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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꾼이 된 '멋진 시대의 왕'

문제적 남자 비제이 말리야... 그가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열변을 토했다

[# 1] 태어나 보니 인도 최대 주류 회사의 아들


2016년 3월 2일 인도 기업인 한 명이 언론의 눈을 피해 조용히 인도를 출국했고, 곧이어 인도의 방송과 온라인 매체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이 기업가는 17개가 되는 은행에서 무려 900억 루피(약 1조 5천억원)를 빌려서 40여 개나 되는 회사를 문어발식으로 경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이 더 이상 회생할 기미가 없는 가운데 은행들의 채무 상환 압박이 심해지자 런던에 살고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간다며 사실상 야반도주했다. 그의 이름은 비제이 말리아(Vijay Mallya), 인도 토종 맥주 브랜드로 유명한 킹피셔(King Fisher) 맥주를 생산하는 유나이티드 브류어리(United Breweries)의 소유주였다.


6b6dd68b7c81812d3a5fb5f26824f74c.jpeg 비제이 말리아(출처 : Business Standard)


비제이 말리아는 1955년 12월 인도 최대 주류 회사인 UB그룹(United Breweries Group)의 회장인 비탈 말리아(Vittal Mallya)의 아들로 태어났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도덕적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인도의 주류 사업체들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했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거의 성인으로 추앙받던 마하트마 간디는 음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악마라고 보았고,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 전역에 금주령을 발효해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을 공공연히 밝히곤 했었다. 게다가 인도 헌법 제47조는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국가는 금주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담고 있으니 주류업체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에 훤하다. 비탈 말리아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국민과 언론의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 2] “멋진 시대의 왕, 킹피셔”


하지만 아들인 비제이 말리아는 달랐다. 1980년대 중반에 20대였던 그는 이미 소문난 스피드광이었다. 직접 스포츠카를 몰고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해 전국 단위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인생이 즐거운 20대 청년이었다. 하지만 28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캘커타 최고 명문 대학인 세인트 자비에르 (St. Xavier)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좋은 머리를 가졌으면서도 흥청망청 살아가던 청년이 아버지가 이룩한 거대 사업체를 물려받게 된 것이다.


그가 UB그룹의 경영을 맡은 1983년은 인도 사회와 경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구매력을 가진 청년 세대가 늘어났고, 인도는 중화학 공업 위주의 사회주의 경제에서 소비재 물품이 환영받는 자본주의 경제로 변모하고 있었다. 게다가 카르나타카의 중심 도시인 벵갈루루도 이 시기에 IT 산업의 메카로 성장하면서 구매력이 높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도시는 활기가 넘쳐났다.


dd6022a9e982f5ac45df47ee220db5e3.jpg 사진 출처 : Kingfisher Drink


인도 사회의 한편은 서구화되고 있었지만, 구자라트 같은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금주의 전통이 꾸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구자라트를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나렌드라 모디는 정치생활 초기부터 음주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결국 비제이가 한창 주류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인 1995년 인도 중앙정부는 주류 광고를 전면 금지하였고 비제이는 사업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법으로 주류 사업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우선 대리광고(surrogate advertising) 기법을 활용하여 소비자의 머릿속에 킹피셔라는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주입했다.


또한, 킹피셔라는 단어를 단순히 주류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로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언론에 노출하여 ‘화려한 삶=킹피셔’라는 브랜드 이미지 창출을 노렸다. 1990년대 사람들은 TV만 틀면 반복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킹피셔 청량음료 광고를 보면서 그 광고 끝에 흘러나오던 “멋진 시대의 왕, 킹피셔(The King of Good Times, Kingfisher)”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반복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비제이 말리아 자신이 이 멋진 시대의 왕과 같은 존재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77555a091c1c504b9612274fa2d45de6.jpeg 킹피셔 맥주의 대표적인 광고(출처 : Media Infoline)


[# 3] 비제이 말리아의 종말의 서곡 : 킹피셔 항공사 창업


인도 항공업계의 자유화 조치에 발맞춰 비제이 말리아는 2005년 저가항공사인 킹피셔 항공사(Kingfisher Airlines)를 창업한다. 비제이 말리아는 저가항공사였지만 기내식도 제공하고 객실 승무원에게 인도 전통의상이 아니라 서양식 짧은 스커트를 입게 하는 등 항공사 운영의 세세한 부분을 직접 챙기면서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맥주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리광고도 모자라 이제는 항공사까지 창업하냐며 비웃었지만 창업과 동시에 인도 항공사답지 않은 질 좋은 서비스로 이용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덕분에 속칭 화려한 사생활을 하는 ‘물장사꾼’으로만 알려졌던 그의 이미지도 제대로 된 사업을 하는 사업가의 이미지로 다소 호전되었다.


