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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랑어 Jun 08. 2021

두 달 전 그 집을 샀어야 했다.



두 달 전 그 집을 샀어야 했다



나는 사실 작년 중순부터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독립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거기다 마음에 쏙 드는 집이 매물로 나왔을 때, 나는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3개월 수습이 종료된 뒤 자의 반, 타의 반 계약을 종료하게 되었다. 물론 그 뒤에 바로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여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지만, 그날 내가 놓친 집은 불과 2개월 만에 1억이 올랐다. 그때 이직했을 때, 내 연봉이 1억은 오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지금 무주택자로 부모님 집에 세 들어 사는 31세가 되어버렸다.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집을 샀어야 했나 보다.



나는 서울 토박이였다.

대학도 서울이었고 더더욱 나가서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물론 이건 순전히 부모님 입장에서)

서울이지만 서울 끝 쪽에 사는 나로서는, 사실은 대학시절에도 강의실까지 도착하는데 1시간 반은 걸렸다. 그래도 서울 산다고 분당이나 수원에 사는 친구들에게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냐며 물었을 때, 그들은 40분밖에 안 걸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사실 서울-서울 움직이는 것도 꽤 오래 걸리는 곳에 내가 산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때 나는 나왔어야 했다.



막 활발한 사회인으로 활동하게 된- 나는 직장인 밀집 지역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상상할 수 있는 종로, 강남, 여의도 등등 아무튼 이 직장인 지역들이 사실 우리 집에선 다 1시간 반씩 걸리는 곳이었지만 서울-서울이라는 이유로 부모님도, 나도 딱히 독립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유 없이 집을 나간다는 반항적인 생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당연히 집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년부터 슬금슬금 이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 혼자 산다'를 엄마와 함께 보던 작년 중순쯤 어느 주말, '엄마 나도 이제 독립하려고'라고 뱉어버렸고,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들인 엄마 덕분에 그 뒤부터 조금씩 구체화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구내가 구체화의 파트 1 엔딩은 앞서 말한 매물을 놓쳤던 그 시점.



아, 이직과 무슨 상관이 있었냐고?

이직하고 3개월이 지나지 않으면 은행 대출이 어렵다.

그래서 그 시기에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떠나간 그런 매물쯤.



엄마와 부동산 중개인이 한참 계약금을 논할 때, 모든 걸 잠깐 멈추고 '사실 나 이제 회사 그만두기로 해서, 대출 안 나올 거야'라고 말하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무튼 그때 난 그래도 그 집을 샀어야 했다.



집을 나가기로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내 머리가 컸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한참 시달리고 온 회사원은 집에서 좋은 딸 노릇을 하기가 어렵다. 집에 들어와서 고요하게 혼자 넷플릭스도 보고 싶고, 맥주도 먹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살짝 반가운 안부 인사와 함께 내 방에서 조용히 핸드폰만 보다가 잠드는 반복된 일상. 주말 아침 늦게 일어나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모든 가족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강제로 일찍 일어나야 하는 그 순간. 일찍 독립해서 사는 친구들은 그게 다 사람 사는 거라며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고 했지만 나는 사실 너무 많이 즐겨버린 탓일까. 아침에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도마에서 칼질하는 소리에, 햇살이 비치는 창문에 새가 지저귀는 그런 소리에 눈을 뜨는 신혼쯤의 로망- 이런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너네가 부러운 그거, 부러운 거 아니야.



문제의 퇴사날 낮술



 아무 문제 없습니다만,
그저 제 독립된 삶이 필요했습니다.


매일 늦게 퇴근하고, 가족들의 잠을 깨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 방안에서만 조용-히 잠들어야 하는 그 느낌. 맥주캔 하나 따는 것도 혹시나 부모님 눈에 술쟁이로 비칠까 살짝 눈치 보는 그 느낌.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한 순간이랄까. 어느 정도 내 삶의 템포대로 살고 싶다는 욕심이 나의 독립에 대한 모든 이유였다. 내 식대로 살고 싶어지던 그 순간.


그리고 나는 사실 지금 다시 집을 알아보고 있다.

물론 이젠 당연히 '전세'

나는 정말로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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