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쓰는 향수라며 소개하던 제품 중에 ‘르 라보'가 있었다. 향수를 좋아한다는 말은 주워 들어서 알지만, 그 말이 농담은 아니었는지 향수를 소개하는 얼굴이 들떠있었다. 오늘도 뿌리고 왔다던 그 향은 르 라보에 대해 잘 모르는 나조차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었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수술실 냄새 혹은 역한 냄새라 하고, 또 누구는 포근하고 달달한 살냄새라고 부르는 어떤 향이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짐작으로는 무리인 입체적인 향. 시향지에 맡았을 때와 직접 착향을 해보았을 때의 향이 또 달라서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꽤 까다로운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마냥 번거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려면 여러 가지 시도가 필요한 법이니까.
솔직히 나는 르 라보의 바틀이나 라벨 디자인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딥티크나 불리처럼 향을 상징하는 그림이나 서체 그리고 바틀의 외형에서 오는 느낌을 더 좋아한다. 반면에 르 라보는 간결하고 깔끔한 라벨과 외형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순수한 경험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이 방식을 택했다던 '에디 로시’. 인상적인 건 향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모든 향의 인상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 안에 누적된 기억의 영향을 받아요. 각자가 살아온 삶의 모습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안겨주죠.'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방식으로 완성에 가까워진 '르 라보’. 본인 작품에 대한 작가의 과도한 부연 설명은 오히려 독자의 여운과 해석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향을 매듭짓는 결정권은 우리 각각에게 있다. 그 존중의 태도를 읽고 나니 그동안 단조롭게만 느껴지던 르 라보의 향수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