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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기 Jul 06. 2022

일못러 일잘러

일 잘하는 사람, 일 못하는 사람의 디테일, 그럼 일은 왜 잘해야 할까요

  계획하고 있는 강의가 있습니다. 이전에 일했던 요리학원에 요리와 음료에 대해 알려주고 취업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지만 정작 현장에 나가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강의를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잘러 주제를 포함해 [서비스 매뉴얼] [현재 외식업에서 필요한 덕목]에 대해 수업자료를 정리해봤습니다.


  그 중 이 일잘러에 대한 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생각해서 브런치에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 한때 많이 공감을 샀던 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을 정리한 글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는데 글을 읽었을 뿐인데 속이 답답하고, 혈압이 오르고, 많이 속상했습니다. 초점이 사무직에 맞춰져 있어서 살짝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한 번 살펴볼까요.




1. 항상 바쁨, 왜 바쁜지는 모르겠는데 맨날 바쁨 동공의 위치가 자유분방함

2. 오지라퍼, 자기 일이 아닌데 굳이 나서서 함

3.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완성이 안 됨

4. 절대 날짜를 지키지 않음

5. 사람'은' 좋은데... 라는 말을 자주 들음

6. 꼭 남들 쉴때 보란듯이 아주 열심히 일함

7. 타인이 업무적인 충고를 하면 절대 듣지 않음

8. 도와준다고 하면 자존심 때문에 거절함

9. 일의 우선순위나 중요도 배치, 중요한 업무의 가중치 배정을 못함

10.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음

11. 유관부서 혹은 거래처의 무리한 부탁을 잘 들어줌

12. 쓸데 없는 곳에 책임감이 강함

13. 일보다는 사내 정치에 관심이 많음

14. 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함

15. 사고터지면 본인은 열심히 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어필함

16. 삽질해서 일 많이 해놓고 잔업비나 특근비 잔치열림(외식업에 대입하면 마감을 늘 남들보다 한시간씩 더 하면서 추가근무수당 더 받아감, 분명 한시간 더 했는데 깨끗하지도 않음)




  나열한 걸 읽어보니 많이 답답함을 느끼셨죠..? 갑자기 남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춰질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할거에요. 요즘은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래 그럴 수 있지'라며 크게 감정을 담진 않지만, 내가 남들에게 능력이 부족해 보이거나 못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은 참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 한가지 여쭤 볼게요. 일은 왜 잘해야 할까요? 혹시 이것에 대해 생각해보신 분 계세요? 뭐 당연히 일을 잘해야 월급도 받고 직장에서 짤리지 않고... 이런 차원에서만 생각해보신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직장에서 잘리지 않는 목적이라면 일을 적당히만 하면 됩니다. 약간만 능동적이면 되고 약간만 잘하면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외식업은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업종인데 그렇게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안겨줄까.


  저는 저로 인해서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제가 지금 여기에 서서 여러분들과 많은 가치를 나누는 것처럼.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업무와 가치는 일의 기초에서 시작됩니다. 일의 기초가 단단해야 그 기반 위에 창의성과 가치를 쌓을 수 있습니다. 


  누굴 위해서 이렇게까지 일을 잘해야 할까요. 회사를 위해서? 사장님을 위해서?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내가 일을 잘함으로써 회사나 사업주는 이득을 보겠지만, 그 말은 나는 한 사업체에 이득을 안겨주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점점 영향력을 키워가는거죠.


  처음엔 내가 뭔가 호구인가 싶을 수도 있어요. '이런 노동강도를 견뎌야 하나'라면서 자기 의심을 수도 없이 할거에요. 하지만 그 노동강도나 과도한 업무를 견디지 않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과도하지 않은 업무 안에서만 적당히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도한 업무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요? 저는 어느정도까지는 호구 잡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이 회사가 내가 호구잡혀도 배울 게 전혀 없는 곳인지 아니면 배울게 정말 많은 곳인지는 잘 판단해야겠죠. 


