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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Sep 14. 2024

[culture] 수평적 소통과 예의

최근에 제조 대기업에서 IT분야로 이직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묻던 중,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고민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직전 회사에서는 깍듯하고 예의 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는데... IT회사에 오니 다들 편하게 말하고 공격적으로 챌린지 한다면서 본인은 수평적 소통과 맞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야기를 곰곰이 듣다가 본의 아니게 반론을 하게 되었는데요.


전 수평적 소통이 중요한 조직일수록 예의가 곧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수평적 소통과 무례함을 혼동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요. 굳이 안 해도 될 말까지 해가며 상대를 공격적으로 비판하는걸, '시원하다' 혹은 '솔직하다'고 포장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수평적 소통을 완벽히 잘 못 이해한 비극입니다. 사실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문화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수평적 소통에서 왜 예의가 중요한지를 설명하려면 수평적 소통이 부상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봐야 하는데요. 기업문화씬에서 특정 어젠다가 부상하는 이유는 기업이 성과를 내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평적 소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직보다 수평이 듣기 좋아서, 인터널브랜딩이나 채용에 유리해서 중요해지는 게 아닙니다. 요즘시대 기업이 성과를 만드는데 수평적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이 낮고, 경험이 실력을 만드는 환경에선 수직적 소통이 성과를 내는데 효과적입니다. 답을 아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빠르게 업무를 추진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요즘시대 기업이 직면한 현실은 어떤가요. 누군가 뚜렷한 정답을 알고 있고, 나만 따라와! 를 외칠 수 있는 상황인가요? 사업 환경이 얼마나 불확실하면 VUCA (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라는 말까지 등장했을까요.


이젠 정답을 가진 사람을 찾거나 기다리는 대신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그중에 가장 될 법한 안을 찾아 빨리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실행하는 agility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니 많은 의견을 들어보며 가설을 세우고 논리와 근거에 기반한 토론을 거쳐 가설을 검증하는 방식의 수평적 소통이 중요해진 겁니다. 최종 결정을 의사결정권자가 한다는 사실은 수직이나 수평이나 같습니다. 과정이 다른 거죠.


수직적 소통이 중요한 조직에선 소통의 접점이 작고 명확하기에 주로 윗사람에게만 예의를 갖추면 되지만 수평적 소통이 중요한 조직은 소통의 접점이 넓기에 사실상 모두에게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나보다 어리다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편하게 대할게~~ 이런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누군가의 의견이 무시당하는 문화에서는 불확실성을 뚫고 성과를 만들기 힘들어지거든요.


예의가 곧 경쟁력이다. 그러니 본인의 강점을 애써 부정하지 마셔라. 서로의 직책, 나이, 연차와 무관하게 각자의 논리와 근거에 기반하여 예의를 갖추며 토론할 준비만 되어있다면 걱정 마셔라. 그리고 당신은 그걸 잘하는 사람이다. 제가 47분의 보이스톡을 통해 드렸던 조언이었습니다. 목이 많이 아팠지만,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는 말에 기분 좋게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려 다소 민망하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Note: 제가 남기는 글은 기업문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로 특정 조직이나 회사의 상황을 가정하고 적은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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