항공사가 영업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2005년 6월, 항공기를 추가로 도입하기 위해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에어버스 본사에 출장을 간 비제이는 무려 12대의 항공기를 3억 2,000만 달러에 도입하는 계약에 서명한다.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의 사업 확장이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부채도 무서운 기세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비제이는 국영은행에 손을 벌리게 된다. 10년 넘게 상원의원직을 유지해온 비제이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입김에 쉽게 좌지우지되면서 리스크 분석 능력은 떨어지는 국영은행들을 구워삶는 것은 큰일이 아니었다.


얼마 안 가서 킹피셔항공사는 저가항공사의 강점을 걷어차 버리고 1등석을 추가하는 등 각종 서비스를 추가 제공하는 전략 변화에 나섰다. 이제는 더 이상 비용절감을 추구하는 저가항공사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전략 변화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초래했다. 2005년 9월 회사는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지만 2003년에 회사가 설립될 때 경영자로 합류했던 저가항공 전문가인 앨릭스 윌콕스(Alex Wilcox)는 이러한 급격한 전략 변화에 불만을 품고 2006년에 회사를 떠났고, 킹피셔항공사는 선장 잃은 난파선처럼 헤매기 시작했다. 무분별하게 신규 비행기를 도입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국제선 항공편을 보유한 기존 항공사인 에어데칸Air Deccan을 비싼 값에 인수했다. 이 와중에 2005년에 1,300만 달러였던 부채는 2006년에 9,800만 달러, 2008년에는 2억 4,000만 달러로 급증한다.


은행 돈에 의지해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포뮬러원(Formula One) 자동차경주팀과 프로 크리켓팀 인수에 나섰다. 그리고 2008년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인도를 덮치면서 항공 산업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경기침체로 여행 수요가 급감했고 부채를 기반으로 무리하게 확장해온 킹피셔항공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결국 빚을 끌어다가 항공사의 손실을 메꾸는 상황이 된 것이다. 2008년 2억 3,000만 달러였던 차입금 규모는 2009년에 31억 7,900만 달러, 2010년에 39억 1,200만 달러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까지 급증했다. 한편, 킹피셔항공사의 여러 대출 중 특히 문제가 된 대출은 2009년 10월 인도 국영은행 중 하나인 IDBI은행으로부터 받은 무려 2억 달러짜리 대출이다. 나중에 정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IDBI은행은 회계감사 보고서 등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공신력 있는 서류가 아니라 킹피셔항공사가 제공한 사업계획과 추정 자료만으로 거금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박봉에 시달리며 대출심사 능력이 부족한 국영은행 직원들을 비제이 말리아가 회유하고 압박한 결과였다.


184ec7539cc6ab421ac591a4efa51910.jpg 킹피셔 항공사에서 도입한 항공기 앞에 서 있는 비제이 말리야


[# 4] 2008년의 경제 위기 이후 날개 잃은 천사가 된 킹피셔 항공사


2011년 9월 캐나다에 소재한 소규모 투자자문 회사인 베리타스 투자자문(Veritas Investment Research)이 킹피셔항공사 주가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한마디로 회사 전체가 부도 직전이라는 내용이었다. 경영환경은 더욱더 악화되었다. 연료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결국 항공유를 공급하던 인도석유공사(IOCL)에서는 더 이상 외상거래를 할 수 없다고 통보하기에 이른다. 이제 현금을 주지 않으면 비행기를 띄울 연료마저 살 수 없을 정도로 현금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케이터링 업체에 지급할 돈이 모자라 기내식이 부족해지면서 결국 승무원들은 자기가 먹을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줘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2011년 11월 비제이는 급히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주주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시도했다. 하지만 2005년 회사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순이익을 내지 못했던 킹피셔항공사의 경영성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비제이의 카리스마에 눌려 회사의 어느 누구도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감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했다