  이런 얘기 많이 들으실거에요, 보상이 없이는 적당량 이상 일을 하지말라고. 아닙니다, 해야합니다. '제가 왜 해요?' 이건 당신의 데이터와 포트폴리오, 당신의 성장입니다. 회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회사가 당신이 어떤 역량을 보여줄거라 예상하고 먼저 돈을 줍니까. 시장에서는 누군가 당신에게 돈을 지불할 땐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지불하는 겁니다. 일단 돈부터 받고 내가 역량을 보여줄게 라는 태도는 당신의 가치를 시장에 내놓을 생각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일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나의 성장을 위해 걸어 나가기 위해서 입니다. 버크셔 주총에서 20대 초중반 되는 여성분이 '워런 버핏'에게 질문을 합니다. '지금 인플레이션이고, 러시아는 전쟁중이고...'라면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마지막은 '그래서 뭐 투자하면 돼요?'라며 그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었죠. 워런 버핏도 엄청 웃으면서 '결국 사람들은 너에게 큰 교환거리를 원하는데, 그건 인플레이션의 영향도 안받고 세금도 안 떼인다. 그건 너 자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당장의 내 교환거리가 그 사람들에게 환심을 살 수 있는 가치는 아닐겁니다. 그래서 내 가치를 테스트판매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가치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애사심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업종에 대한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職業 직업을 한자로 풀어보면 [職 직분 직] [業 업 업] 이 됩니다. [직]에 집중하면 사내정치와 무분별한 성과올리기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직장에서 나오게 되면 일부 리셋이 됩니다. 하지만 [업]은 평생의 재산입니다. 내 몸안에 남아있는 습관, 내가 쌓아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더 많은 가치를 쌓을 수 있습니다. 직책과 회사에 집착하지 마세요. 자신의 [업]에 집중하세요.


  그렇다면 일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단순히 위 특징들의 반대로만 행동하면 일잘러가 될까요? 위 특징들의 반대로만 행동하면 일잘러 보다는 평범한 직원이 되겠죠. 하지만 우리는 일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일잘러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합시다.



 


  1. 정리정돈


  너무 진부한 엄마 잔소리 같나요? 그럼 '내 작업공간을 셋팅한다'라고 표현하면 좀 좋게 들리나요? 정리정돈은 내 업무를 원활히 하기 위한 가장 기초 중에 기초입니다. 가끔 어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하고는 있는데 뭔가 정리가 안된다는 기분 느껴보셨나요? 주변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는 현장에서 움직이는 업무를 할 사람들인데 주변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서비스가 마비되겠죠.


  일을 못하는 사람의 작업대는 어마무시 합니다. 방금 뜯은 원두가 담겼던 봉투는 원두가 몇알 남은 채로 그라인더 옆에 구겨져 있고, 행주는 그 밑에 놓여져 있습니다. 참고로 쓰레기통은 그 앞에 바로 있습니다. 커피를 내려야 하는데 그라인더 앞에는 커피 봉투만 있는 게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는 컵이 하나 있어요. 커피 기계 밑에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바빠서 멘붕이 오는 와중에도 카톡은 확인 해야하거든요. "흐흐 나 개바빠, 멘붕옴 ㅋㅋ" 이런거 보내줘야 하거든요.


  가위를 찾느라 두리번 거립니다. 가위는 어디있을까요? 커피 봉투 밑에 있어요. 커피 원두를 가위로 자르고 그 바로 옆에 기물 꽂는 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대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굳이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은 커피 원두 봉투로 고이 가려놓았죠. 커피 봉투 밑에 가위가 있다고 호통을 치니 급하게 커피 봉투 치우다 봉투 안에 남아있던 원두들이 하늘에 흩뿌려집니다. 씽크대에는 에이드 만들던 믹서기 통이 그대로 담가져 있습니다. 그 안에 손을 씻다가 대충 물을 뿌려놓은 듯 살짝 물이 흥건하구요. 그 안에 또 글라스가 하나 들어있고, 그 위에 바 스푼과 스팀피쳐가 있네요. 물이 허여멀건한거 보니 스팀피쳐에 있던 우유가 섞인 듯 합니다. 에이드 주문이 다시 들어오니 그 믹서기 통을 찾느라 허우적 거립니다. 


