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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석 Mar 11. 2021

선진국 복지의 그릇

핀란드와 한국의 복지 제도

선진국 대한민국

이제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듯이 확실하고 문화 예술 부분에서도 뛰어나다. 핀란드에 온 지 13년째. 아이는 2살 때와서 15살이 되도록 핀란드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한국에서는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의 교육과 복지가 큰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뭐하나 꽂히면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국민성인지라 교육도 1등, 경제도 1등, 기술도 1등, 문화 예술도 1등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해외에서 살아보니 정말 한국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구나 하는 것을 자주 그리고 크게 느끼게 된다. 나부터도 핀란드 사람들의 느린 걸음걸이가 영 답답하다. 10년이 넘어도 적응이 쉽지 않다. 말도 느리다. 요점만 말하지 뭘 그리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놓는지. 아이는 집에서 한국말을 쓰기 때문인지 핀란드 말은 좀 어눌하다. 가끔은 왜 그리 오래 살았는데 아직 핀란드 아이들처럼 말을 못 할까 걱정을 하다가도 어쩔 때는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아이가 다행이다 싶을 때도 많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국민성 또는 정체성이랄까 아무튼 한국인스러운 게 좋다.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복지도 좋아졌다. 노인이나 빈곤층을 돕는 제도도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복지 하면 북유럽을 떠올리는 것 같다. 사실 한국보다 복지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고 우리 가족도 이 복지의 혜택을 많이 보고 있다. 한국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거기는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겠네?", "거기는 다 나라에서 해준다며?", "일 안 해도 먹고살 수 있게 해 준다며?" 등등 어느 소설에나 나오는 낙원에 사는 사람처럼 이야기할 때가 많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고 많은 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복지를 유지하는데 드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월급을 받으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땅에서 석유가 나오는 나라도 아니고 관광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고 큰 회사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 그 많은 복지 비용을 어디서 충당을 하겠는가? 세금이다.


핀란드의 복지를 관할하는 기관 KELA (출처: KELA 홈페이지)


복지의 비용

2008년 처음 핀란드에 와서 월급을 5천 유로 받았다. 한국에서 그렇게 계약을 하고 보니 꽤 괜찮은 것 같았고 실제로 핀란드에 와보니 30대 중반에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런데 세금을 40% 정도 떼어가고 회사에서 주는 대부분의 혜택에도 세금을 물렸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차량을 지원해 주면 급여를 5천 유로가 아니라 6천 유로로 치고 거기에 40% 이상의 세금을 물리니 회사에서 뭘 받기도 무서울 정도다. 게다가 연금이니 보험이니 해서 막상 손에 쥐는 돈은 명목상 급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외식도 많이 할 수가 없고 소비도 줄이게 된다. 연봉이 한국에서 보다 많이 늘었어도 실제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은 오히려 줄었다. 핀란드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에서 갓 건너온 우리에게는 큰 불만거리였다. 잘 받는다는 회사원이나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명목상 월급이 2배가 나더라도 실수령액을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다들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 같다. 물론 부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라는 게 한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학벌도 그렇다. 내가 한 번은 전자제품 수입 유통회사의 운영을 맡아 일하고 있을 때 직원이 11명인데, 그중 핀란드 최고의 대학인 알토대 출신이 2명 있었다. 한 명은 영업을 했고 또 한 명은 AS센터를 맡았다. 둘 다 공대 석사 출신이다. 하지만 급여는 다른 직원들과 거의 동일했고 학교가 고려된 적은 입사 시부터 한 번도 없던 것 같다. 물론 공부를 잘했으니 좋은 대학을 갔겠지만 그게 집안이 부자라든가 든든한 빽이 있다든가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니까 거길 못 나와도 크게 기죽을 일도 없고, 회사 일이나 잘하면 월급도 오르고 승진도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돈 좀 더 번다고, 좀 더 좋은 대학 나왔다고 자랑하고 다닐 거리도 별로 없다.

그렇게 핀란드의 세금 제도는 개개인의 소득격차를 줄이고, 사람들이 좀 더 평등하게 기회를 갖고, 좀 더 공정하게 경쟁하며, 그 결과를 다시 사회와 나누는 지속 가능한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부정 수급자를 줄일 것인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일 것인가?

한국 사람들은 복지의 부정 수급자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설사 몇 명이 복지 혜택을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부정 수급자를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오죽하면 세금을 혈세라고 하면서 한 푼도 헛되이 쓰면 안 된다는 말을 뉴스에서 자주 듣는다. 반면에 핀란드의 복지는 혹시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의 혜택이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 물론 여기도 서류나 절차가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훨씬 적고 한국보다는 더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부부의 소득을 분리해서 본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맞벌이인 상황인 것도 있고, 어차피 복지 혜택도 개개인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내가 소득이 많아도 내가 소득이 없거나 적으면 지원을 해준다. 핀란드의 많은 가정에서 돈을 각자 관리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가 돈을 못 벌면 배우자가 아니라 나라가 도와주는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개개인을 별도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연락도 안 되는 돈 버는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노인들이 복지 혜택을 못 받거나 배우자가 비싼 차를 가지고 있으니 당신은 대상이 아니다 라는 경우는 없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나 회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었고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아 다행히 사업을 잘 유지하고 확장하게 되었다. 지원을 받는 과정은 모두 인터넷으로 했고 어디를 방문하거나 서류를 우편으로 보낸 적도 없다. 집에서 지원하고 결정이 되면 통장으로 바로 입금이 되는 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왜 부정 수급자가 없겠는가?  여기서도 그런 경우에 대한 뉴스를 접했는데 대부분은 그런 비양심적인 개인이나 회사에 대한 비난이지 그렇다고 지원 과정을 더 까다롭게 하자거나 더 많은 서류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은 듣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받아야 될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KELA에서 모든 신상아들에게 보내주는 신생아 용품 상자. 영국의 윌리엄 왕자 아기에게도 보내졌다. (출처: KELA 홈페이지)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나는 이러한 핀란드의 복지 제도를 그들 복지의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좀 훔쳐 먹을 수도 있지만 못 먹는 사람은 없는 넉넉한 그릇. 내가 초등학교 때는 가끔씩 선생님들이 무슨 조사를 한다면서 "생활보호 대상자 손들어봐!"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손을 드는 친구들이나 보는 친구들이나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손을 드는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잔인한 행동이고 일종의 아동 학대이다. 아마도 손을 들어 "네, 우리 못 살아요. 그러니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만인들 앞에서 인정을 해야 도와주는 제도였나 보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겠지만 아직도 뉴스를 통해 들으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지자체에서 받은 급식 쿠폰을 사용할 데가 없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소식을 들으니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편하게 혜택을 받게 배려하는 상황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것도 또 다른 형태의 생활보호 대상자 손들기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이런 걸 보면 가끔 선진국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투표권이 있었어도 그랬을까? 이건 정치의 문제요. 정치는 국민의 문제이니 어쩌면 이러한 문제에 둔감한 우리 성인들의 문제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런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정치를 지향하지 않는데 어떠 정치인들이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겠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도 정이 참 많다. 정의로운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사회가 정과 각자의 개인적인 정의로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면 그 정의로움이 사회 이곳저곳 깊숙이 닿을 수 없다. 배고픈 형제들에게 공짜 치킨을 주는 착한 사장님께 기대지 말고 배고픈 아이들이 당당히 치킨을 사 먹게 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나라가, 우리 국민이, 우리의 복지가 그러한 큰 그릇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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