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인스타그램 갈무리
“종종 미국이 ‘민주적인’ 국가로 생각되곤하지만, 사실은 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미국보다 시위자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더 있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기본적으로 큰 관심이 없다. ‘미국 특수주의Exceptionalism’ 때문에 우리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특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제규격인 A4 대신 레터지를 계속 사용하고 킬로미터 대신 마일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God bless America!,’ 즉 그리스도교(그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의 신이 미국을 모든 나라 중에 특별히 선택해서 세계를 향한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있다.
미국의 국토 넓이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 규모, 경제의 다양성, 기업의 융성, 최첨단 기술, 최고의 대학과 연구기관들, 최고의 부, 세계에 통용되는 영어와 달러화, 최고의 군사력,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자연자원 등, 뭐든 최고의, 최대의, 최신의 것들이 다 미국에 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구의 40여 퍼센트만 여권을 가지고 있는 정도다. 미국에는 극지부터 아열대 기후까지 모든 자연환경이 다 있고, 볼거리가 없으면 사막에 라스베가스 같은 새 도시를 일으켜 세워 만들어낼 정도니, 구태여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거구의 미국인들이 그 좁은 비행기를 타고 열 몇 시간을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불가하게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해외여행과 인천공항, 비행기 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게다가 외국에 나가면 뭐든 불편하다고 여긴다. 그나마 갈 만한 데가 유럽이라고 치면, 차가 아닌 보행위주의 거리환경부터 적응이 안 된다. 대중교통에도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체구가 커서 어딜가든 다 비좁다. 큰 건물, 큰 차, 큰 집에만 익숙하던 이들이라 그렇다. 무조건 큰 것이 좋고 강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여기는 게 인간인 것을 생각하면, 미국 사람 앞에서 뭘 자랑해도, 허, 그러냐, 그래 알았다, 수준의 반응 밖에 예상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세계민주주의 경찰국가라는 것이다. 국가의 역사 자체가 곧 세계민주주의의 역사니까. 처음부터 반식민전쟁을 통해 왕권과 국교를 거부하고 대통령과 의회, 연방이 이끄는 완전히 새로운 자유의 나라를 세운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경찰국가를 빌미로 전세계의 일에 인권선진/후진국을 나누어 논평하고 때로 경제제재를 하자고 유엔을 움직이고, 군사력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들의 엄청난 자존심, 자만심이 트럼프의 두 번째 당선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중이다. 가장 반민주적인 지도자가 선출되어 독재를 지향하며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들을 모조리 부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총기를 앞장세운 의회폭동과 같은 폭력으로 말이다. 단지 특권층이 부패한 게 아니라, ‘샤이 트럼프’지지자들, 즉, 트럼프를 지지해서는 안된다고 머리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백인 우월주의와 혐오’로 표상되는 인간의 악한 본성과 이기심이라는 ‘욕망’의 힘에 굴복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 왔으면 영어를 써야지, 스페인어가 병용되는 현실도 싫고, 가난한 이민자들은 죄다 범죄자같고, 경쟁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은 싫고, 심지어 중국계 미국인들도 싫고,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동등하게 권리를 누리는 것도 샘나고 싫고, 흑인은 계속 차별하고 싶고, 정치적 올바름, 지구온난화는 골치만 아프고, 다른 나라를 쥐어짜서라도 다시 미국이 제일 잘 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아무리 인간 욕망에 봉사하는 게 정치라지만,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는 자명한 진실을 거부하는 욕심에 눈먼 이들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거 아닌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매우 공감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왕정과 양반들을 처단하고 혁명을 통해 얻어낸 자유로 세워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때 보면 그 과정을 거친 나라의 국가들은 모두 혁명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국가 ‘The Star Splangled Banner’는 영국왕에게서 독립하려고 전쟁하던 때, 맥헨리 요새에 영국군의 밤샘 포격에도 불구하고 동터오는 새벽까지도 성조기가 굳건히 서있더라는 찬가다. 한국은 그렇지 않은데, 탄핵국면을 보도하는 외신들 중에도, ‘한국은 주어진 민주주의 제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켜냈다’고 보도하는 곳이 있었다. 서구국가는 자신들이 무지몽매한 피식민국에 ‘선사’해준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 했다. 스승보다 제자가 더 나은 격이다. 한국의 초창기에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 피우길 바라느니,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걸 보는 게 더 낫겠다’고 한 한 영국 언론인의 말이 무색하게 됐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김윤의 교수에 따르면, 정권교체가 두 번 평화롭게 되면 민주주의가 공고화 되었다고 평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17년 전에 그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고 한다. 만일 이번에 탄핵이 인용되면, 우리나라는 권위주의 독재정치로 회귀한 박근혜와 윤석열 두 사례 모두에서도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축출하는 민주주의 비폭력 혁명에 성공한 나라가 된다. 그것도 서구인이 선사한 민주주의 시스템을 사용해서 이뤄진 결과다.
위에 처음에 인용한 글은 한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한국 시위의 선불결제 문화’에 대한 베스트댓글 내용이다. 미국이 민주주의 경찰국가라 하지만, 사실은 미국 말고도 미국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있다고 인정하는 내용이다. 비슷한 내용의 동영상들 댓글을 보면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댓글들도 많다.
"젊은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은 것 같네요?"
특히나 이런 한국을 만든 건, 5060남성세대가 아니라, 두번째 댓글이 증언하듯이, 2030여성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실제로 KT사용자들 데이터가 2030여성들이 집회현장에 가장 많이 있었다고 말한다. 수천, 수만, 수십만의 젊은 여성들이 이뤄낸 일이다.
세계에 한국의 국격을 높이려면 서울에 보기흉한 동네들을 재개발해서 아파트촌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에 다 영어이름을 붙이면 그게 세계화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선대 정권 때부터 ‘국격’운운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가장 후진 일들을 모의하고 벌여왔다. 샤머니즘도 종교의 하나니까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걸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잘못 적용했을때 혹세무민하는 사이비종교가 된다.
한국의 국격을 높여온 건 인천공항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도 아니다. 불의와 부패에 저항할 줄 아는 시민들, 권위주의와 독재에 저항하는 시민들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껴있는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인에게 샤머니즘과 탄핵시위가 공존하고 인도도 없어 시민과 차가 뒤엉킨 골목길과 말끔한 강남대로가 공존하는 나라로,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역동적인 사회로 비춰지게 되었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 우리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이만큼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2030 젊은 여성들이 선도해갈 미래는 또 어떤 모습을 가져다 줄까, 기대가 된다.
사진- 픽사베이 'Korea'검색결과 나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