  어때요, 말만 들어도 혈압이 오르는 기분 아세요? 저는 이러한 상태를 '작업대가 폭발했다'라고 표현합니다. 가위는 썼으면 바로 그 위치에 다시 꽂아놓으면 되구요, 원두가 담긴 봉투는 그라인더에 부었으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됩니다. 삼만리를 헤쳐 나가서 버리고 오라는 게 아니라 몇발자국만 걸어서, 심지어는 동선을 아끼고자 그 바로 앞에 쓰레기통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손만 움직이면 닿을 곳에. 에이드 만든 믹서통은 기름이나 유제품이 들어간 게 아니라면 쓰자마자 헹궈서 드레인에 뒤집어 놓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필요하면 닦지 않고 바로 사용하죠. 헹궈서 올려놓는데 몇초 안걸리거든요. 그 헹구는 동작 하나 때문에 일이 느려지지 않습니다.


  언제 한 번은 오픈 준비 시간에 풀타임 직원이 지각을 할뻔 했는지 후다닥 뛰어 들어와 바로 청소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자기의 가방과 외투 소지품을 테이블과 작업대 할 것 없이 던져 놓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난리난리를 피우며 청소하길래 내려오라고 소리쳤죠. "오픈 전부터 일거리 만드네, 네 것 치우고 옷 갈아입고 와서 청소해" 여러분, 아무리 급해도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던져놓고 옷도 안갈아입고 일하면 일이 빨리 될 것 같죠? 아니에요. 결국은 오픈 준비하고 나서 어차피 치워야 할 것들이에요. 일이 더 많아집니다.


  스스로 멘붕이 될만한 상황을 만들지 마세요.






2. 목적을 명확히 해라


  보통은 매장마다 시스템이 잘 갖춰지던 아니던 매뉴얼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뉴얼을 설명할 때 그 매뉴얼이 어떤 이유에서 만들어진건지, 어떤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매뉴얼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나이가 좀 차 있는 상태에서 음식 경력도 갖춘 상태에서 막내로 주방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직원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심지어 르 꼬르동 블루에서 디플로마까지 마치고 왔어요. 파스타를 삶으라길래 '소금은 얼마나 넣을까요?'라고 물었죠. 그 친구는 "면수를 쓸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넣으셔도 돼요!"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양식조리 배우신 분들에게 물어볼게요. 소금을 넣는 이유가 면수를 쓰기 위해서 인가요? 면과 소금을 같이 삶으면 면수에서 소금의 성질이 바뀌나요? 소금을 넣는 목적은 파스타의 속간을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업장마다 레시피에 따라 소금의 퍼센테이지를 정합니다. 물론 다이닝이 아닌 이상 소금의 양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진 않지만 이건 목적 자체를 벗어난 대답이었습니다.


  여러분 채소를 몇번 씻어야 할까요? 예를 들어 잎채소. 시금치나 상추 등을 예로 들어보자면 몇번을 씻어야 깨끗할까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깨끗해질때까지 씻어야 해요. 잎채소 중에는 흙이 많은 채소도 분명 있습니다. 매뉴얼로 두번 세척으로 배웠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지저분하다면 더 세척해야 하는 게 맞는겁니다. 그리고 두번 세척이라는 말만 듣고 씻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여기서 목적은 채소를 깨끗한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채소를 두번 씻는다 가 목적이 아니에요.


  목적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드리자면, 처음에 주방에 들어갔을때 왜 설거지부터 해야할까요? 당연히 선임이 설거지 할 순 없으니까, 선임이 설거지 하기 싫으니까 그렇겠죠. 라고 생각한다면 현장업무에 가도 성장은 정말 더딜거에요. 설거지부터 하는 이유는, 목적은 주방의 행동 파악과 기물의 이름 및 위치를 숙지하기 위함입니다. 막내 때 설거지를 하면서 목적에 맞춰 배워야 할 게 있는 것이지, 당연히 설거지를 막내가 하는 것이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이처럼 모든 행동과 업무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과 업무의 목적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누구보다 위로 올라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칠 자격이 없습니다. 막내로 평생 일하시면 됩니다.






3. THINK


  제가 예전 일하던 곳의 외국인 쉐프의 유행어 중 하나였습니다. 맘에 안드는 행동을 하는 직원을 붙잡고 한텀정도 말을 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THINK." 영어문법에서 주어 없이 동사만 사용하면 무슨 문장구조가 되죠? 명령어가 됩니다. 한국어로 의역하자면 "머리를 써"가 되겠네요. 

