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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기 Aug 27. 2022

자기 고집대로, 욕심대로만 일하다 훅 갔던 직장인이야기

부조리, 갑질에 동조하지 마세요. 관계주의적인 문화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MZ세대의 일하는 행태에 대해 요즘 이슈가 참 많습니다. 고생고생해서 입사했던 직장을 포기하는 사례를 보면 대부분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직장문화가 정말 잘 유지되고 있었는데 MZ세대의 유별남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걸까요? 


  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는 누군가가 이뤘던 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많은 부와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었지만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세대입니다. 네 고생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고민을 많이 한 세대는 아닙니다. 지금은 고등학생때부터 심플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윗사람들이 보면 답답할 겁니다.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왜 저럴까 싶죠. 근데요... 지금은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 돌파구는 우리가 새로 개척해야 합니다. 


  이런 세대의 사고방식의 충돌로 인해 정말 많은 갈등을 빚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아무 고민 없이 심플하게 하라는 대로 흘러갔던 세대의 행동이 아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이 행동들이 이슈가 되면서 충돌이 발생합니다. 이제는 어디서 어른한테, 어디서 감히 이런 것도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이런 말이 내가 윗사람으로서 정당함을 설명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증명하는 말 중 하나가 되어버렸죠.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보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지만 업무 행태가 옳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저렇게 일하면 안된다는 것을 여러번 다짐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서 더 나은 직장생활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쓸데없는 위계질서, 정치질, 부조리, 나이가 우선이 되는 결정, 나이로 찍어 누르려는 비겁함, 윗사람에게 잘보이는 것에만 급급한 모습, 찰떡같이 말하지 못하고 개떡같이 말하면서 상대가 찰떡같이 알아듣지 못하면 듣는 사람에게 비난하는 무식함 등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은 한 셰프의 여러 에피소드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어떤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의 행동을 돌아봐야 하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 에피소드 1


  제가 근무했던 매장이 수제맥주가 주 주류인 펍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런치가 정말 너무 안되는 매장이었어요. 런치에 문을 닫으면 인건비와 관리비를 아끼는 차원에서 좋을 것 같지만 '쇼핑몰'에 입점해 있다보니까 계약상으로 쇼핑몰의 운영시간에는 무조건 업장을 열어야 했어요. 그래서 런치 매출을 올릴 방법을 강구해야했습니다.


  어떻게든 운영은 해야하니 런치에 '컨셉'을 추가해서 런치메뉴를 운영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저 포함 매장 간부들이 어떤 컨셉으로 할지 고민이 정말 많았습니다. 음식은 쉐프가 만드니까 최대한 쉐프 의견대로 진행하려고 했지만 정작 우리 매장 쉐프는 자긴 가만히 있을테니 '컨셉 한 번 가져와봐' 이런 태도였어요. 그래서 어차피 생각도 안하고 있는 거 아니까 경양식을 제대로 해보자고 컨셉을 들이밀었지. 그리고 회사에서 주어진 시간도 가까워져서 더 생각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결국은 경양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셰프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아니... 그럼 자기도 처음부터 컨셉회의 참여해서 의견을 가지고 오던가. 컨셉이 정해진 후, 저는 '경양식'이라는 컨셉에 맞춰 메뉴판도 촌스럽게 제작하고, 테이블 세팅은 어떻게 할지 서빙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는데, 주방에서는 도저히 진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메뉴구성도 더 윗선의 메인셰프가 진행을 해야 겨우 틀이 잡히는 지경이었습니다. 


  컨셉은 경양식인데 완성된 걸 보니까 일본식의 돈까스를 선보입니다. 경양식으로 컨셉을 정했으면 넓게 핀 돈까스 위에 소스를 부어줘야겠죠. 접시의 가니쉬도 그 컨셉에 맞춰하지만 소스를 따로 제공하고, 와사비와 소금을 곁들이는 옳지 않은 방향으로 레시피가 완성됐습니다. 와사비랑 소금 주면 맛있는 거 저도 알죠. 하지만 컨셉이 정해진 이상 옳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구성은 안될 것 같다 얘기하니까 '너 졸라 고지식하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클래식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당연히 고정관념을 가지고 구상해야지, 고정관념을 깨라는 말이 필요할때가 있고 아닐때가 있습니다. 클래식을 고정관념으로 매도하면 근본이 망가지는 법인데... 


