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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심매일 Nov 01. 2023

갈비뼈와 아랫배는 사실 아무 잘못이 없거든요.





오전 10시. 

센터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선생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이렇게 조화로울 수가 없다. 


“자, 한숨을 쉬듯이 갈비를 닫고, 배꼽 쪽 아랫배를 최대한 납작하게 당겨서 지퍼를 올린다는 느낌으로 버텨 봅니다. 다섯 카운트.  다서엇, 네에엣, 세에엣.”


슬리퍼를 끄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의 카운트는 왜 이렇게 꼬리가 긴 것인지. 몸뚱이는 소리 없는 전쟁 중인데 오늘따라 유독 아름다운 피아노 곡이 아주 야속하다. 다 같은 마음인 걸까? 5명의 전우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들릴 때쯤 한 세트가 겨우 끝난다.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몸에서 라스트콜 같은 생존 시그널을 마구 보내기 시작해서 이번에는 도저히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일단 수신 완료. 

 나만 부지런하면 집에서도 충분히 홈트로 몸을 만들 수 있는 시대고, 운동화를 신고 동네만 뛰어도 차고 넘치는 운동인데 그게 안된다. 쉽게 바뀔 리가 없지. 나는 나를 잘 안다. 운동 의지는 ‘특히’ 돈으로 사야 유지된다는 것을. 애초에 그런 의지가 있었다면 내 몸이 ‘살려면 움직여’라는 시그널을 보내지도 않았겠지. 그 신호라도 제대로 알아차렸으니 다행이다. 


 제대로 해 볼 만한 운동 종목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조건은 두 가지였다. 지금껏 해본 적 없을 것, 하지 않을 핑계가 적을 것. 여러 후보들이 경합을 벌였고 최종 후보는 필라테스와 수영. 결국 필라테스가 선택 됐다. 수영이 탈락한 이유는 꽤 치명적이다. 물속에서만 좋은 운동이라서. 물에서 나오는 순간 느껴지는 한기가 싫었고 다시 뽀송한 몸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번거로웠다. 

 반면 필라테스는 적어도 춥진 않을 것 같았고, 땀이 많이 나더라도 굳이 센터에서 샤워하고 찍어 바르고 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조그맣게 숨겨놓은 로망 같은 것도 있었다. 대기구에서 멋진 포즈로 운동하는 사진에 대한 로망. 다들 바디프로필도 잘만 찍던데 나는 바디프로필도 아니고 대기구 포즈 사진 한 장 정도는 금방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홍보 전단지를 너무 많이 봤지. 


출처 Getty Images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한 필라테스인데 첫 시간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내 몸이지만 뼈 마디 하나하나가 다른 자아를 가진 것 마냥 컨트롤이 안되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타의 운동들처럼 움직임이 큰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는 도대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알 수도 없을 만한 동작들이 이어지는데 이내 콧잔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허리로 땀 줄기가 쭉 흘러내렸다.  


 비록 몸에서 보내는 생존 시그널을 받아야 운동을 계획하는 (조금 다른 의미의) '생존 운동 전문가’ 이긴 하지만 운동 초보는 아니라 자부했었는데. 제 멋대로 움직이거나 도무지 꿈쩍하지 않는 극단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약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내 몸을 거쳐간 다양한 운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개인 PT도 꽤 오래 받았고, 스피닝도 했고, 줌바도, 요가도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했던 운동이 아쉬탕가 요가였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심지어 아이를 가졌을 때도 수련을 했다. 한 때 이효리 요가로 유명했던 그 운동. 유행하기 전부터 수련해 왔다는 나름의 뿌듯함도 있었던 애착 운동이었다.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늘 긴장하는 습관으로 타이트해진 근육을 가졌지만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최근까지도 수련해 왔기에 필라테스도 충분히 쉽게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무지에서 오는 희망이었다. 

 




 

 온몸을 달달달 떨며 버티는 와중에 백 카운트 같은 열 카운트가 아직도 끝나지 않는다.    

   

“갈비를 닫고 배를 납작하게 더 집어넣고 스쿱. 숨 참지 말고. 다 왔어요. 세엣, 두울, 하나아“


선생님,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갈비를 닫고 배를 납작하게 스쿱하는데 대체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있는 거죠?

끝나고 난 후 기분이 좋은 행동이 나에게 유익하다고 했던가? 운동이 끝난 후, 머리는 산발에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는데 온몸이 개운할게 뭐람? 그 기분에 취해 대기구에서 포즈, 아니 매달려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필라테스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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