  현장에서 음식을 조리하거나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은 몸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머리를 비워두고 일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요. 내 순발력과 본능의 한계가 내 업무의 퍼포먼스를 좌우한다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잘 하려면 내 행동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계획을 분단위 초단위로 세워야 하고, 비슷한 케이스의 업무나 문의는 훈련을 통해 속도를 점점 빠르게 늘려나가야 합니다.

  

  아까 1번 정리정돈의 예시의 경우, 그런 직원을 실제로 옆에서 보면 누구보다 바쁩니다. 그 매장 업무는 자기 혼자 다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만 결국 보면 성과가 좋지 않아요. 이런 타입의 직원은 서비스타임에 매번 응대가 늦거나 혹은 오더를 시간내에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결과에 대해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본인 스스로도 억울하니까요. 내가 이렇게까지 일했는데 저 사람은 날 왜 질책하지? 이렇게 바빴으니 이 정도 결과가 당연한거 아니야? 난 최선을 다했어 라면서 합리화를 합니다.


  예전에 이런 직원에게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하니 정말 당당하게 "전 이게 최선이에요. 전 최선을 다한거에요"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너의 최선이 이 정도면 너는 여기서 돈을 받고 일하면 안되는 사람이야"라고 했다가 그 직원은 울면서 뛰쳐 나갔습니다. 제가 '결과론자'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분명 과정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결론이 좋지 않다는 걸 꼬집고 싶은거에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옆에서 보면 정말 한가해보이지만 서비스 응대 속도도 빠르고 오더도 시간 안에 내어줍니다. 왜 그런걸까요? 행동이 최소화되니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고, 그로 인해 주변도 깔끔하고, 주변이 깔끔하니 업무의 방해물이 없어서 속도가 빨라질 수 밖에 없는겁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라인더에 원두를 담은 후 이 봉투를 아무곳에나 두지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립니다. 왜냐면 이 봉투를 버리는 행위를 또 한 번 하는게 행동과 시간의 낭비인 것을 알거든요.


  생각을 하지 않고 일하면 악순환에 빠집니다. 점점 매장이 바빠집니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음료가 점점 많아집니다. 몸이 바빠지고 힘들어지니 안그래도 단순했던 생각이 더 단순해집니다. 복합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기 싫으니 하나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오더는 늦어지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주문서는 더 빠르게 쌓여갑니다. 압박감에 얼른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몸은 더 바빠지지만 블랙홀에 빠진것처럼 진척이 없습니다. 이젠 뭐부터 건드려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옵니다. 


  생각하면서 일하세요. 몸을 움직이기 전에 분단위로 혹은 소화가능한 업무량 단위로 업무를 나눠서 계획을 그려보고 행동하세요. 침착하게 움직이세요. 그렇게 순차적으로 집중해서 해결하다보면 원활하게 진행될겁니다. 그리고 매번 서비스타임이 끝날때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피드백하세요. '내가 아까 집중했으면 이 동선에서 이 행동까지 같이 할 수 있었느데', '아까 믹서통을 헹궈놓기만 했어도 음료가 3분은 빨리 나갔을텐데, 5초 벌어보려다 3분을 잃었네'라면서 피드백이 몇개월만 쌓여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데이터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생각자산 입니다. 그 생각자산이 내 몸에 훈련되면 그 사람을 우리는 '프로'라고 부릅니다.


  추가로,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단순작업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식당의 경우 실버웨어를 닦아서 봉투에 담거나 통에 보관하거나 하는 것도 단순작업이죠. 그냥 닦으면 되지 하면서 덤비지 마세요 제발. 처음부터 분류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일이 빠르게 해결됩니다. 분류하다가 닦다가 봉투에 넣었다가 다시 닦다가 분류했다가 분류하다보니 뜨거운 물이 식어서 다시 받으러 갔다가... 위 일못러 3번의 케이스가 됩니다. 단순 작업의 경우 내가 한가지 행동만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계획해야하지 가 생각의 핵심입니다.






