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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와 Apr 29. 2023

우리 집밥

지난 추억 속 우리 집밥들을 기억하며

intro.


 아직도, 아침저녁 기온 차가 심해 겨우내 들여놓았던 화초들을 밖으로 내어놓질 못하고 있다. 어느 한 해, 한낮 기온이 따사롭다 못해 덥기까지 한 늦봄. 이맘때쯤 성급히 화초들을 내어놓았다가 갑자기 밤 기온이 내려가 냉해를 입어 몇 개를 보낸 후, 큰 교훈을 얻었다. 어떤 일이든 내, 이 조급증은 큰 병이다. 문득문득 맞닥뜨리는 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공부로 알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런 나는 상암동에서 28대째 살고 있다. 지금은 잠깐 3년간 수색에 살지만 그동안 상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앞으로도 다시 상암동으로 갈 것이다. 그 긴긴 세월을 한동네에서 살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어찌 무던히도 오랜 세월을 대를 이어가며 살고 있다.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과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풍파와 세월을 지나온 길고도 긴 시간을 자손도 많지 않은 조상들이 어찌 버텨내었을까. 분명 나와 같은 조급증을 가진 조상들이 적었음이리라.     


  상암동은 한강을 끼고 있어 친정어머니가 시집을 올 무렵만 해도 난지도 샛강에 손바닥 반만 한 새까만 재첩이 호미로 한 번만 긁으면 툭툭 나와서 금세 함지박 하나를 너끈히 캐어 올 수 있었고, 넓디넓은 백사장, 광활한 땅콩밭은 아이들의 땅콩 서리처였으며, 버드나무가 어디에나 있어 아이들이 매달려 낭창낭창 재미진 놀이감이었더랬다. 겨울이면 새하얀 눈밭 위에 몸 전체가 시커먼 집채만 한 독수리 떼가 장관을 이뤘다. 물론, 난지도에 쓰레기 처리장이 생기기 전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도 옛말이고 하늘공원 노을공원에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지만 그래도 옛날 그 풍경에는 견줄게 못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인심이 좋으셨던 할아버지는 동네에 나그네나 거지들이 오면 본인들이 가겠다고 할 때까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사랑채에 머물게 해 주셨다. 덕분에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아 할머니는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된장, 고추장, 장아찌, 짠지, 오이지 등등 저장 발효 식품을 항상 넉넉히 준비해 두어야 했다. 봄이면 보리타작 후 일꾼들을 먹여야 했기에 보리새우에 쪽파를 새우 길이로 송송 썰어 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후 깨소금을 뿌려 넣은 새우 쪽파 무침과 새로 돋아나는 소리쟁이를 넣어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었다. 여름이면 지게에 지어야 할 만큼 큰 민어의 살을 발라 포를 떠서 양념한 후 말려서 아이들 간식과 술안주로, 뼈와 나머지 대가리 부속은 맑은 지리탕을 내어 복 다림을 했다. 또한 오이지무침과 맨드라미 물들인 무 쌈, 애호박과 봉투라지 오이를 넣은 된장찌개와 참외장아찌를 먹었다. 늦가을이 되면, 큰 행사인 김장을 해야 했다. 사골을 우려낸 사골국물에 각종 양념과 무채장아찌를 하고, 황석어와 동태를 숭덩숭덩 썰어 김치 사이사이에 넣어 담갔다. 어른들은 김치가 익으면 황석어와 동태를 골라내어 겨우내 맛나게 드셨다. 겨울엔 청국장과 김치찌개, 뭇국, 가을에 말려둔 호박오가리, 가지 오가리, 무말랭이 등으로 떡과 반찬을 해 드셨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대였기에 여름엔 우물에 항아리를 매달아 김치를 저장해 먹었고, 겨울엔 땅속에 움을 파 저장고로 쓰셨다. 또한 새우젓과 황석어젓을 철마다 만들고, 각종 나물을 말려서 묵나물로 만들어 먹었으며, 마당과 뒤뜰엔 앵두나무,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매실나무를 심으셨다.     


  젊을 땐 사는 게 바빠 먹거리의 중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는데, 요사이 부쩍 내가 할머니가 하던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 늙어서 인가 철들어서 인가 모를 일이다. 나박김치를 퍼서 주변 이웃에게 나눔을 하거나 토마토 장아찌, 비트 장아찌 등등을 만들어 또한 나눔을 한다. 직장 생활로 바쁜 친구들에게 고구마 줄기 김치, 용비늘 김치, 보쌈김치 등 별미김치를 만들어 우체국 택배로 보내고 우리 집 대장인 만두를 만들어 친척과 이웃에게 돌린다. 


  듣기로 체질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하는데, 조상들이 먹던 것이 나의 몸에 가장 맞는 음식일 것이다. 집집마다 내려오는 음식이 몇 가지씩은 있기 마련인데,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을 소중히 생각하고 철마다 해 먹으며 자식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요즘은 음식 만드는 것을 자신 없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을 봐도 반찬도 못 만들고 김치도 못 만들고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만으로 떼우거나 사 먹거나 얻어 먹거나. 나중엔 정말 마트에서 모든 음식을 사 먹어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들 알고 있듯이 파는 것엔 첨가물이 한두 개씩은 들어가기 마련이다. 나처럼 조미료에 민감한 사람들은 살이 부르트고 가렵고 장에 탈이 나는 알레르기로 고생한다. 용기를 내어 음식을 만들어 보자. 잘못되면 버리면 되고 다시 만들면 된다. 얼마든지 하면 된다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좀 더 건강하게 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풍경은 옛 풍경이 좋고 먹거리도 옛 먹거리가 좋은 것은 내 추억과 정겨운 벗들과 이웃이 함께 생각나기 때문이리라. 물이 맑고 깨끗해 봉황이 나타나서 먹고 간다는 가잿골 샘물은 상암동의 월드컵 2단지 아파트 땅밑을 흐르고 있고, 용마(龍馬)가 나왔다는 ‘용모출이’는 아파트 3단지가 되었다. 우리들이 늙어 기억이 없어지면 겨드랑이에 돋아난 날개를 잃고 하늘로 간 소년 장수도 영영 사라지리라.   

   

  음식을 먹으며 새롭게 쓰여질 우리들의 추억을 위하여 오늘도 집밥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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