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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Jun 14. 2024

수국, 끝나지 않는 여름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5월이 장미의 계절이라면 6월은 수국의 계절이다. 우리 집 장미들은 5월 말쯤 늦게 피는 독일 장미가 대부분이라 6월의 첫 주에도 만개한 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장미들이 5월 말을 거쳐 6월 초로 디졸브를 하는 동안, 끝나지 않을 여름을 만들어 줄 것 같은 엔들레스 썸머 수국이 작년보다 더욱 풍성하게 피어났다.

5월 말과 6월 초를 디졸브 한 독일 장미


엔들레스 썸머 수국은 그 해 새로 나온 가지에서도 꽃이 피는 당년지 수국이다. 그런데 당년지 수국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부지방 위쪽에서 6월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는 깻잎 수국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 해 새로 나온 가지에서 꽃이 피지 않는 이유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물과 영양 부족 등의 원인으로 새롭게 나온 가지가 꽃을 만들어낼 만큼 충분히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을 보기 위해, 꽃눈이 이미 달려 있는 전년지 가지를 부직포 등으로 꽁꽁 싸매어 겨울 동안 보호하는 월동 조치를 해주는 차선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도 결국 한계가 있는데, 수국 꽃을 풍성하게 보는 것은 매년 봄 월동의 결과를 지난겨울의 날씨 변수와 연관된 운에 맡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는 지난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았고 눈과 비도 많이 와서, 많은 집에서 성공적인 수국 농사가 되고 있다는 정원지기들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올해 3년 차인 우리 집 엔들레스 썸머 수국은 작년 2년 차 때와 비교해 덩치 자체가 엄청나게 커졌다. 퇴비와 각종 비료 등의 효과 때문인지, 연차가 쌓이면 원래 이렇게 커지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잎 몇 장 달려 있던 작은 모종에서 자라나 3년 만에 이렇게 커지다니 식물의 성장은 놀라울 뿐이다.

6월 중순, 엔들레스 썸머 수국이 만개했다


이와 함께 꽃도 작년보다 1.5배는 더 많이 피면서 올해도 엔들레스 썸머 수국 농사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마당 한쪽을 가득 채우는 파란 수국 꽃을 보고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술을 안 마셔도 꽃에 취한다. 이런 행복감과 성취감이 매해 겨울이 오기 전 귀찮은 월동 작업을 툴툴대며 하면서도 엔들레스 썸머 수국을 키우는 이유다.


마당의 한쪽에서 엔들레스 썸머 수국이 파란 세상을 만들고 있다면 또 다른 마당 한쪽에선 잉글리시 라벤더가

보랏빛 세상을 만들고 있다. 엔들레스 썸머 수국과 함께 우리 집 3년 차인 잉글리시 라벤더는 두 번의 겨울을 거치면서 줄기가 완전히 목질화되었고, 이제는 거의 작은 나무처럼 보일 정도다.

보랏빛 향기의 잉글리시 라벤더


잉글리시 라벤더는 반상록으로 겨울을 날 정도로 월동 능력은 최고지만 문제는 여름 장마철이다. 많은 집에서 여름 장마철에 과습으로 잉글리시 라벤더의 줄기와 뿌리를 녹여 저세상으로 보낸다. 하지만 배수력이 좋은 흙에서 충분한 햇빛과 함께 키우면 잉글리시 라벤더를 나무처럼 만들 수 있으니, 마당의 흙을 마사토로 듬뿍 채워 잉글리시 라벤더 키우기에 성공한다면 초여름의 정원에 가득한 라벤더 향은 덤으로 따라오게 된다.


6월이 되니 수국이나 라벤더 외에도 초여름의 다른 꽃들이 귀신같이 피어났다.


먼저 아스틸베. 반음지 식물의 대명사인 이 녀석은 아침 햇살만 잠깐 드는 우리 집 마당의 한쪽 구석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더 커지거나 작아지는 일 없이 비슷한 크기로 자라났다. 그리고 6월이 되니 역시 작년에 피었던 꽃의 수와 거의 비슷한 수의 꽃을 마당에 피어난 구름처럼 뭉게뭉게 솟아 올리며 몽환적인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반음지 구역을 밝혀주는 아스틸베


여름이라고 하면 또 백합꽃. 우리 집 마당의 키 작은 왜성백합도 어김없이 활짝 피었다.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작년 보다 더 크게, 작년 보다 더 많이, 비록 좀 부담스러운 빨주노의 강렬한 원색이지만 이제 곧 본격적인 여름이니, 이러한 강렬한 색깔도 자연스럽게 정원에 스며든다.


