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시장이 춥습니다. 흔히 1999/2000년이나 2008년과 비교를 하던데, 제가 2008년 시장도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에는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벌써 발표된 대형 레이오프만 해도 트위터, 메타 (페이스북), 그리고 아마존이네요. 메타는 내년 초에 있을 PSC (성과 평가)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저성과자를 정리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고, 아마존은 이미 대규모 레이오프가 있었지만 추가적인 레이오프가 더 진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거기다 비교적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구글도 요즘 소문이 흉흉하네요. 구글의 경우 더 엄격한 저성과자 관리로 내보내는 사람을 늘리는 것은 거의 정해진 것 같은 분위기인데, 조금씩 레이오프 얘기도 나오고는 있지만 확실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불과 1년 전에 서로 연봉을 높여가며 엔지니어들을 데려가려고 했던 상황이 무색합니다. 아마존은 2021년 말/2022년 초에 다른 빅 테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 때문에 엔지니어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상당한 규모의 연봉 인상을 발표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2021년 10월 메타버스 개발을 위해 유럽에서 1만 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었죠. 똑똑한 사람이 즐비한 저런 대기업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저는 캐나다에 있지만,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렇고 미국 회사의 캐나다 지사에서 일하고 있어서 캐나다보다는 미국 시장에 더 영향을 많이 받고 관심도 많은 편입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아마존에서의 첫 팀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애틀이나 베이 지역에 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팀도 매니저를 포함해서 반 이상이 베이 지역에 있네요. 그러다 보니 캐나다의 채용 시장은 미국에 비해서는 다소 양호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체감 경기가 많이 춥습니다.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이런 추운 시기에는 한국 같은 비교적 경직된 노동 시장이 유리한 것 같기는 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기본적으로 2주 치 주급 (+ 계약서에 명시된 근속 연수에 비례한 보상 - 보통 1년에 1, 2주 치 주급)만 지급하면 언제든 이유 없이 사람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이번 메타 레이오프의 경우 4개월치 주급을 주기로 하면서 가장 후한 보상 패키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만 뭐 사실 나가라는데 보상이 많다고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죠.
미국 노동 시장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흔한 오해가 레이오프는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정리해고라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본래의 레이오프는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졌기에 임시로 직원을 내보내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부르기로 하고 내보내는 제도였습니다. 이때 내보내는 순서는 연차 순으로, 회사 근속 연수가 짧은 사람을 먼저 내보내고 복직은 반대로 긴 사람부터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모양입니다. 현재의 레이오프는 이와는 많이 달라져서 복직을 전제로 하지는 않습니다만, 여전히 성과 위주로 내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말이죠). 프로젝트를 중단하면서 관련 부서 전체를 내보내는 방식도 흔히 사용되는데, 그러면 나름 좋은 성과를 내던 사람도 같이 휩쓸려 나가게 되는 거죠. 다만 보통은 잘 안 되는 프로젝트를 중단할 테고, 잘 안 되는 프로젝트에 일하는 사람들이 회사 차원에서 고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는 점은 사실일 수 있겠습니다만, 프로젝트의 성공에는 팀원의 능력 외에도 중요한 요소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레이오프 당했다는 말을 그렇게 숨기지도 않고, 또 레이오프 당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리쿠르터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레이오프 당한 사람들은 인터뷰에 통과하면 바로 일할 수 있고, 아무래도 현직에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보다는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래서 해고가 아닌 레이오프는 경력에 아주 큰 상처를 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은 모든 IT 회사들이 채용을 급격하게 줄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벌써 트위터에서 수천 명, 메타와 아마존에서 각각 만 명 이상 레이오프가 있었고, 그 외 다른 회사들도 많이 줄였죠. 이 많은 사람들이 좁은 채용 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언제 상황이 다시 좋아질지 알 수가 없네요. 다소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IT가 아닌 미국의 전체 채용시장은 아직도 더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정부 정책은 강한 채용 시장을 믿고 금리 인상을 비롯해 더 제약적인 정책을 펼쳐도 경제가 버틸 수 있다고 가정하는데, 테크 시장은 가장 먼저 채용이 약화되어 제약적 정책으로 인한 고통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엄청난 혜택을 누려서 불평하기도 어렵고요. 참 한 치 앞을 알기 어려운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