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부족하면 상상에 의존해서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상상도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살을 덧대는 식이라, 결국 경험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겪다'라는 것은 매번 이롭지만은 않다. 때로는 안 하느니만도 못한 경험이 있고, 시간을 내다 버렸다는 생각에 분노가 끓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고통과 실수라는 이름으로 대신 불린다. 하지만 고통과 실수가 반드시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되살리고 싶지 않은 감정과 경험도 일종의 맷집 역할을 한다. 실패를 기록한 경험은 오히려 불굴의 의지를 다지게 한다.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다양한 감정을 ‘겪어본’ 자가 생동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극 중 지해수가 장재열에게 이런 대사를 날린다.
# 재열의 방
지해수와 장재열이 같은 집에서 지내게 되면서 둘의 마찰은 더욱 심해지는데,
결국 폭발한 지해수가 참지 못하고 장재열의 방에 들이닥친다.
재열의 방 한 면을 차지한 포스트잇들을 보다가,
해수, 자신이 했던 말이 그대로 적혀 있는 메모를 발견한다.
해수 (헛웃음) '둘이 딥키스했니?’ 넌 남의 상처가 재밌어? 글로 쓰게?
재열 내 상처도 팔아먹고 사는데 남의 상처쯤이야.
재열, 화이트보드에 '넌 남의 상처가 재밌어? 글로 쓰게?’ 방금 해수가 한 말을 옮겨 적는다.
순간을 붙잡는 효과적 방법, '기록'이다. 기록은 섬세하게 찰나를 보듬는다. 다듬지 않은 날 것의 문장도 영감에 도움을 준다. 결국, 특별한 순간만이 경험을 만들고 기록할 명분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다양할수록 공감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 일상을 다정히 바라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다. 공감은 관계를 재조명한다. 타인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나'와 '나’ 사이의 간격도 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