  여차저차해서 경양식이 시작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처음 경양식이 시작한 날 저는 휴무였고,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본사 차장님이 있으니까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메뉴도 같이 참여하고 서비스는 문제 없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시작하자마자 난리였죠. 휴무날 여유롭게 서점에서 한창 시간 보내고 있을때 알바생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그만두고 싶다고. 하...ㅅㅂ 또 뭔일이야?"라고 하니까 주방에서 '저 병신같은게'라고 알바생에게 욕을 했다는 겁니다.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이미 주방은 첫 주문부터 멘붕이었습니다. 심지어 본인들이 하는 메뉴가 어떤 메뉴인지도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저한테 '트리플세트'가 뭐냐고 전화가 왔었거든요. 돈까스와 생선까스, 함박스테이크를 한 접시에 담아주는 메뉴였었고, 메뉴판에도 아주 친절히 써 있었습니다. 제가 분명 한참전부터 여러번 프린트해서 메뉴를 전달했었는데, 단 한번도 그 반페이지도 안되는 메뉴판을 확인해본적이 없다는 뜻이겠죠. 


  메뉴가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경양식 메뉴야 뻔하죠. 그리고 이 메뉴는 제가 결정해서 준 것이 아닌 메인쉐프의 결정하에 만들어진 메뉴였습니다. 메인셰프와 매장셰프 사이에 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오간 적이 없었던거죠. 생각해보면 메인셰프도 그 몇개 안되는 메뉴 구성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겠죠. 웨스턴에서 주방경력이 몇년인데...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메뉴 파악도 안되는 사람은 셰프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실 경양식 정도의 메뉴를 구상하고 설정할 수 없는 사람은 셰프를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첫번째 멘붕이 터지고, 심지어 재료도 많이 준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몇 테이블 오지도 않았지만 몇 개 주문을 넣었는데 금방 메뉴가 솔드아웃 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지금 들어온 게 마지막이고 이제 솔드아웃이라고 했지만 차장님이 제대로 못듣고 그 알바생한테 가서 이거 솔드아웃이라 고객님에게 다른 메뉴로 주문해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오라 했다고 합니다. 이건 차장님이 잘못한거지. 그리고 이 사람이 의사소통 안되고 테이블 번호 못외우고 머리보다 행동이 빨라 온갖 실수를 저지르고 바쁘다며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쉬어버린 제 잘못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알바생이 차장님 말대로 주문 바꿔오니까 주방에서 '아니 된다고 했는데 왜 쳐 바꿔온거야, 저 병신같은게' 이렇게 된거죠. 


  저도 열심히 그 알바생을 달래줬지만, 결국 그 셰프도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사과를 하면서 저한테는 이야기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셰프와 제가 15살 차이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15살이나 어린 제가 난리칠 것이 무서워 그런 부탁을 했다는 걸 상상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조용히 지나가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매장에 메뉴 컨셉을 같이 잡았던 본사 차장과 그 매장의 셰프가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 말대로라면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두 사람이 모범을 보이기는 커녕 정말 말도 안되는 천방지축 어리둥절 엉망진창 매장운영을 해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해서 첫 경양식 런치는 박살이 났습니다. 이 에피소드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다양하죠. 우선 자신의 업무에 대해 굉장히 성의가 없던 것입니다. 컨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 하나 없던 모습도 불성실한 모습이지만 그렇게 해서 결정된 건에 대해서도 아무리 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프로페셔널하게 진행했어야 하지만 모든 면에서 진행이 다 망가진 점, 그리고 그 화를 만만한 알바생에게 풀었던 것도 정말 어른스럽지 못했습니다.



