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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meSpace May 05. 2022

산책 (2)

다시 만난 향기의 세계

날씨가 좋아 문득 산책을 하고 싶었다.

카메라를 챙겨 지하철을 타고 석촌호수로 갔다.

평일 오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호수 주변을 반시계 방향으로 걸었다.

한 바퀴의 4분의 3 지점에서 뉴스 보도가 떠올랐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엊그제부로 조정되었기 때문에 잠시 마스크를 내려보았다.


마스크 벽을 두드리던 온갖 향기 입자들이 서로 밀치고 들어와 후각을 신나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감각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며 시각이나 청각 혹은 촉각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불편할지 가정해 볼 때가 있는데, 실험 목록에는 없던 후각의 뚜렷한 존재성을 확인했으니 그 상황은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 향기들의 향연에 참여한 손님들은 누구였던가.

가장 강력한 것은 사람의 향기였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 냄새가 난다'라고 할 때의 관용적 표현이 아닌 정말 사람이 지닌 고유의 냄새였다.

또한 바람을 타고 온 봄꽃 향기와 물비린내도 다녀갔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햇살의 향기인데,

다만 그것은 햇살의 향이라고 단언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햇빛을 받아 마른 빨래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향기 비스무리한 것이 분명 코를 통과했다.


그 산책의 어느 순간에 나는 마치 향기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듯 행복했다. 풍부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도 각각의 존재를 어필하는 향기들 덕에, 호흡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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