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의 어느 날.
여러 이유로 만나지 못하고 서로 안부만 전했던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명색이 계절 바뀌고 처음 만나는 셈이니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할까 싶었다. 그 사람과 어울리는 선물이 뭐가 있을까 고심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선물을 고르는 기준은 두 가지였다.
1. 부담을 주지 않는 가격 (대략 2만원선)
2. 어울림 (당사자와 어울리거나 유용하게 사용할 만한 무언가)
엘피, 인센스 등이 유력 후보로 앞다퉜지만 새롭게 등장한 강수가 있었으니, 바로 일회용 필름 카메라였다. 밖에 잘 돌아다니지도 못하니 자칫 쓸모없는 선물이려나 싶어 잠시 고민했지만 이 힘든 시기를 필름으로 남겨두는 것도 추억이겠다 싶었다. 배송은 세월처럼 거침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거리두기가 상향 조정되면서 약속은 다음으로 밀려났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우리는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차선책을 찾았다. 우리도 온라인 콘서트나 하자며 먼저 제안하니 그럼 자기는 춤을 춰보겠다고 그가 화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온라인에서 만났다. 사이버 우정도 아니고 내가 무슨 가상현실에 사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좋은 의미로- 묘했다.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별짓을 다하는구나 싶어 웃기기도 했다. 서로 요즘 듣는 음악을 틀고, 화면 공유 기능으로 웃긴 영상들을 보며 우리는 시답잖은 농담을 했다. 이 상태로 진중한 대화가 가능할까 싶었지만 역시 불가능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휴식과 자유가 진정한 휴식이자 자유임을 느낀다. 때로는 내부의 안온한 세상을 벗어나 미지의 바깥에 몸을 던져봐야 할 때도 있다. 바깥 활동은 피곤하고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든다고 여겼는데, 정작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바깥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는 여전히 내 방에 있다. 언제 전할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그럼에도 ‘언젠가’라는 모호한 시점이 우리를 살게 한다.
작년이 눈앞에 놓인 것처럼 얼떨떨한 선물이길. 우리가 버텨낸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할 선물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