 - 에피소드 2


  위에서 말했듯이 런치가 아주 문제 덩어리 매장이라서 매달 정산때마다 인건비 이슈가 생깁니다. 그래서 당시 그 회사의 계약시간인 하루 10시간 근무, 주 50시간 근무시간을 넘지 않게 근무를 했어야 했죠. 연장근무로 인해 추가연장수당이 있다면 연장근무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일은 없는데 연장수당만 받아가려는 직원들이 간혹 있거든요.

  

  사실 시간 조정은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주방의 근무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키친의 모든 직원들이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했기 때문입니다. 런치시간이 그다지 바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정말 많이 밀린다거나 프랩(서비스 타임에 원활히 음식 조리를 하기 위한 재료준비과정)할 시간이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같이 출근할 필요가 없었죠. 몇명은 오픈에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몇명은 조금 늦게 출근해서 마감까지 근무 한다던가, 혹은 중간에 스윙타임(한가한 시간)에 돌아가면서 쉰다던가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꺼리는 이유가 주방관리자가 신경써야 할 게 하나 더 생기기 때문입니다. 귀찮다는 거죠. 


  저도 주방에서 꽤나 오래 일했기 때문에 주방의 환경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면서 주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라는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미리 사족을 답니다.


  그 셰프는 완강했습니다. 꼭 같이 출근해서 꼭 같이 퇴근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당시 매장 오픈 시간이 11:00 ~ 24:00(13시간)이었고, 매장 오픈 준비는 10:00부터 주방퇴근시간은 23:00 입니다. 그럼 결국 13시간을 매장에 상주해야한다는 건데, 전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게 저렇게까지 매장에 오래 있고 싶을까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라면 하루 10시간 근무라면 1시간만 휴게시간을 갖고 11시간만 상주하고 싶을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그 매장이 정말로 너무나 좋았나봅니다.


  그 셰프 입에서 브레이크 타임 얘기가 나왔습니다. 두시간 브레이크 타임을 갖자. 당시 저 쇼핑몰 내에 브레이크 타임 없이 운영하는 것이 입점 조건이었기 때문에 브레이크 타임을 본사에 건의하는 것 자체가 부담인 상황인데다 굳이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도 근무시간을 저렇게 부담스럽게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였습니다. 피크시간 제외하고는 정말 한가한 상태여서 주방에서도 일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어슬렁어슬렁 하다가 핸드폰 만지다가 담배피러 나갔다가 밖에 사람 구경 좀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저 본인들의 노동강도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욕심때문에 회사에 말도안되는 것을 건의하고 요구하라는 것이죠.


  저는 극구 반대 했습니다. '매출도 안좋은데 뭐라도 팔아야지 무슨 브레이크 타임이냐. 브레이크 타임 없이 쉬는 시간 돌아가면서 쉬어도 충분하다'라며 이건 건의자체가 될 수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이 회의를 홀에 있는 한 테이블에서 하고 있었는데, 그날 홀에 손님들도 꽤 있었지만 "니가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개새끼야!!!"이러고 소리 치고 가버리는 겁니다. 저는 너무 놀라고 벙쪄서 멀뚱멀뚱 보면서 뭐지 저.... 암튼 정말 놀랐습니다. 


  그리고 후에 나와서 이야기하길 자기가 주방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으로 자꾸 이야기를 번복하는 게 스트레스라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럼 아직 결정된 것도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브레이크 타임 가지겠다고 직원들에게 약속하고 왔다는 건데 그 부담감을 왜 엄한 사람과 엄한 회사에 강요하고 무례한 행동과 매장에 피해까지 끼치는지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옆에 차장님의 반응도 정말 웃겼습니다. 음 그런 거로 스트레스 받을 수도 있겠군 뭐 하나 배웠다는 표정으로 끄덕끄덕 하고 있는데, 대체 뭘 이해하고 있는거야. 매장의 어느 한 파트의 관리자, 책임자라는 사람이 저런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데 대체 어느부분에서 이해를 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매장운영이 더 중한 시점에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건 절대 포기 안하려고 말도 안되는 딜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진짜 학을 떼서 저도 추후엔 별말 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몇개월간 매장 망가지는 걸 천천히 보고 있었죠. 매장이 망가지고 어려워지고 매출이 더 떨어지면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겪을 걸 전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런 게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출퇴근 같이 하고 쉬는 시간 같이 가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매장운영 안되고 적자나서 자기들 일자리 잃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지... 


