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선
-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를 보고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린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처하기 마련이다. 그 상황을 회피하기도 하고 강력하게 저항할 수도 있다. 여기 폭력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웃음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한 아이가 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의 주인공 18살 세진이다. 나에게 ‘어른들은 몰라요’는 계속해서 어떤 의문을 만드는 영화였는데,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그건 세진이라는 아이의 이런 성격적 특징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초반부 우리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세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세진에게는 두 명의 연인이 있다. 세진의 같은 반 친구인 은정과 세진의 학교 선생님인 상섭이다. 이야기는 세진이 상섭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상섭을 비롯한 학교의 사람들은 세진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세진은 동생과 둘이 사는 것으로 보이고, 극 중 부모는 묘사되지 않는다.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세진은 홀로 거리로 나선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폭력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또 다른 연인인 은정과 세진의 관계는 기묘하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든 의문의 시작은 여기서 시작한다. 세진은 같은 반 친구인 은정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감정적 교류를 나눈다. 둘 사이는 연인이기도 한 동시에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와 피해자처럼 보인다.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관계가 한 가지 안에 있는 상황은 불편하기도 하고 곧 궁금증을 갖게 했다. 세진은 왜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까. 그 답을 쉽게 내릴 순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런 식으로 이질적인 것이 함께 배치되는 순간의 기묘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도 역시 이런 이질적인 배치를 살펴볼 수 있다. 극단적인 자해의 상황과 바로 이어지는 건 화장을 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다. 근데 바로 이어지는 건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폭언이다. 은정과 볼링장에서 노는 장면 이후 괴롭힘의 장면이 나오는 것 역시 그 연장선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질적 배치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세진의 웃음이다. 극 중 내내 자신을 덮쳐오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세진은 그저 웃는다. 폭력과 웃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으니까 터져 나오는 그 웃음은 어떤 간절함 같았다. 그렇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웃는 것 같은 그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이질적인 것이 이해가 가는 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영화는 그렇게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기어코 받아들이게끔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기묘한 감정들을 끊임없이 묘사한다.
대개 단신을 통해 접하는 가출 청소년 관련된 뉴스나 기사에서 우린 아이들의 가정 상황에서 그렇게 된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 이유를 묘사하는 것을 과감하게 피해간다. 구체적인 인물의 상황을 굳이 묘사하지 않기에 관객의 관점에서 인물의 이야기는 대략적인 상황을 통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세진이 동생과 둘이 살고 있는지,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워내는 건 인물의 기묘한 감정과 우발적인 폭력이다.
어쩌면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의 이환 감독은 인물의 이야기, 즉 상황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대신 이환 감독은 그 상황 속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거리에 나온 세진이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동갑내기 주영을 만나고, 그 이후에 재필, 신지와 함께하면서 벌이는 위험한 일탈들은 보는 내내 관객을 초조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게끔 만드는 건 네 명의 아이들이 함께 하는 기묘한 관계 속에 오가는 감정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점에서 하이퍼 리얼리즘과 같았던 전작 ‘박화영’과 비교해본다면 보다 멜로드라마 감성이 더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감정 묘사를 돕기 위해 ‘어른들은 몰라요’에선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표현 도구를 사용한다. 극 중 유일하게 세진이 자유로워 보이는 순간인 롱 보드를 타는 장면(세진은 극 중 내내 이 롱 보드를 곁에 두고 다닌다.)의 유려한 트래킹 숏과 과감한 조명들, 그리고 힙합 음악 사운드. 어쩌면 ‘어른들은 모르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젊은 표현 방법을 모두 가져온 것 같은 연출이 돋보인다. 특히, 트렌디한 힙합 뮤지션들은 대거 음악 스텝으로 기용한 선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사운드 트랙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포인트였다.
세진의 긴 여정이 끝이 나고, 감성적인 음악이 흐르는 와중에 한강의 산책로에서 세진은 보드를 탄다. 산책로가 끝이 날 때쯤, 세진은 보드에서 내리는데, 보드는 세진을 앞질러 굴러간다. 세진은 그 보드를 그저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이야기 내내 어떤 상황에 쫓기듯 달려갔던 세진이 처음으로 자신을 앞질러 가는 보드를 보며 천천히 걷는 그 엔딩 장면에서 난 잠시 어떤 판단을 하는 걸 접기로 했다. 세진은 웃지 않고 담담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이 바라는 미래로 데려가 줄 것 같기에 롱 보드를 끊임없이 품고 다녔을 것만 같은 세진이 끝내 자신의 발로 걸어가는 그 순간을 응원하고 싶었다. 어쩌면 어른들이 모르는 건 그 순간의 감각이 아닐까.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면 그 순간을 이미 지나왔을 테니.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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