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든 고민은 코로나19로 통한다.
2019년 12월 나는 퍽 희망에 가득찬 대학생이었다. 2년 동안 끙끙거리며 쥐고 있던 졸업논문을 깔끔하게 털어냈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기왕 자기 자랑 좀 해보자면, 학과 교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졸업논문 제도를 유지하는 게 학생들에게 부담일 줄을 알면서도 놓지 못했던 것은 언젠가 이런 논문을 받아 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공부가 천직이라 생각했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가 좋았고, 남들은 모르는 것을 나만 알고 있을 때의 희열도 엄청났다. 세상은 궁금한 것 투성이었고, 충실한 서랍이 딸린 책상과 팔을 뻗으면 바로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책장에 이웃한 침대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늘 말솜씨보다는 글쓰기가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으니 진로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학부내내 세상 사람들이 취업을 위해 치열하게 쌓아 올리는 스펙은 철저히 남의 이야기였다. 나의 진로는 꽤 명확하다고 생각했으므로. "학부를 졸업한다. 전공을 살려 석사 입시를 한다. 합격한다. 학교를 다닌다. 석사를 딴다. 박사 과정을 준비한다. 박사가 된다. 그 이후의 일은 그 뒤에 생각해보자. 어차피 그때쯤 되면 나는 30대일 테니까."
이변은 졸업과 함께 찾아왔다.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연구하고 싶은 시대도 주제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사와 동아시아사, 관계사에 관심을 기울였다가, 갑자기 서양 근대사 수업을 왕창 듣더니 결국 졸업 논문은 한국 현대사를 골라잡았던 화려한 전적으로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매우 뒤늦게야 든 것이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도적이 되고 싶다는 은밀한 마음으로 열심히 사냥도 하고 스탯도 찍었는데, 2차 전직을 하려고 보니 나는 궁수 약간, 검사 약간, 마법사 약간의 경험치를 쌓은 것이다. 여태까지 잡은 줄 알았던 달팽이가 그래도 빨간 달팽이는 되는 줄 알았는데 몽땅 그냥 달팽이임을 알았을 때만큼 낭패감이 들었다.
그렇게 대학교 6학년을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진로가 갑자기 자기 멋대로 펼쳐졌다. 장학금 신청을 넣어보기 위해 노베이스로 치렀던 토익에 진심이 돼야 했고, 자기소개서에 녹여낼 만한 대외 활동을 해야 했고, 그러자면 다시 대외활동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다.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챘던 2020년 1월. 나는 매일 오전 8시부터 종로에서 토익 수업을 듣는 취준생이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