  저런 쓸데 없는 고집 부리는 직원은 아무리 경력이 있다고 해도 고용하지 마세요. 그리고 강경하게 얘기 할건 얘기 해야죠. 손님이 다 있는 곳에서 욕하고 소리치는 50살 가까이 되는 어른이 저러고 있으면 태도에 대해 징계를 줘야죠. '나는 저 사람의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싶어'라며 앞뒤없는 연민은 접어두세요. 저 나이에 자기 스트레스 하나 관리 못해서 온갖 피해주는 건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 에피소드 3


  이게 진짜 찐 에피소드인데, 저도 살면서 경찰에 처음 신고해봤습니다. 여기서 아까 에피소드 1에 나오는 알바생이 다시 등장합니다.


  주방에 특이사항, 고객요청사항을 전달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뭐 예를들어 소스는 따로 주세요. 오이는 빼주세요. 샐러드 드레싱 다른 걸로 바꿔 주세요. 갑각류 알러지가 있어요. 아직 일행이 오기 전이라 음식 천천히 주세요 등의 요청입니다. 그런데 이걸 말로, 구두로 전달하니까 분명 대답까지 했지만 요청사항을 무시하고 음식을 그대로 주는 경우가 많아요. '우린 못들었는데, 그런 말 못들었는데'라는 말로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 이건 증거를 남겨야 겠다. 그리고 구두로 전달하지 말아야 겠다'라고 생각해서 포스회사에 요청해 주방메모 기능을 가져왔습니다. 포스에 보면 주방메모 기능이 있습니다. 주방에 주문서를 넣을 때 주문서에 주방메모가 같이 입력돼요. 그 주방메모에 요청사항을 남깁니다.

 

  처음엔 기능이 익숙하지 않을테니 주방메모 있으면 '주방메모 확인해주세요'라고 한달정도는 말로 전달해주겠다 했습니다. 주방과 협의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을 때는 '이제 주방메모 있다는 말씀 안드릴거에요'라는 말도 분명 전달했고 시간은 3달 4달이 지났습니다. 충분히 익숙해질 시간입니다. 


  사건은 제가 그 매장에서 근무하기로 한 마지막날 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매장은 이미 상당히 망가져 있었고 이 회사가 곧 망할 것 같아서 손절치려고 다른 직장을 구해놨었죠. 공교롭게도 그 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알바생이 정성스럽게 고객요청사항을  주방메모 적어 주방에 주문서를 넣어줬는데 음식이 요청사항을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나온겁니다. 알바생이 '이거 제가 뭐 빼달라고 메모 넣었는데…'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하니 그 셰프는 그 알바생에게 "야 너 안바쁘면 말해줘야지 너 바빠? 바빴어? 안 바쁘면 말해줘야 할 거 아냐."이랬다는 겁니다. 애초에 구두로 이야기 안하려고 한 기능인데 그리고 분명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히 협의가 되었지만 또 자기 성질대로 엄한 알바생에게 성질을 부린겁니다. 벙찐 알바생은 주방에서 나와 저에게 이 얘기해주는데, 비록 망할 것 같아 나는 다른 곳으로 가지만 마지막으로 이건 해결해놓고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방에 들어가서 그 셰프에게 말했습니다.


  "이거 저희 구두로 전달하는 건 한달정도만 한다고 했었잖아요." 

  "나가라" 

  "이거 얘기는 확실히 해야죠. 말로 전달하는 거 분명 일정기간까지만 한다고 했었잖아요." 

  "나가라고" 

  "지금 종결 지어야 할 거 같은데 이거 구두로 전달하는 거 어떻게 할까요." 

  "씨발 꺼져!!!!" 


  그 셰프는 손에 젓가락을 들고 있었고, 그 손으로 주먹 쥐고 저를 후려쳤습니다. 아마 어차피 마지막날이니 얘기고 뭐고 공격적으로 태도를 취한 것 같아요. 


