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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석 Mar 13. 2021

엔지니어 북유럽 취업기

핀란드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일하며 행복 찾기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이민을 오는데 특별히 엔지니어라고 다른 것은 없겠지만, 내가 엔지니어로 일을 하다가 왔기 때문에 나의 이직이나 이민 또 현지 적응 경험이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다를 수 있어 그렇게 적었다.

핀란드에 온 게 2008년. 당시 한국에서 8년 차 엔지니어였고 2살 된 아이가 있었다. 미국 회사인 Motorola 한국지사에서 일을 해와서 해외 취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헤드헌팅 회사에서 연락이 와 뜬금없이 핀란드 어떠냐고 하는 거다. 모바일 디바이스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어 당시 Nokia가 세계 1위이고, 핀란드가 그 분야에서 잘 나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사실 더 좋은 회사를 찾거나 더 높은 연봉의 일을 찾고 있던 건 아니었다. 다만,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들었고, 뭔가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항상 익숙해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데 따분함을 느꼈을 뿐이다. 아내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일단, 기대감 반에 의심 반으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미국 회사였는데, 유럽 지사를 만드는데 같이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화로 유럽 사장과 인터뷰를 했고, 며칠 후에 한국에 인터뷰를 하러 오겠다고 해서 공항 근처 호텔에서 만나 다시 대면 인터뷰를 했다. Motorola에도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 관련이 있었고, division 사장도 Motorola 출신이었다. 내가 출장 다니던 시카고 오피스에서 근무했던 터라 서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터뷰를 온 유럽 사장도 시카고 출신인데 아주 직설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서로 눈치 볼 것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일하기로 결정했다. 그게 2008년 2월이고 그 후 바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민 준비를 했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비자 신청이다. 핀란드에서 필요한 절차는 현지 relocation 업체에서 준비를 해 주었고, 나는 한국에서 필요한 준비를 했다. 비자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족들과 핀란드에 와서 좀 둘러보고 가라고 회사에서 항공권, 임시 아파트 그리고 차량을 준비해 주었다. 3월에 가서 4월에 돌아왔는데, 느낌이 좋았다. 헬싱키 중심에 있는 아파트에 머물며 회사도 가보고 여행도 하고 집도 둘러보았는데 모든 게 좋았다. 다만 물가가 비싸다는 게 좀 걱정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5월에 비자가 나와서 이삿짐을 컨테이너로 보내고 우리 가족도 다시 핀란드로 떠났다. 진짜 이민을 가는 것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인터뷰를 위해 한국까지 와준 유럽 지사장
2009년 여름 핀란드 난딸리에서

이방인으로 살기

처음 두 달은 회사에서 제공해준 임시 아파트에서 살다가 곧 헬싱키 근교에 아파트를 구해 이사를 갔다.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였다. relocation 업체를 통해 아파트도 구하고 아이가 다닐 유치원 등록도 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자동차 등록을 마치고는 본격적인 핀란드 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초여름이어서 날씨도 무척 좋았고 근처에 숲과 바닷가가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았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배려 깊었다. 우리가 영어만 하니까 의사소통이 좀 안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잘했다. 노인분들도 영어를 잘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이도 핀란드 현지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었다. 아내는 현지에서 살림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우선 식재료가 너무 달라서 원하는 음식을 해 먹기가 어렵고, 외식은 상당히 비싸서 집에서 밥하기 귀찮으니 사 먹자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출장이 많아서 한국, 중국, 독일, 덴마크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느라 집안일을 잘 챙기지 못해 아내가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는데, 다행히 잘 참아 주었다.

2008년 핀란드 꾸오삐오 워크샾에서 팀원들과 함께

우리 사무실에는 핀란드, 미국, 프랑스, 중국 직원들이 있었고 여기에서 나는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었다. 사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헬싱키에는 IT회사에 외국인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해외 인력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다양하게 하고 있어서 웬만한 회사에서는 다들 영어를 공식 언어로 정하고 있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비슷해서 여기가 헬싱키건 스톡홀름이건 코펜하겐이건 일하는 분위기에 별 차이가 없다. 영어 소통만 잘 된다면 누구나 와서 일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분위기이다. 다만 서로 문화가 다르다 보니 오해하거나 스타일이 잘 안 맞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한인들이 많지 않아 자주 만나기는 어려워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모여 운동도 하고 토요일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한글학교가 운영되고 있어 그때 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도 많이 얻어오곤 했다. 작은 교민 모임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서로 잘 알고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교민 수에 비해서 석박사 인력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친하게 지내는 교민들 중 약 1/3은 박사이거나 박사 과정에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화 주제도 상당히 다양하고 깊이 있었다.

 

겨울에는 시내에도 이런 눈썰매 타는 곳이 있어 아이들과 강아지까지 데리고 나와서 놀 수 있다.

