르 칼사(Babbar Khalsa)의 열성적인 회원이기도 했으며 칼리스탄 타이거 포스(Khalistan Tiger Force)라는 무장 조직의 수장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생활인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였던 셈이다.

2023년 6 월 살해된 시크교 지도자 하르딥 싱 니자르. 인도출신 캐나다 국적자였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소재한 인도 대사관 또는 영사관 앞에서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인 칼리스탄 운동을 지지하는 열성지지자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충돌하는게 흔한 모습이 된 지 오래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하는 인도 총영사관이 칼리스탄 운동 지지자들의 습격을 받아 건물이 일부 부서지기도 했다. 자신들의 지도자인 하르딥 싱 니자르가 눈앞에서 살해당한 후 캐나다에 살고 있는 시크교도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캐나다 주재 고위 인도 외교관의 이름과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시크교 사원 앞에 붙여 놓고는 ‘지명수배’라는 단어를 그 밑에 써놓았다. 한 마디로 인도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르라고 부추기고 나선 것이다. 시크교 지도자가 살해당한 것과 캐나다 주재 인도 외교관들과는 무슨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서리의 시크교 사원 앞에 현직 주캐나다 인도대사관 고위직원의 사진이 '지명수배'라는 푯말과 함께 내걸렸다. 

     



[# 4] 20023년 9월 18일, 캐나다 하원(House of Commons), 오타와


캐나다 하원에 출석한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총리는 하르딥 싱 니자르가 인도 정부의 요원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믿을만한 의혹(credible allegation)’을 캐나다 정보기관이 확보했다는 발언을 한다. 믿을만한 증거(evidence)라는 표현이 아니고 ‘의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다소 수위조절을 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은 거의 핵폭탄급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9.9(토)-9.10(일)에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참석한 그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수사결과를 직접 설명하고 항의했다고 한다.

 

트루도 총리가 2023년 9월, 캐나다 하원에서 발언하고 있다. 

하르딥 싱 니자르의 살해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캐나다 주재 인도 외교관이 누구인지를 캐나다 정부가 대놓고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는 인도의 외교관중 정보담당 외교관을 콕 집어서 추방했다.(^_^;) 인도 정부도 캐나다 외교관을 맞추방하였다. 9월 21일 캐나다 주재 인도 대사관에서는 인도방문을 위한 비자 발급 업무를 당분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명수배’라는 표현과 함께 캐나다 주재 인도 외교관들의 사진도 이 시기를 즈음하여 시크교 사원 정문에 내걸렸다. 양국 간 진행되던 자유무역협정 협상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인도와 캐나다의 외교관계가 그야말로 급속하게 얼어붙으면서 최악의 국면에 접어든 양상이다.


인도 언론매체들은 과거 에어인디아 테러사건부터 시작해서 칼리스탄 독립운동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인 캐나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르딥 싱 지나르의 살해범을 체포하지도 못한 채 인도를 비난하고 있는 캐나다에게 인도 정부는 물론 국민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도 외무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여태까지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에나 썼던 격한 표현을 써가면서 캐나다를 비난했다. ‘캐나다는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 그리고 조직범죄의 피난처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수십 년간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앙숙이기는 하지만, 파키스탄에 대해서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하지는 않아왔다. 이제 인도는 캐나다를 제2의 파키스탄으로 취급하고 있다.


인도 언론 매체들은 2021년 총선 당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트루도의 자유당(Liberal Party)이 연정을 구성하기 위해 손잡은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의 지도자 중 한 명이 자그밋 싱(Jagmeet Singh)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칼리스탄 분리독립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자그밋 싱과 그가 이끄는 NDP와의 사이가 틀어질 경우 연정이 붕괴되고 정권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한 트루도 총리가 국내 정치용 목적으로 우방국인 인도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도 독립 이후 꾸준히 캐나다로 이주한 시크교도들은 정치세력화에도 성공하였다. 트루도 정권과 같은 진보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연방정부 장관도 여러 명 매출하는 등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인도정부와 언론매체는 트루도의 행보가 시크교도의 표를 의식한 선거 운동이라며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의 반응 또한 흥미롭다. 트루도 총리의 공개 발언 이후 며칠 동안 다른 우방국들은 캐나다의 입장을 지지하는데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대중국 견제를 포함하여 다양한 전략적 목적을 위해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들 입장에서는 인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트루도 총리가 직접 나서서 바이든 대통령과 리시 수낙 총리를 압박하자 이들 정부는 마지못해 우려 표명에 나섰다. 캐나다의 경우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인도와의 교역규모나 투자 규모가 크지 않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 또한 적극적인 태도 표명을 망설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 국가의 행정 수반이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인 의회에 출석하여 적성국가도 아닌 우방국을 ‘살인’ 혐의로 비난하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지 이제 몇 주가 지났다. 비난을 받은 인도 정부는 살해된 사람의 과거 행적 등을 강조하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근본 원인은 테러행위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캐나다에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인도 국명 변경 논란과 이번에 발생한 캐나다와의 마찰을 보고 있자니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인도 총선에서 집권 BJP는 자신들을 ‘부당한 내정간섭을 일삼는 서구 세력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정치세력’으로 브랜딩 하려는 모양새이다. 반면,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 영토에서 캐나다 국민이 살해된 것은 캐나다 주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면서 단단히 결기를 부리는 모양새이다. 여기서 밀리면 연정 붕괴까지 각오해야 하는 트루도 총리 입장에서도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싸움이 되어버렸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 선진국이 중국 견제에 공동으로 나서고 있는 시기에 갑툭튀로 등장한 인도와 캐나다 사이의 외교 관계 급랭이라는 이 돌발변수는 과연 어디로 튈 것인가? 한번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 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8397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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