4. 견뎌라


  어떤 걸 견디라고 하는 걸까요? 상사가 욕하면 참고 견뎌라 뭐 이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순간의 자극에 반응하지 말고, 고객의 압박에 동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문제를 드려볼게요. 직원이 음식을 카트에 싣고 테이블에 제공하러 갑니다. 가는 길에 고객이 이 직원을 부릅니다. 이 직원의 다음 행동 중 맞는 것은?


① 고객은 왕, 그 고객을 즉시 응대해드린다.

②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고객의 호출을 무시하고 하던 일을 마무리 한다.

③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 음식만 제공해드리고 바로 오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하던 일을 마무리 한다.

④ 네 고객님, 잠시만요. OO씨 4번 테이블 고객님께서 찾으십니다. 부탁드릴게요. 라고 말한 후 하던 일을 마무리 한다.


  사실 저는 음식 들고가는 데 부르는 손님도 참 이해가 안가요. 자기 음식 들고 오는 직원이 오다말고 다른 테이블 응대하면 자기도 짜증날거면서.


  정답은 ③, ④이죠. 지금 들고가는 음식도 고객서비스이고, 고객이 나를 호출하는 것도 고객서비스입니다. 경중은 먼저 요청한 고객에게 먼저 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이 압박을 못견뎌요.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든 한 테이블은 기다려야 하는데 당장 나에게 압박을 주는 손님에게 먼저 가버린다는거죠. 더 심한 경우에는 주문을 받고 잊어버릴까봐 음식을 다시 리턴해서 주문을 찍고 다시 나갑니다. 소중한 고객의 주문을 잊어버릴 순 없으니까요. 


  내 한계 이상으로 많은 업무가 쌓인다면 고객님께 양해를 구하고 먼저 해야하는 일부터 해결하세요.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 한마디를 못해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 말이라고 이 한마디를 못해서 정작 먼저 음식을 요청한 고객은 뒷전으로 만들지 마세요. 음식을 가져가다가 고객이 호출해서 주문을 받고 다시 음식을 리턴하는 와중에 다른 고객이 찾으면 그땐 어떡할거에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고객에 대한 압박은 아니고, 내 스스로의 업무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 보통 주방에서 음식이 나오면 종으로 알려줍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듣고 직원은 그 음식을 어느 테이블에 나갈지 확인한 후 가져다 드립니다. 어떤 직원이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어요. 그 직원은 손에 여러개 그릇을 이미 들고 있었지만 종이 울리니 그걸 그대로 그 테이블에 다 쏟아놓고 음식을 가질러 갑니다. 음식을 받으러 가는 곳과 설거지할 그릇을 놓고오는 곳은 같은 주방입니다. 뭐 물론 큰 업장의 경우 세척파트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은 주방에서 해결합니다.


  여기서 맞는 행동은 치우던 그릇을 마저 치우고 주방에 가서 놓고 손을 한번 씻고 음식을 가져가면 됩니다. 그 테이블의 접시 몇개 더 가져온다고 시간이 1분 2분 이렇게 지나지 않아요. 업무 중 단순한 행동들은 생각보다 시간이 짧습니다. 하다못해 손에 들고 있던 거라도 가져와야죠, 테이블에 놓고 올게 아니라. 


  이 경우도 그렇고, 위 세션에서 생각하면서 일하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고, 이 견디는 것을 잘 못하기 때문에 압박에 대해 스스로 부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첫 단추에서 압박을 견디지 못하면 추후에 더 많은 압박을 견뎌야 합니다. 


  릴렉스 하게 진행하세요. 어차피 결국은 다 당신이 해야하는 일입니다. 






5. 커뮤니케이션


  현장에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사무실처럼 기록을 해두고 공유하면서 내용을 전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결정된 건에 대해서 구두로 전달해야하는 게 현장의 커뮤니케이션 입니다. 그래서 전달해야하는 사람, 전달 받는 사람 모두가 잘 해야합니다. 


  전달을 해야하는 사람은 문장을 똑바로 이야기 해주세요. '야 저 그것 좀 가져와' '그거 몇번이야' '저기 손님 찾는다' '이거 저기 테이블 가져다 줘'라고 커뮤니케이션 하면 안됩니다. 개떡같이 말해놓고 찰떡같이 듣길 기대하지 마세요. 혹여나 그 사람이 눈치가 좋아서 찰떡같이 듣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개떡같이 말하지 마세요. 

