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9, 8 ... 3, 2, 1, 지금!"
고요한 집 안에 남편의 긴장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해맞이 제야의 종이라도 치는 건가 싶겠지만 아니다. 24년 신학기 유치원 추가 모집글에 선착순 댓글을 달기 위한 카운트 다운이었다. 나와 남편은 조금이라도 높은 대기 순번을 받기 위해 각자의 컴퓨터로 동시에 댓글을 달기로 했다. 정각 3시. 세상에. 네이버 시계까지 확인하며 달았던 남편의 댓글은 1 페이지에서도 한참 아래에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댓글은 1 페이지를 넘어가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어 삭제했다. 분명 틀림없이 3시에 맞춰 '작성 완료' 버튼을 눌렀는데 대기 번호 33번이라니.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만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게 아니었나 보다. 5살 아이를 유치원 보내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유치원 모집은 원래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이다. '처음학교로' 홈페이지에서 모집 기간에 원하는 유치원 3 곳을 선택해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우선모집과 일반모집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우선모집에서는 모두 떨어졌다. 일반모집에서도 1, 2 지망은 떨어졌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3 지망에 붙었다. 3 지망 유치원은 옆에 수영장이 있어 수영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가 물놀이를 좋아해서 신청할 땐 괜찮겠다 싶었는데, 붙고 나니 보내고 싶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마음에 들었지만 거리가 멀었다. 집에서 유치원으로 곧장 간다고 해도 차로 20 ~ 30분이 걸렸다. 어디 다른 곳이라도 들렀다 간다면 더 길어질 터였다. 멀미가 심한 아이를 혼자 차에 태워 보낸다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과 상의 끝에 1 지망 유치원에 대기를 걸어두고, 우선 3 지망에 보내자는 결론을 냈다. 둘째가 뱃속에 있어서 가정 보육은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 1 지망 유치원 모집글에 대기를 거는데 대학 시절 수강신청 저리 가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기번호 33번. 올해 안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아이는 차를 타고 먼 거리 즐겁게 다닐 수 있을까. 매일 멀미를 할 텐데, 등원할 때마다 가기 싫다고 울면 속상할 것 같았다. 아니, 출산율은 바닥이라며! 이웃나라 이야기였던가. 출산율이 점점 낮아져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분통이 터졌다. 아이를 원하는 유치원에 보낼 수도 없는데, 무슨 애를 더 낳으라는 말인가.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헤아려 선택할 여지도 없을 텐데. 숫자로만 따져 말하는 뉴스에 짜증이 솟구쳤다.
분노의 농도가 옅어질 때쯤, 저녁을 먹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저장된 번호는 아니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OO 어린이집 원장인데요. 현승이 어머님 맞으시죠?" 상냥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작년에 이사 오면서 대기 걸어둔 어린이집에서 온 전화였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왜? 누군데?" 밝아진 내 표정을 보고 남편이 궁금해했다. "현승이 멀리 안 가도 되겠어!" 통화 내용을 전달하자 남편도 기뻐했다. "다행이네, 한 시름 덜었다" 유치원은 1년 미뤄졌지만, 아이를 혼자 차 태워 보낼 걱정은 없어졌다. 엄마가 뚜벅이라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없었는데 너무 다행이었다. 어린이집은 만 3세 반까지라 올해만 다닐 수 있었지만, 내년 걱정은 내년에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