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루덴스
사람은 꼬리가 없다. 아마 있었다가 없어 진지도 모른다. 꼬리가 있는 동물들은 꼬리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과일을 집거나, 파리를 쫓거나, 나무에 매달리거나, 반가움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 수컷 공작새는 구애를 하는데 꼬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의 꼬리는 진화를 통해 퇴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직립보행 이후 필요 없어진 기관이 된 것이다. (하지만 꼬리의 흔적인 꼬리뼈는 지금도 신체의 중심을 잡거나, 척추를 지탱하는 등의 용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사람에게도 꼬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퇴화되지 않은 채로 꼬리가 신체의 일부로 남아있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꼬리를 화려하게 꾸며 놨을 것이다. 꼬리에 입히는 의류나 액세서리가 유행 때를 맞춰 나오고, 꼬리에 염색이나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박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꼬리의 사라짐이 아쉬웠는지, 사람들은 꼬리 대신 다른 부위를 창조해냈다. 만약 꼬리가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처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의 일부. 실제로 어떤 신체 부위가 아니지만, 나는 그 부위를 현대인들의 꼬리라고 부르고 싶다. 바로 SNS를 말이다.
마치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처럼. SNS라는 가상의 부위는 나라는 존재의 이미지를 뽐내는 데 사용된다. 비단 이성을 향한 구애의 활동을 떠나, 세상에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활용된다. 또한 이 꼬리의 능력이 (개인 SNS 계정의 팔로워 수나 그로 인한 파급력) 현실에서 실제 어떤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인플루언서’ 같은 용어의 탄생과 정의가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때때로 이 꼬리가 없는 사람, 즉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은 독특한 장애를 가진 마냥, 특이하고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내 관점에서 또한 발견한 사실은 이 꼬리라는 말이 들어간 속담이나 관용적 표현들이, 최근 SNS로 인해 일어난 부정적 이슈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꼬리표가 붙다’. SNS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학폭 폭로나 구설수, 소문, 마녀사냥 등의 사태들은 모두 이 꼬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들에 의해 설명된다.
사람에게 없는 부위를 통해 만들어진 속담처럼,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일부가 아닌 것을 우리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 이 가상의 부위에 상처를 입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도 있다.
유명한 걸그룹의 멤버였던 한 연예인은 SNS를 통해 이상하고 별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았고, 온라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의 SNS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그녀가 가진 가상의 꼬리를 두고, 증명되지 않은 소문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마치 그녀가 끔찍한 꼬리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몰아갔다. 그로 인해 그녀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꼬리의 모양새에 대해, 스스로도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도 말이다.
댓글을 달거나 글로 남긴 적은 없지만, 나 또한 그녀의 꼬리를 보고서 친구와 함께 그 모양새가 유별나지 않은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SNS를 통해 보이는 모습을 두고서 그녀에게 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했던 것이다. 천만 다행히도 그 말과 생각은 그 자리에서 흘러갔기 때문에, 그녀에게 닿을 수 없었지만. 지금도 나는 종종 그 기억이 후회하듯 떠오른다.
꼬리는 사라졌지만, 나름의 용도와 쓰임새가 남아있는 꼬리의 흔적 기관처럼. SNS 또한 나름의 용도와 쓰임새가 존재할 테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으로 인해, 부상당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한때의 나처럼 누군가의 실제가 아닌 것을 두고서 함부로 생각하거나 이야기하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불가피하게라도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오래된 속담처럼. ‘꼬리를 자르고 도망쳐’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에게 꼬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환상 속의 꼬리가 없어져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더 이상 사람의 꼬리로 인한 환상 통은 세상에 불필요한 일일 테다.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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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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