  

  '야 저 그것 좀 가져와' → OO야, 주방에서 스텐 서드팬 두개만 가져다 줄래?

  '그거 몇번이야' → 이 갈릭 파스타 몇번 테이블이야?

  '저기 손님 찾는다' → 11번 테이블에서 고객님이 찾으신다 OO야 응대 부탁해

  '이거 저기 테이블 가져다 줘' → 쉬림프 피자 라지 사이즈 3번 테이블로 러너가자


  이렇게 바꿔 말하세요. 성인이 되어서 야 저 이 이거 저거 가 뭡니까. 전달은 명확하게!


  그럼 전달 받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정확히 전달받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줘야 합니다. 


  '야 저 그것 좀 가져와' → OO야, 주방에서 스텐 서드팬 두개만 가져다 줄래?

- 대답은 '네 스텐 서드팬 두개 가져올게요'


  '그거 몇번이야' → 이 갈릭 파스타 몇번 테이블이야?

- 대답은 '갈릭 파스타 2번 테이블입니다.'


  '저기 손님 찾는다' → 11번 테이블에서 고객님이 찾으신다 OO야 응대 부탁해

- 대답은 '네 제가 11번 테이블 응대하겠습니다'


  '이거 저기 테이블 가져다 줘' → 쉬림프 피자 라지 사이즈 3번 테이블로 러너가자

- 대답은 '테이블 세번 쉬림프 피자 라지 사이즈 러너갈게요'


(추가로, 삼번 테이블을 세번으로 대답하는 이유는, 문법에는 당연히 맞지 않지만 3, 4 혹은 5, 9와 1, 2 등의 숫자는 발음이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보통 '기수'로 전달하고 전달 받은 사람은 '서수'로 답변합니다. 하나번 둘번 세번 네번 다섯번 아홉번 등으로)


  이 커뮤니케이션을 '에코'라고 합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복면복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뭔가 킹받네요 군대 생각하니까. 같은 문장을 메아리 처럼 반복해서 명확하게 전달받았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거죠. 이렇게 대화를 해야 업무 중 오해가 없습니다.


  그리고 구두로 전달하는 대화법 외로 현장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창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빌 bill'입니다. 빌bill은 약속입니다. 현장에서는 이 약속을 믿고 음식을 만들고 추가로 물어보지 않고 서비스를 행하죠. 서비스가 전체적으로 엉망인 곳은 이 약속이 명확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한가지 키에 대해서 변수가 많거나, 빌에 없는 내용을 구두로 전달해서 혼동되게 하는 경우죠.


  관리자는 이 약속을 명확히 해서 포스를 설정하세요. 그리고 특별요청의 경우 메모기능을 만들어서 전달하세요. 텍스트로 남겨야 혼동이 덜합니다. 가장 좋은 건 매 건마다 대화없이 진행하는 게 가장 원활한 서비스 상태입니다. 빌bill은 서비스타임에 가장 의존해야 하는 기능이자 약속입니다.






6. '감정'은 집에 고이 모셔두고 출근하기


  사실 이건 저도 아직 잘 안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감히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감정에 휘둘리며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너무도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 때문에 이야기 해볼게요.


  제발 일하러 와서 울지 마세요. 그리고 위사람도 쟤 한 번 울때까지 조진다면서 갈구지 마세요. 질책과 피드백은 당연히 오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런 매 상황마다 화내고 소리지르고 울고 이럴 순 없잖아요. 무미건조하게 이야기 하세요.


  'OO씨, 2번 테이블에서 컵 소리가 크게 나서 고객이 흠칫 놀라셨어. 앞으로 조심해' 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하지만 보통 우리의 매니저님들은 이렇게 곱게 이야기 하지 않죠. '야, 손님 먹다가 체하라고 컵을 고따위로 놓고 오냐? 아예 던지고 오지 그래?'라고 이야기 하죠. 자기는 성질대로 질러놓고서 그걸 듣고 얼굴이 구겨진 직원에게는 회사에서 감정을 보인다고 호통칩니다. '왜 울려고? 여기가 네 감정대로 일하는 곳이냐? 기분 좋게 일 안해?' 


