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책맞게 친구 자랑을 해보려고 합니다. 전 비평준화 지역에서 고등학교 입시를 경험했는데요. 고등학교에 가보니.... OMG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고요. 제 친구도 그중에 한 명인데요. 왜 그런 친구 있잖아요. 머리 좋고 야무져서 특별히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뭐든 잘할 것 같은 그런 친구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문제집을 푸는걸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문제집을 문자 그대로 '더럽게' 푸는 거예요. 그냥 연필이나 볼펜으로 풀면 될 일을, 형광펜과 색연필로 범벅을 하면서 풀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참 공부를 요란스럽게 한다고 생각하고 몇 마디 구박한 후에 넘어갔었어요. 한참이 지나 이 친구랑 여행을 할 기회가 있어서 새벽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야 너는 머리도 똑똑한 놈이 왜 문제집을 그렇게 더럽게 푼 거냐"라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잠깐 망설이더니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고등학교에 와보니 친구들에 비해 본인이 똑똑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믿을 건 오직 노력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남들은 볼펜으로 한번 풀고 끝내면 될 문제집을 여러 번 풀기 위해서 색연필과 형광펜을 썼다는 거예요. 한번, 두 번, 세 번 같은 문제에 밑줄을 긋고 반복해서 풀다 보니 문제집이 형광펜 범벅이 된 거고요.
와. 저는 아직도 그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 선명한데요. 왠지 모르게 정말 미안해지더라고요. "머리 좋으니까 잘하겠지"라는 나의 단언이 결코 칭찬이 아니구나. 오히려 상대의 노력을 무시하는 성급한 결론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 덕분일까요.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지를 생각하게 돼요. 제 친구의 형광펜과 색연필처럼요.
혹시 주변에 어떤 일을 맡겨도 그 일을 훌륭하게 완수하는 동료들이 있다면,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인정하고 박수를 보내주길, 그 모든 결과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 주길 바래봅니다. 많은 회사와 조직들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잘하는 사람들을 인정하는데 소홀하곤 합니다. 그러면 안 돼요. 셀프 모티베이션도 무한히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잃고 나서 고민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전국의 일잘러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