  "뭐하는 짓이에요? 이건 그냥 못넘어가요"


  라고 하니 갑자기 도마에 있던 칼을 내 눈앞에 찌를 듯이 들이댔습니다. 저도 순간 식겁했습니다. 지금도 칼로 조금이라도 장난스럽게 휘두르는 걸 보면 아직도 가슴졸이며 놀랍니다. 저를 찌를 의도가 없는 건 분명 아는데 한편으로는 또 혹시 어떻게 압니까. 본인 성질대로 행동이 먼저 나오는 사람인데...


  우선 이 사태에 대해서 차장님에게 먼저 보고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사람 정이 떨어진다 느끼는 게 마지막날까지 꼭 이렇게 해야되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게요, 저 나가는 마지막날까지도 정말 엉망진창인 사람이네요'라고 이야기 하니, 회사 입장에서는 그저 직원 두명이 말썽 피운 걸로 밖에 보지 않는다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걸 보니 정말 온갖 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 차장은 당시에 저와 이미 4년 5년을 알고 지냈던, 이전에 제가 점장으로 모시던 분이셨는데... 심지어 그 직장도 제가 원하는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 분이 제안을 해서 일하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감당이 될 수준이 아닌 사람일 것 같고, 제가 남겨놓은 제 직원과 제 알바생에게도 충분히 위협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찰관님 6명 정도 오시고, 쇼핑몰에 경찰들 오니까 매장 사장님들, 고객들 할 것 없이 구경하러 모여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게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찰에 넘기더라도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하고 처리했어야 했는데 회사는 그러지 않았죠. 그 쇼핑몰에 입점한 가맹점이 아닌 쇼핑몰 본사에서 운영하는 곳에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나서서 공론화한겁니다.


  그러고 CCTV부터 확인했는데 폭행한 장면, 칼로 위협한 장면 모두 CCTV에 연출한 거 마냥 너무 명확하게 잘 담겼습니다. 이 셰프도 자기 화가 주체가 되지 않아 CCTV에 자기가 어떻게 담겼는지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표정까지 리얼하게 담겼습니다. 그래서 뭐...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근데 그 와중에 나이 많은 경찰관이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길래 '당신은 조용히 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 하고 절대 용서의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좀 떨어져서 각자 조사하고 있는데 경찰측에서는 합의를 먼저 시도하게 한건지 그 셰프는 사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사과가 사과가 아니었죠. 


  "내가 때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휘두르다가 니가 맞았다면 미안하다"

  "사과 똑바로 안해요?"하니까 앵무새마냥 저 말만 반복하는 겁니다.


  "내가 때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휘두르다가 니가 맞았다면 미안하다"


  진짜 못들어주겠다 싶은데 일단 얘기는 나눠야겠다 싶어서 경찰분들 보호 아래 대면하고 앉아서 말을 꺼냈습니다. 대체 불만이 뭐냐고. 제가가 맨날 홀 편만 드느라 자기 공격하는 게 싫었답니다. 정당하게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끼는 것까진 제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정말 저런 피해의식에만 의존해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부당한 게 있으면 부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도 점장으로서 제가 해야할 일인겁니다. 말도 안되는 걸로 혼난 알바생이 있으면 홀 점장이 가서 얘기를 해야죠. 그리고 요점은 혼난 것도 혼난거지만 홀과 주방사이에 '시스템'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 반드시 다시 협의를 했어야 했던겁니다.


  "홀과 주방사이에 시스템상 문제가 생겨서 의견을 말하는 게 왜 홀 애들을 챙기는 행동으로 보는 거에요?"


  그리고 두번째가 내가 너무 유별나대. 왜 대충대충 넘기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뭐든 다 걸고 넘어지냐고. 그럼 본인도 내가 이야기 하자고 했을때 좋게좋게 생각하고 이야기 했어야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좋게좋게 라는 말입니다. 


  '좋게좋게'에 숨은 뜻은 (비록 니가 힘들고, 어렵고, 짜증나고, 화가 나고, 성폭행이나 부조리 등으로 니가 피해를 보더라도 너만 눈감으면 다 해결되는 일이니 나를 위해)좋게좋게 넘어가자라는 뜻입니다. 좋게좋게라는 말은 제 경험에서는 단 한 번도 피해자를 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가해자를 위한 말입니다.


