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0
한 때의 나는 필기에, 일기 쓰기에 열정적이었다.
학창 시절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 저장하기보다는 어느 여백에, 어느 줄칸에 어떻게 메모하고 무슨 색으로 강조를 할지를 생각하느라 머리와 손이 바빴다. 귀는 닫고 눈에 집중했다.
내 필기노트는 완벽했다.
그림을 그리듯 교과서에도 알록달록 필기를 하고 붙여댔다. 내 필기실력을 자랑하듯, 종종 누군가 내 필기노트 대여요청이 오면 교과서까지 세트로 묶어 내어 주며 천천히 보라며 흐뭇한 자기만족을 느꼈다.
일기도 다를 바 없었다.
일기의 정석인 그날의 감정을 담기보다 키워드나 사진위주로 그리고 붙이고 칠하고 가 전부였다.
필기도 일기도... 그때의 나는, 다시 꺼내볼 수 없어 다행이지만 혹여 누가 본다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매일 같은 꾸준함과 성실함을 이길자가 있겠는가?
매일 트레이닝되는 다꾸 실력은 늘고 늘어 학습신문도 만들고 제법 손재주는 늘어갔다지만 글쎄, 지금은 그다지. 아니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뭐,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아쉬운 점이라면 이해는 뒷전에 두고 열심히 적고 강조라도 해두었으니 준비는 완벽했지. 성적이 잘 나올, 그러니까 공부를 잘할 준비 말이다.
총명힌 두뇌를 가졌다는 전제하에 복습만 했어도 내 성적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예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성실함은 없었고, 어린 시절 나는 필기를 다꾸처럼 해나갔기에 수업시간 몰입은 최고치였으나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허당이었다.
사회에 나오니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인지해야 할 매뉴얼, 이건 그나마 나았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줄게! ’ 마음을 단단히 먹은 선임의 결의가 느껴졌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이제 나의 일이 아니라는 들뜬 기분까지도. 최대한 빠르게 전달하고 손을 털고 싶은 모양이었다.
글쎄, 듣는 순간 역시나 나는 삐- 이명이 들리는 듯하더니 귀의 기능은 상실해 버렸다. 신이 난 선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솔직히 흐물거리는 은색 봉투를 뜯다 삑사리가 나서 우르르 흘러나오는 시리얼 같았다. 하얀 물방울을 튀겨내며 시원하게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도 잠깐 스쳤다.
회의도 마찬가지다.
나의 일목요연 정리된 회의록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각자 듣고 각자 본인의 노트북이나 패드, 노트에 기록할 뿐 남이 뭘 적든 관심이 없었다. 같은 정보를 듣지만 내 위주의
정보들만 담아내기 바쁘다. 동일한 시험지를 받고 정해진 답을 골라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름 눈치가 빨랐다.
대학교까지 이어오던 다꾸는 그만하기로 했다. 먹고살려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회의란 자고로 검정펜 하나로 승부하는 싸움이다. 굳이 적지 않아도 이해도가 최상이라면 더욱 인정받는 눈치였다. 중간중간 알맞은 리액션이 조직에서는 더 효과적인 처세였다.
다꾸의 시절을 지나, 한 페이지에 1/3도 채우지 못할 만큼의 몇 가지 주요한 일들과 핵심단어를 적고 지내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다꾸고 뭐고 긴 글은 물론이거니와 회의록 작성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최근 회의 내용을 요약해 공유하는 일이 종종 주어지는데 이미 내 손을 떠나 발송된 메일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든다)
너무 비약적으로 들렸다면, 다시 정정해서 좋게 좋게 말하면 회사원으로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다꾸를 할 일도 긴 글을 쓸 일도 없기 때문에 한 눈 팔지 않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합리화해 본다.
나이가 차며 생각과 감정이 깊어진다.
자유는 갈수록 줄어들고 책임과 의무만 배로 늘어난다. 어디서나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하고 남의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고 한다.
쌓이고 차오르다 못해 넘칠 것 같은 감정이 사리가 되는 걸까? 문득 기사를 보다 스님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사리를 보며 드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참다 보면 나도 반열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걸까?
사리의 씨앗(?)이 생기려 할 때 브런치를 접했다.
운 좋게 단번에 작가 승인이 나고 첫 글은 메인에 노출이
된 기억이 있지만 먹고사는 게 바빠 그렇게 연례행사로 장문해 끄적이다 발길을 끊었다.
이유는 그럴듯한 생각을 담아 쓰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거다. 이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공감해 주고 느끼는 바가 있기를 바라며 썼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알았다. 굳이 내 글로 그런 메시지를 주지 않아도 이미 세상에는 주옥같은 문장과 끄덕임을 멈추지 않게 하는 유명한 작가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음,
매우 슬프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 그럴 재능이 없더랬다.
그래서 결론은,
부담과 기름을 쏙 빼고 나 혼자만 보는 다꾸아닌 꾸미지 않은 다이어리로 브런치를 만나기로 했다. 하루의 기쁨, 슬픔, 분노, 망상까지도 아우르는 알 수 없는 마음을 꾸준히 담아주기에 이곳은 그릇이 꽤 커 보인다.
괜찮은 곳이다.
새로운 일기장을 산 것처럼 마음에 든다.
텁텁한 바람이 가시더니 여름이 끝을 준비하는지 길었던 해가 태세전환을 했다. 최근 퇴근 무렵의 하늘은 분명 이런 색이 아니었다.
기분 탓인지 깊고 까만 바다처럼 보이는 하늘에 유난히 크고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랄까?
하루를 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하는 한 컷과 기분이면 충분하겠다.
일기장을 굳이 사지 않은 건,
남편에게 혹은 아이에게, 또 다른 나의 가족에게 누군가에 언젠가는 들춰지는 날이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면을 상상하니 더더욱 실체가 있는 노트는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핵심도 요점도 없는 다꾸시절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일렁이는 넘치는 감정을 주워 담아 추슬러야 할 필요성과 간절함이 이제는 절박함이 되었다.
대단한 일상은 아니지만 생각은 끝이 없이 피어오른다.
MBTI 탓인가....
여하튼 아무도 볼 수 없는 이곳이라면 안심이다. 마음이 놓인다는 것은 나를 더 내려놓고 솔직해질 수 있을 테니까... 곧 불을 꺼야 할 것 같은 끓어 넘치는 냄비 같은 내 마음도 하나씩 풀어놓다 보면 심플하고 맑아지겠지.
계정을, 자격을 박탈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조용히 나를 담을 준비를 하고 기다려준 것 같아 고맙다.
쓰고 보니 어쩜 이런 말을???
발언의 책임은 새벽의 탓으로 돌리고 브런치를 의인화해 버리는 감수성 터지는 멘트를 남기며 미무리해 본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우리끼리 앞으로 잘해보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