킹피셔 항공사의 연도별 당기순손실 (단위: U$백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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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이코노믹타임스 및 머니콘트롤(Economic Times, Money Control) 등의 자료 참조


이어 종업원 급여가 지급되지 못했고, 2012년 10월에 6개월 넘게 급여를 받지 못한 종업원의 아내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해외 사업장에서는 꼬박꼬박 급여를 지급했지만 인도에서만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급여 미지급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대한 인도 법 체제의 헛점을 악용한 것이었다. 결국 3,000명이 넘는 종업원에게 4,000만 달러가 넘는 급여를 체불한 채 2012년 10월 킹피셔항공사는 영업을 중단한다.


회사는 망했지만 비제이 말리아는 흥청망청하던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2015년 12월 인도 최고 휴양지인 고아에 있는 그의 집에서 60세 생일 파티를 열었다. 수천 명의 초대 손님이 모여들었고, 인기 가수인 엔리케 이글레시아스가 축하공연을 펼쳤다. 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며 생활고를 겪고 있던 종업원들에게는 천불이 날 일이었다. 결국 인도 중앙수사국(Central Bureau of Investigation)이 수사에 나섰고 비제이가 국영은행과 공모하여 불법 대출을 받았다는 혐의, 대출받은 돈을 용도 이외로 사용했다는 자금세탁 혐의 등으로 그를 기소했다.


9d37dacd0d0d256099b0773d6ac25d62.jpeg 킹피셔 항공사의 모습(출처 : India TV News)


[# 5] 4시간짜리 팟캐스트에 등장해 열변을 토해낸 희대의 사기꾼


힌두교 근본주의적 사고를 기반으로 구자라트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나렌드라 모디는 평소 비제이 말리아를 고깝게 생각해왔다. 2014년 모디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비제이는 집권 BJP당에 가장 눈에 띄는 타겟이 되었다. 결국 13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던 그는 도망치듯 인도를 떠나 영국으로 갔다. 현재 그는 인도 정부의 송환 요청에 대항하여 영국에서 힘겹게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영은행에서 돈을 빌린 규모로 따지면 비제이 말리아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빌린 사업가들이 인도에는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 대부분은 은행과 협상하여 만기연장을 받거나 심지어 추가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유독 비제이 말리아의 경우 은행들이 혹독하게 자금회수에 나섰다. 비제이 말리아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밉게 본 BJP당에게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이라고 꾸준히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멋진 시대의 왕’King of Good Times에서 추락하여 지금은 인도로의 추방 명령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비제이 말리아는 엄청난 규모의 차입에 의존해 사업을 일궈나간 인도 기업가의 흥망성쇠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 하겠다.


그런 그가 2025년 6월초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무려 4시간 가까이 자신의 일생, 사업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유튜브에도 업로드된 이 영상은 한달 정도 지난 지금 조회수가 무려 2,700만회(’25. 7.10자 기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조회수만 보면 웬만한 K-pop 아이돌 뮤직비디오 수준으로 인도 내에서는 그야말로 가장 핫한 유튜브 동영상에 등극했다. ‘희대의 사기꾼에게 변명의 기회를 준 것은 잘못이다’라는 맹렬한 비난과 ‘비제이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동정론이 맞서고 있다.


아메다바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에어인디아 항공기가 추락한 것은 6월 12일인데, 그로부터 1주일 전에 인도 최대의 항공사 파산의 주인공을 다룬 동영상이 업로드되었으니, 타이밍치고는 참으로도 기묘한 타이밍이라 하겠다. 과연 비제이 말리아는 자신의 주장대로 집권여당인 BJP의 미움을 받아 사업의 기회를 빼앗긴 정치적 희생양일까? 아니면 은행들을 속이고 엄청난 금융사기를 저지른 파렴치한 경제사범일까? 진실은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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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index.php?mid=ddanziNews&category=977706&page=3&document_srl=851352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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