  그리고 세번째가 저 알바생도 20살 넘은 성인인데 자기가 직접 불만표출 할 수 있는 걸 왜 다 니가 나서냐는 겁니다. 


  "아까 무슨 일마다 걸고 넘어지는 저보고 유별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칼로 위협한 건 살인미수이기 때문에 검찰로 넘길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 정도까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저 이 사람과 회사에 경고 차원에서 신고한건데, 뭐 합의금 받을 생각도 없었고.. 하지만 그건 신고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사정사정해서 자필 서면으로 처벌 원하지 않은 다는 메세지를 써서 서명까지 하고 전달해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몇주후에 차장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야, 너 경찰에 처벌 원하지 않는다고 얘기 안했냐? 경찰에서 왜 또 전화오는데"라며... 


  "경찰측에서 처리가 늦었나보죠. 그리고 지금 저한테 이렇게 전화해서 취할 태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경찰에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사정사정했지 싶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더 싫었던 점은 제가 나이가 어리니까 폭행과 살인미수를 저지른 사람이 아닌 경찰에 신고한 제가 버릇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 현장에 같이 있던 직원아줌마도 어른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른인데...'라면서. 그 놈의 어른.. 그 사건날 휴무였던 다른 주방형도 나보고 그러면 안된답니다.


  이 주방형도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 중 한명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맡았던 매장이 두개였고, 그 중 한 매장은 규모가 작아 주방직원한명, 홀직원한명만 배치해도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여유로웠는지 자신의 설거지를 이 홀 아르바이트에게 넘기고 퇴근해버리는 겁니다. 매장이 두개였기 때문에 이 홀 알바가 정리가 마무리 되면 다른 매장으로 넘어와 홀의 업무를 했어야 했는데 설거지를 하고 있길래 "하지마, 그걸 네가 왜 하고 있어"라며 데려왔습니다.


  다음날 예상대로 설거지가 되어있지 않은 주방기물을 보더니 저에게 어제 마감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마감 직원은 왜요?"

  "이거 설거지 왜 안하고 갔어?"

  "그 설거지를 홀마감직원이 왜 해요?"

  "그럼 이걸 나보고 하라고?"

  "형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뭐에요?"

  "뭐?!"


  그러고나서 저에게 물건을 집어던집니다. 닭, 주방기구 등... 무게가 꽤 있는 것들이라 맞는데 둔탁하더라구요. 그 형이 화가 진정되고나서 앉혀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 매장에 아직 고객이 있어서 홀직원이 상주하고 있는 상태에서 주방의 일을 '도와주는'거라면 저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도와주는 일을 반드시 해야하는 업무로 여긴다면 저는 그 일에서 제 직원을 배제하고 홀업무에 집중시킬 수 밖에 없어요. 도와야 하는 일과 업무는 분리해서 생각하셔야죠."


  라는 말로 설득하니 미안하다고 합니다. 제가 마냥 불만이 생기는대로 회사에 이야기 해서 해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충분히 제 선에서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도 제 역할입니다. 홀 점장이라고는 했지만 점장이라는 직책은 매장 전체를 관리해야하기 때문이죠.


  나이가 많으면 직책에 상관없이 용서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에서 정말 할말을 잃었습니다. 점장이라는 이유로 역할은 역할대로 하지만 어려운 일은 참고 넘어가야 하는 분위기. 직장에서 이런 문화는 정말 없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래도 어른인데, 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세요. '그쵸 그래도 어른인데 참 잘하는 짓이네요'


  이런 사태들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이 사람들이 여태까지 이어가는 직장 문화는 관계중심적 직장문화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업무의 성과와 성취 위주가 아닌 권력간 우위를 가늠하는 일, 나이를 우선으로 하는 상황해결 등 기업이 나아가야하는 방향과 전혀 관계없는 방향입니다. 