  네.. 제 얘기입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저는 업장에서 내 밑의 직원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와 함께 좋은 길을 걷자고 기대하지 않아요. 그런 기대를 요구하지도 않아요. 정해진 업무를 잘 실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직원이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면 칭찬해주면 돼요. 그런데 그럴 의지도 없는 아이를 붙들고 그런 발전을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역할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그보다 더 많은 발전을 도모한다면 좋은 뜻으로 같이 해주셔도 좋지만 그게 당연히 해야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매번 되뇌이세요. '하.. 이렇게 쪼끔만 더 하면 좋을텐데 왜 안하지...'라면서 답답해하지도 마세요. 그건 그 사람의 몫입니다.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직원이라면, 기회를 세번만 주고 그래도 안될 때는 떠나보내세요. 대신 그 기회는 명확히 말해주세요. 어느정도 범위까지 수행할 수 없다면 우리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잔인한가요? 하지만 직장은 학교가 아닙니다. 그 직원이 최저임금에도 못미칠 업무퀄리티라면 보내줘야 하는 게 맞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그와 같은 금액을 받고 일하고 있는데 만약 그 미숙한 직원을 계속 데려간다면 충분히 역할을 하는 다른 직원들을 보호하는 행동은 아니에요.


  그 외의 행하지 말아야 할 감정들을 나열하자면 자기연민, 자기합리화도 모두 포함된 이야기, 고집부리지 않기,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합리화하지 않기, 자신의 불이익에만 집중하지 않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거론하고 싶은 건 '사내정치'입니다. 제발 하지 마세요.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서 힘을 부풀리고, 그 힘으로 한 집단을 누르려고 하지마세요. 현장에 가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다툼 중 하나가 키친과 홀의 분쟁이에요. 홀이 이 매장을 장악하냐, 주방이 이 매장을 장악하냐 하는 세력다툼을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어요. 옛날 사람일 수록 새로 들어오면 이 편가르기와 정치질부터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기싸움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혹여나 이런 사내정치를 행하는 사람이 내 기를 누르려 한다면, 원칙과 근거로만 상대하세요. 그렇게 한다면 나중에 일이 생기더라도 원칙과 근거를 제시한 나라는 사람은 그 분란의 원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꼰대들에게도 나의 정당함을 보호할 수 있어요. '그래도 너보다 어른인데 직급 같다고 그러면 되냐'라고 한다면 '저보다 어른인지 아닌지는 이 주제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약속을 어기고 매장에 피해를 만든 건 제가 아니니 저에게 책임을 묻지 마세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거지'라면서 사내정치를 방관하면 점점 도가 지나치는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사내정치를 시도하려고 한다면 초반에 사내정치에 대해 받아줄 의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꼭 전달하세요. 이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내 사내정치를 방지하는 데 노력하고, 사내정치를 용인해주는 곳이라면 당장 퇴사하세요. 좋은 직장 많아요.


제가 미생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는 것이다.  


 - <미생> 9화 중




  혹시나 상대의 무례함이나 억지부림이 힘들다면 이 말을 꼭 곱씹어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행동해보세요. 상대가 견디지 못함을 분명 경험할 수 있을겁니다. 내가 더 우월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세요.


  사내정치, 감정 이 것들은 우리의 음식, 우리의 음료를 더 맛있게 만들지 않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 퍼포먼스를 만들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퀄리티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됩니다. 업장에서는 업무와 관련한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게 원칙과 근거, 더 나은 업무효율에만 집중하세요. 이것이 기초가 되어야 그 위에 친목이라는 것도 생기는 겁니다. 




  이렇게 오늘은 일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봤습니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 일 잘하는 법에 대해서 나열은 되어 있지만, 외식업이라는 현장에 대입해서 풀어본 컨텐츠는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가 경험한 외식업을 토대로 하이 퍼포먼스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열해봤습니다. 저는 여기 모든 분들이 어느 업장에 가서도 일로 칭찬받고, 그 일로 스스로의 미래에 더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모두가 튼튼한 기초 위에 성장과 성공을 이루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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