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에 ‘건강한 앎’이 남을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꼭 스쳐 지나가야 할 박탈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는 제가 세상의 아픈 것들을 돌아가길 바랐지만, 저는 늘 그 불구덩이에 손을 넣어 보아야만 하는 딸이었어요. 엄마가 그러는데, 저는 젓가락을 콘센트에 꽂기도 하고, 주방 가위로 옷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도 하고, 동네 강아지에게는 물리더라도 꼭 만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고뭉치였다고 해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냐고 물으신다면, 네. 저는 찍어 먹어봐야 알겠더라고요. 쓰레기같은 남자친구도 만나서 데여 보고 나니, 나를 진짜 사랑해주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됐고요. 영원히 좁힐 수 없는 빈부격차를 겪고 나니, 나의 구역에서 가장 행복할 방법을 찾는 데 더 집중하게 됐답니다. 저는 그 세상의 수많은 박탈감으로부터 만들어진 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는 박탈감의 끝은 결국 비참함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한 때 무척이나 스스로를 비참히 여기는 인간 군 중 하나였죠. 근데 그 편견도 찍어 먹어 보고 나니, 결국에 마지막에 남는 것이 ’비참함‘보다는 ‘앎’이더라고요. 최소한 저에게는 말이에요. 이 마저도 불구덩이에 손을 담가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배워 나간 제 인생의 진리 한 줄입니다.
사실 굳이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배우지 않고, 제가 적어 내려가는 글만으로도 누군가 그 아픔을 우회할 수 있다면 꼭 그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좀 미련한 편이거든요. 현명하게 피해갈 수 있는 일은 언제든 현명하게 피해가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꼭 스쳐지나 가야 할 박탈감이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박탈감의 끝에 ‘건강한 앎’이 남을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잖아요. 아는 것은 끝끝내 불행하게 하진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