  브레이크 타임을 건의하는 과정에서도 회사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내 밑의 직원들에게 주방의 수장으로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우선했던 것이고, 회사의 이익과 관계없이 기싸움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죠. 그리고 갈등의 상황에서도 나이가 많고 윗사람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을 내 맘대로만 이끌어가려는 유아적인 행동도 결국은 관계중심적인 직장문화에서 이어오던 것들입니다.


  기성세대의 회사문화는 회사 내에서 말썽만 일어나지 않게 상급자들을 압박합니다. 상급자들은 이런 압박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면 근본적인 것에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 그저 묵살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근본적인 것들을 다루려면 분명 시끄러운 일이 생기고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들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가장 아래 있는 사람이 희생하는 방식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몸소 느껴보면 그게 익숙해지겠죠. 


  그래도 어른인데... 그러면 안되지 라는 말의 근본은 '말썽 일으키지 말고 너만 참고 넘어가'라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 조차도 나를 희생하며 넘어가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게 익숙해지면 나 또한 직장 안에서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이 굴레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을 쓴 정문정 작가님께서 세바시에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불만을 토로하면 예민하다는 말을 듣던 그 분은 그렇게 참고 넘어가는 것을 배워갔고, 그리고 부작용이 생깁니다. 참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났다고 합니다. 자신은 어떤 부당한 일이 있어도 참았습니다. 참는 게 당연하다고 배워왔으니까요. 원래 그런거니까, 좋게 좋게 넘어가야 하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이 손을 들고 '그런 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토로를 하는 것을 보고 '아니 자기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 왜 이렇게 유별나'라고 속으로 생각한거죠. 스스로에게 공포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미워해야 할 사람은 나와 같이 부당함을 느끼고 참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이 부당함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갑질에 동조하는 역할이 되지 마세요.


  더 심한 문제는 이런 정치적인 관계에 떠밀려 지금 청년들이 힘들게 입사한 회사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와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피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까요? 저는 직접 맞서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해결해보고, 그렇게 작은 만족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내가 이런 일들을 왜 어려워했었지 라는 생각이 들겁니다. 드라마에서 감명깊게 저에게 닿았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약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우리는 강해지지 않으려던 사람들이었어요."


  직장 뿐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도 관계주의적인 문화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세요. 그리고 목소리를 내기전에 이것이 해야할 말인지 아닌지 원칙과 근거를 잘 생각해보고, 그것을 예의있게 '즉시' 말하는 것을 노력하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신경써야 할 것 중 많은 것들이 자유로워집니다. 



  그 후, 저는 옮긴 직장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나오게 되었고(https://brunch.co.kr/@lugis/17), 잠시 아르바이트 차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그 셰프는 그 알바생에게 "루기 다시 온다며?"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걔는 지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냥 검찰에서 그 셰프님께 어떤 잘못을 했는지 친절히 알려주게 할 걸 그랬어요. 그 셰프가 그만두기 전까지 2주 정도 얼굴 마주하면서 일했었는데, 새침하게도 정말 한마디도 안하더라구요. 심지어 업무내용도 급하게 알아야 하는 것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죠. 끝까지 일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그 셰프는 그 큰 쇼핑몰에서 자신이 구경거리가 된 게 창피했던 모양입니다. 그만둔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더 일하긴 힘들 것 같다며.. 그리고 옮기려는 다른 직장에서 지출관리까지 셰프가 맡아야 하는 업무라고 했나봅니다. 사실 여기서도 자기가 했어야 했지만 모른다는 핑계로 제가 다 떠맡은 상태였습니다. 지출관리가 안되니 재고관리도 엉망이었죠. 공부를 해서라도 했어야 하는 걸 옮길때 되서야 공부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간 관계주의적인 문화로 나이를 밀어붙이며 떠맡겼던 일들을 이제는 본인 스스로 하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겠죠.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인 미생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천과장!! 재밌는 친구네, 일을 해 일을 회사 나왔으면 힘빼지 말고. 사람이 왜 꾀임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지 알아? 게임을 하니까 빠지는거야. 일하러 와서 게임이나 하고 있다가는 자네부터 꾀임에 빠질거야. 끝나고 술 한 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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