사계원추리도 올해는 최고의 모습이다. 한 송이 한 송이는 하루면 피고 지는데, 그 한 송이들이 잔뜩 모여 서로서로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며 피고 지고를 거듭한다. 작년에는 민달팽이에게 꽃잎이 모조리 뜯어 먹혀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미리미리 민달팽이의 습격을 대비했고, 그 결과 최상의 꽃을 보고 있다.

사계원추리가 하루 또 하루 꽃을 올리고 있다


운남소국은 가을에 피는 꽃인 줄 알았다. 그런데 5월부터 슬슬 꽃봉이 올라오더니 6월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 검색을 해보니, 운남소국은 5월의 봄부터 10월의 가을 끝까지 피는 꽃으로, 엄청난 개화력을 자랑하는 꽃이다. 5월에 꽃이 처음 피기 시작할 때는 홑겹의 모양으로 평평하게 꽃이 피다가 가을이 가까워질수록 겹꽃의 모양으로 볼록하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꼬리풀 퍼스트글로리는 신비한 바다를 보는 것 같다. 내가 본 모든 꽃들 중 가장 시원하고 청명한 파란색의 꽃을 꼽으라면 이 꽃을 첫 번째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5월에 개화를 시작한 코레옵시스 얼리 썬라이즈는 "뜨거운 태양과 나의 강렬한 노랑은 하나라고!"를 외치며 여름이 시작되니 더욱 기세를 몰아가고 있다. 아스트란티아 역시 더욱 풍성해지며 원색으로 채워지고 있는 여름의 정원에서 하얀빛으로 반짝이며 순수함을 담당하고 있다.  


6월의 장미 벨렌 슈필이 다른 장미가 다 질 때쯤 느지막이 개화했다. 2년 차였던 작년까지 양옆으로 길쭉길쭉 덩치만 키웠던 벨렌 슈필은 3년 차인 올해가 되어서야 제대로 수형을 잡고 꽃봉을 좀 올리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올해로 충분히 클 만큼 컸으니, 내년부터는 연분홍빛 도자기 같은 자태의 클래식한 꽃을 한가득 피어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6월이 훨씬 넘어서 개화를 시작한 독일 장미 벨렌 슈필


마당이 2년 차가 되면서 대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자리 잡은 다년생 숙근초들이 몸집을 본격적으로 키우면서 덩치가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그늘 밑으로 밀어 넣어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대표적인 녀석이 수크령 모우드리. 이 녀석 전후좌우에 있는 모든 꽃들이 수크령 모우드리의 횡포에 피해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년까지 가을 정원 분위기 담당 일등공신이었던 이 녀석을 눈물을 머금고 들어냈다.


수크령 모우드리를 뽑아낸 자리에는 지난봄에 파종해서 이미 꽃봉이 달릴 정도로 다 커버린 일년초 백일홍을 임시로 심었다. 또 백일홍이 시든 후 이 자리를 다시 채울 다년생 숙근초로 어떤 꽃들을 데리고 올까 검색에 돌입하여 리스트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중이다.


6월이 되니 노지의 팬지들이 슬슬 쓰러지고 엎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놔두면 꽃을 조금 더 볼 수 있겠지만, 포트 안에서 대기 중인 백일홍과 메리골드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노지의 팬지를 정리. 또 물망초로 물망초 길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두세 주의 물망초만으로는 볼품이 없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팬지 옆에 있던 물망초도 함께 정리를 해버렸다. 팬지와 물망초를 정리한 자리는 파종해서 키운 메리골드와 백일홍이 차지했다.

물망초와 팬지를 들어낸 자리에 메리골드를 심고 있다


꽃과 나무들의 덩치는 점점 더 커지고, 이 꽃을 왜 이렇게 심었을까 과거의 나를 꾸짖고 있는 요즘이다. 마당에 나가 있으면 이 녀석은 이 자리로 저 녀석은 저 자리로, 세월아 네월아 꽃과 나무들로 테트리스를 하고 있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초여름의 꽃들을 보고 있으면, 싱그러웠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 꽃들에게 받고 있는 이 위로와 행복으로 2024년의 남은 절반을 씩씩하게 살아 보자고 다짐하는 6월의 오늘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6월 1일~6월 15일)

여름꽃이 만개한 6월 중순의 미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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