북유럽 생활 즐기기

역시 북유럽의 겨울은 혹독하고 밤은 길다. 추울 때는 영하 25도 이하로 내려가고, 낮의 길이는 5-6 시간으로 짧다. 게다가 구름 낀 날들이 많다. 실외에 주차한 차들은 다음날 시동을 걸기 위해 엔진블록 히터를 설치하고 매일 저녁 차에 전기를 연결해 주고 타이머를 맞춰놔야지 다음날 출근할 때 문제가 없다. 어느 날은 타이어가 바닥에 얼어붙어 차가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 잘 살려면 우선 겨울을 잘 나야 한다. 실내 운동 시설들은 잘 되어있다. 겨울에 부족하기 쉬은 비타민D를 챙겨 먹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집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다 보니 독서를 하거나 가족들이 함께 즐길거리를 찾는 게 아주 중요하다. 요즘에는 Netflix나 YouTube 같은 서비스도 많아서 예전보다는 좀 시간 보내기가 좋은 것 같다. 우리는 집안에 운동 기구를 많이 설치해서 시간 날 때마다 운동을 하고 악기를 배우는 것도 좋아해서 아내는 피아노 나는 기타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여름에는 숲 어디에서나 블루베리를 쉽게 딸 수 있다.

여름은 상대적으로 편하다. 많이 덥지도 않고 낮도 길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진다. 숲에 가면 야생 블루베리가 지천에 깔려있어 원하는 대로 딸 수 있고, 맑은 물의 호수와 깨끗한 숲에 여러 동식물들이 산다. 대부분의 핀란드 사람들은 크건 작건 별장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거기서 여름을 많이 즐긴다. 그리고 다른 유럽 나라로 여행을 가기도 좋다. 비씨지도 않고 여러 나라를 다니기도 편리하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한 달 정도 휴가를 내고 오래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해서 매년 여름에 근처 나라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내가 출장가는데 같이 가기도 했다. 가끔은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방문해서 같이 다니기도 한다. 교통도 다양해서 러시아는 기차로, 스웨덴은 배로 갈 수도 있고, 차를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다른 중부 유럽은 2-3시간, 남부 유럽은 5-6시간이면 거의 다 갈 수 있다. 유럽은 정말 둘러볼 데가 많은 곳이고 멋진 도시나 건물들이 많아 시간만 허락된다면 몇 달도 지루하지 않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어디도 가기가 어렵지만...

2009년 여름 오스트리아 빈

북유럽 이민을 생각하는 엔지니어들이 있다면...

사실 한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우리의 경우 라이프 스타일이 잘 맞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핀란드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다. 아이도 핀란드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혼자 사는 경우 엄청 심심할 수 있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정말 어렵다. 작은 교민 사회에서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세금도 많고 물가도 비싸다. 특히 서비스 요금은 상당히 비싼 편이어서 밖에서 노는 것도 돈이 많이 든다.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많은 혜택을 받을 수도 있고, 좋은 교육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언어 교육도 잘 되어있는 편이어서 영어, 핀란드어, 스웨덴어를 학교에서 배우고 영어 학교 다니고 싶으면 지원해서 합격하면 갈 수 있다. 물론 무료이다. 배우자가 핀란드어를 배우면 정부에서 무료 교육과 함께 매월 지원금도 제공해 주며, 교육이 끝나면 일자리도 찾게 도와준다. 배우자뿐만 아니라 본인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기회는 다양하다. 아이들이 크면 대학 및 대학원도 모두 무료이고 혼자 살 수 있게 지원금도 나온다. 혼자 독립해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필요하면 대출도 신청할 수 있다. 대학 가기 전이라도 사교육비는 운동이나 예술 분야가 아니라면 거의 들지 않는다. 문제는 아이들이라고 데려오면 그냥 다 적응하고 잘 다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당연히 잘 맞는 아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으니 가족 모두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 사전에 잘 살피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핀란드 Aalto 대학교 MBA 동기들

북유럽에서 언제까지 회사 다닐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한식 사업을 하고 있다. 원래 2012년에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아내가 사업을 시작했는데, 2017년에 회사를 나오면서 같이 운영을 하다가 지금은 식당이 아니라 리테일 사업으로 전환해서 작은 식품공장에서 한식을 만들어 핀란드 현지 마트 체인에 공급을 하고 있고, 한국 소스 제품은 현지 제조사에 위탁생산을 해서 유통을 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북유럽에서 오래 있기를 원한다면 틈나는 대로 자기 사업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 스폰서십을 받아 Aalto 대학에서 MBA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MBA는 유일하게 모든 학생들에게서 4만 유로 정도의 등록금을 받는다.) 이것이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MBA 보다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창업을 하거나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기회를 찾는 통찰력이 있다면 창업의 기회는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으로서 취업보다는 창업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해외에 머물며 생활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사업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북유럽에서의 MBA 공부, 창업 그리고 한식 사업에 대해서도 소개를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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