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본질이라고 아는 것'에 관하여
어느 날이었다. 한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방송인 전현무 씨에게 그의 인테리어 디자인 취향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전현무 씨는 단 한 문장으로 본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했다. 그의 대답은 ‘모던, 심플, 블랙 앤 화이트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나는 전 씨의 디자인적 취향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이 다섯 개의 단어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평균적으로 존재하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대한 어떤 전형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눈을 감고 돌아보면,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니멀’ 이라던가 '간소함'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을 시점은 내가 대학을 한창 다니고 있었던 2000년대 후반쯤 정도였던 것 같다. 승천하는 용을(그야말로 용. 그 용이다) 원시적인 3D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 나가는 선배 옆에 앉아, 마치 마술쇼 라도 본 것처럼 우와 우와! 선배님 대박! 을 연발하던 그 와중이었다. 용의 비늘을 굳이 투명 재질로 밤새 렌더링 하던 선배를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친구들이 나를 비롯해 적지 않았다. 그러니 간소함 따위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지.
그러나 당시에 디자이너 후카사와 모리슨과 제스퍼 나오토*는 요즘에 와서야 유행하는 시장투어를 다니면서, 간소하고 소박한 것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보통 무인양품의 디자이너로 알려진 이들은 플라스틱 장바구니나 컵 따위의 일상의 물건들을 전시장에 쭉 깔아 놓았다. 그리고는 ‘이것들은 비록 노멀 하지만 슈퍼 하다. 우리도 그렇고 ;D'라며 일찌감치 선 긋기에 나섰다. 게다가 일본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현 일본 디자인 센터 대표인 하라 켄야 씨는 '디자인을 디자인하자’며, 한 땀 한 땀 용 비늘을 그리고 있던 국내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런 헤게모니 공격 따위로는 선배들의 불꽃(?) 스트로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큰 배포로 앞뒤 맥락 정도는 가볍게 밀어 두고 '먼가 좀 한 것 같은' 이라든지 '뻑적지근' 등을 대한민국의 주요 국가 디자인 키워드로 설정하고 그대로 시간은 흘러버렸다.
*나오토 후카사와, 제스퍼 모리슨: ‘Super normal, 2007’의 공동저자 이자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디자이너. 이 글에서는 재미를 위해 두 이름을 섞어 보았다.
어느샌가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 몇몇 회사들은 규모가 갑자기 커져버렸고, 그 디자인도 국제적으로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깜빡하고 놓고 나온 물건을 찾으러 가듯, 뭐 철학이 될 만한 것이 없었나 하고 다들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봐도 본래 없던 물건은 있을 리가 없었고, 대충 '본질' 이라던가 '인간 중심'같은 단어를 적당히 버무려 놓았지만.
기업과 디자이너들이 이러고 있을 동안에, 압축성장에 익숙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남들처럼 이런저런 지난한 과정을 겪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판단했다. ‘모던, 심플, 블랙 앤 화이트 그리고 스칸디나비아’로 모든 것을 대통합하는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사회적 합의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미니멀 대통합의 과정에 당황하던 나는 졸업 직후 일본 여행을 계획하였다. 마침 오사카 시에서 디터 람스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산토리 뮤지엄을 방문하게 되었다. '세상 세상 재미없는 것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나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지 않고서는 지나가기 힘든 거대한 구조물 위에 적힌 10가지 원칙을 억지로 읽었다. 복음과 같이 쓰여있는 그 글들을 읽고도 당시 거의 똑같은 디자인의 면도기가 너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환 공포증이 올 정도(는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여행이었지만, '이런. 다음 달 프로젝트도 또 면도기잖아, 이번엔 좀 다른 걸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원칙들은 어쩌지.' 하고 아마도 읊조렸을 람스 씨의 고충을 이후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 차차 이해하게 되었다.
입사 후에도 간소함이라던지 본질이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년 동안 들었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실제의 결과물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용 비늘을 그리던 선배들의 작업들과 상통하는 점들이 꽤 있었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조금 솔직 했다면 그 시간만큼은 다른 무언가를 찾지 않았을까?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 꽤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본인의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서로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보통 '본질, 간소한, 인간 친화적인, 의미 있는, 세계에 도움이 되는' 같은 말들로 간추릴 수 있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모두가 좋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착한 디자이너들 덕분에 내일 당장이라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올 것만 같다.
*사실 'Less and More'가 2008년 일본 오사카의 산토리 뮤지엄에서 열린 디터 람스의 대규모 회고전의 진짜 타이틀이다.
입사 후 몇 년 정도 지나고 난 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내가 다니던 회사의 프로젝트들을 맡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더욱 다양한 레벨의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미니멀리즘 계열의 대표 디자이너라고 분류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었다. 나는 주니어 시절에 그들을 도우면서, 엔지니어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모습과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을 곁에서 볼 기회가 가끔 있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알려진 제품 이외에도 대단히 많은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우만 해도 적지 않은 수의 프로젝트들이었는데, 세계적으로 저명한 디자이너들이니 한 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지 그 시절에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동시에 몇십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미니멀리즘 계열의 스타 디자이너들은 본질, 인간 중심 등의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의자를 디자인하는 경우라면, 디자이너가 의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이를 통해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의자를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본질, 궁극이란 단어에는 맥락 상 그다음은 더 이상 없다는 의미도 분명 있으니, 매년 다른 형태의 궁극의 의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을 보며 여전히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수많은 작업들이 모두 궁극의 디자인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들의 디자인들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디자인의 본질보다는 작업 자체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의 말보다는 결과물들이 세상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할까.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내가 변한 것인지, 나만 몰랐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선배들이 만들었던 용의 비늘도 어떤 맥락이냐에 따라 충분히 멋진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지금은 생각하게 되었다.
혹자는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메신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그것들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을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다. 결국 모든 디자이너들(혹은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내야 할 뿐일지도 모른다. 튀지 않고 오래가는 디자인, 적재적소의 기능, 보편타당한 철학만이 디자인의 본질일까? 그렇다면 나는 약간 우울해 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할 수 있으며, 나만의 원칙을 정하고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 존재하는 이유가 단지 10가지는 아닐 것이다. 그 이유가 디자이너의 수만큼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디자인이 몇 개의 문장으로 정의되는 것은 불가능해진 지 오래다. 디자인은 어때야 한다는 말들은 이제 공허하다.
‘모던, 심플, 블랙 앤 화이트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