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가 오고,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자 일회용품의 사용이 급증하였으며(이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느새 지구의 변화는 한계에 다 달았다.
유럽을 위시로 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이 속도를 내자, 디자이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른바 '친환경 디자인'을 다시 쏟아내고 있다. 귤껍질을 말려 조명을 만드는 디자이너,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녹여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생기는 등 친환경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브랜드나 제품들이 기존 시장을 대체한다기보다는 그 위에 더 해진다는 점이다. 양적으로 기존 시장을 대체할 만큼의 공급도 수요도 아니어서 사람들은 기념품 사듯 몇몇 제품들을 구매하고 마치 '친환경적 시민' 이 된 것 같은 느낌을 획득한다.
제 아무리 친환경 한 제품도 결국 완전히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녹이려면 많은 전기 에너지가 쓰이며, 귤껍질은 조명 갓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내부 부품이 될 수 없고 제품 생산과정에서는 항상 많은 쓰레기와 오염물질이 방출된다. 결국 기존 시장을 대체했다고 할 정도의 양적, 질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실상 더 많은 문제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아주 의미 없다거나, 친환경 제품 생산자들을 무조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변화의 과정에는 항상 과도기가 있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문제들이 따른다. 다만 나는 생산자들이나 디자이너들이 제품 하나로 세상을 바꾼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요즘 시대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 ADAO에서 작업한 Birth.라는 작업을 한가지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 작업은 버려진 일회용품이나 음식 포장들이 처리 업체로 옮겨지기 전에 수집하고 세척하여, 여기에 친환경 성분을 일부 함유한 레진을 부어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오브젝트들을 만드는 작업이다.
핵심은 쓰레기를 소재로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틀(몰드)로서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레진은 기본적으로 플라스틱이며, 완전한 친환경 소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친환경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작업을 한 다음의 이유와 닿아있다.
우리는 한번 버리고 나면 그것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버린 일회용품들을 두고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에 대해 자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회용품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활용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각성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과도기적 상황에서 개념적인 친환경 디자인도 필요하다는 생각인 것이다.
디자인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 그 본질 중 하나로, 자연환경에 대한 태생적 원죄를 가지고 있다. 결국 마지막에 세상을 바꾸는 것은 법과 시스템이다. 그 전까지의 세상에는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꾀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디자인과 공예의 역할이 아닐지.
지속 불가능한 디자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