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즉흥적 의사결정이 조직을 망칩니다.
오늘은 리더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조직마다 리더, 리더십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결정하고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의사결정과 나쁜 의사결정을 수시로 만납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쁜 의사결정을 모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회사와 조직의 방향과 무관한 결정
2. 오늘 결정해 놓고 내일 번복하는 결정
3. 논리와 근거에 기반한 설명이 불가능한 결정
4. 별다른 이유 없이 특정 대상에게만 유리한 결정
5. 타이밍이 엉망인 결정(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거나)
적으면서 요리조리 째려보다 보니 저만의 '작은 발견'을 하게 되었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나쁜 의사결정의 교집합이 바로 '즉흥적 결정'이라는 점입니다. 즉흥적으로 결정하다 보니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고(3) 특정 대상에게만 유리한 결정이 되기 십상이며(4)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어렵습니다.(5) 때문에 이런 결정들은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과도 맞지 않고(1) 가까운 시일 내에 번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2)
만약 내가 속한 조직이 성장하는 조직이고, 다음 단계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라면 즉흥적 결정을 특히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결정들은 불필요한 레거시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레거시는 단순하게는 돈 낭비, 부채를 의미하지만 관점을 넓히면 조직 비효율, 조직 신뢰에 악영향을 미치는 모든 결과를 상징합니다. 기술부채만큼 무서운 게 제도부채거든요.
업력이 오래된 기업의 규정이나 제도를 뜯어볼 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들이.. 떡 하니 유지되는 경우를 발견하곤 합니다. 당시에 그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 바보라서는 아닐 겁니다. 조직의 미래를 생각해 보고 찬찬히 고민하는 대신, 지금 좋아 보이는 것, 당장 의미 있어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즉흥적으로 내린 의사결정들이 켜켜이 쌓여 만든 결과인 겁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제도들이 레거시가 되어 비효율을 만들고 천천히 조직을 망치게 되는 거죠.
제도부채를 만드는데 의사결정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의, 좋은 의도는 오히려 부채를 늘리는 포장지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나 임원이 갑자기 던지는 "우리 이거나 해볼까?"에 진절머리 치는 담당분들이 참 많은데요. 일단 들어보면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은 거의 없습니다. "복날에 삼계탕이나 돌릴까?"에 무슨 나쁜 의도가 있겠어요. 다만 그게 지금 가장 중요하냐. 어떤 메시지를 줄 거냐 등이 문제인 거죠.
직관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이 좋은 결정 아니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네. 동의합니다. 다만 직관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오랜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쌓고 쳐내기를 반복한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즉흥적으로 보일 뿐이죠. 준비가 잘 된 발표일수록 간결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의사결정에 왕도는 없다고들 말하지만 그렇다고 노력조차 할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직책은 곧 영향력을 의미하기에 직책이 생기는 순간부터 내가 하는 모든 결정은 크던 작던 조직에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위에서 말한 나쁜 의사결정을 체크리스트로 삼아, 스스로 되묻곤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결정이 즉흥적 결정인지를 반드시 체크합니다. 물론 해놓고 반성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래도 노력해 보는 거죠.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Note: 제가 남기는 글은 기업문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로 특정 조직이나 회사의 상황을 가정하고 적은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