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솔로 힙합 아티스트 최초 플래티넘 달성으로 힙합에 없던 전례가 되다
미래에, 정확히 얘기하자면 2018년에 미국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Songwriter Hall of Fame) 입성하게 될 정도로 유망한 신예 프로듀서이자 힙합 레이블 So So Def의 설립자인 Jermaine Dupri는 망설였다. 힙합 듀오 Kris Kross는 1993년 시카고 투어 후 Jermaine에게 So So Def에 새로 영입할 아티스트를 추천해 왔다. 이름은 Shawntae Harris, 19살. Kris Kross 콘서트를 보러 왔다가 지루한 관객들을 달래기 위해 진행한 힙합 콘테스트에서 $50의 상금을 거머쥐었고, Kris Kross는 그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1990년대는 힙합 황금기라고 (Hip Hop Golden Age) 불릴 만큼 미국에서 힙합이 대중음악으로서의 입지를 닦음과 동시에 음악적인 스타일도 격변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진동하는 힙합계일지라도 여성 MC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전무했다. 때문에 성공가도를 달리던 Jermaine는 여성 MC를 영입하면서 큰 투자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Shawntae Harris, 아니 아티스트로서의 Shawntae, 즉 Da Brat은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Da Brat을 소개할 때의 가장 좋은 명목은 Da Brat이 여성 솔로 힙합 아티스트 최초로 플래티넘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Da Brat의 첫 앨범인 Funkdafied가 플래티넘을 달성한 것이 1994년인데, 이 전에 이 수준의 대중적 성공을 거둔 여성 MC는 전설적인 힙합 그룹 Salt-N-Pepa 뿐이었다. 힙합이 탄생한 80년대부터 성공한 MC들은 모두 남성임을 고려했을 때, Da Brat이 오직 데뷔 앨범만으로 플래티넘을 달성했다는 것은 실로 기록적인 성과이다.
그럼 도대체 Da Brat은 누구일까.
나는 사실주의자이다. (I am a realist.)
Da Brat은 사실주의 MC이다. 아니, 적어도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한다. 단, 이 사실주의자의 사실은 다른 MC들이 주목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회구조적 현실이 아닌 Da Brat이 청중과 공유하는 솔직한 공감대에 더 가깝다. Da Brat은 유색인종 비율이 높고 저소득 지역에 속하는 서부 시카고 (Westside Chicago) 출신에, 가스펠을 좋아하는 할머니와 교회를 다니며 드럼을 배우고 시와 힙합을 즐기며 아티스트를 꿈꿨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다른 아이들은 장난감이나 인형을 받고 기뻐할 때, Shawntae는 키보드와 드럼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아깝지도 않게 좌절된 크리스마스 소원과 버릇없는 녀석이라는 뜻의 Brat이라는 별명, 그리고 음악에 대한 갈증이다. 이런 Shawntae가 자라 Da Brat이 되었을 때 대중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은 음악, 그리고 음악을 동반한 즐거움이라는 보편적 공감대이다.
Da Brat에게 데뷔와 동시에 성공을 가져다준 Funkdafied가 바로 이런 음악이다. 힙합의 서브 장르인 G-Funk, Gangsta Funk*로 분류되는 이 곡은 일단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역동적인 리듬과 사운드를 의미하는 funky와 ‘~해지다’라는 의미의 어미인 -dafied가 결합된 합성어인데 뜻은 분명하지 않다 번역하기도 애매하다. 대충 흥이 너무 올라 그루브와 하나 된, 혹은 그것에 취한 상태를 뜻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오묘한 제목조차 너무 펑키하다는 것이고, Da Brat의 이 펑키함과 funkdafied 된 상태는 음악의 펑크를 느낄 때 비로소 이해를 넘어서 체험할 수 있다.
곡의 내용이라 할 것도 없다. Da Brat의 데뷔 곡인 만큼 So So Def 소속 MC인 스스로를 가감 없이 소개하면서 그 정체성 사이에 그루브를, 그루브 사이에 정체성을 여유롭게 쌓아 올려 간다.
Open up, open up
And let the funk flow in
It's the ghetto ass bitch and I'm So So Def
Them calls me funkdafied, funkalistic, vocalistic
뮤비는 심지어 더하다.
파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는 서사가 빠지고 그 공간을 그루브가 메꾼다. 핑크색 달마티안 코트를 두른 파티의 제사장은 현장의 형제자매들을 펑크의 절정으로 이끌고 파티의 시작을 선언한다. 춤을 추며 즐길 수만 있다면 누구든 환영이다. 몸에 딱 달라붙는 배꼽티, 아프로 헤어, 나팔바지가 부딪히며 흥을 내는 파티장에는 심지어 Da Brat의 엄마도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다. 사실주의자 MC Da Brat은 파티의 향락을 노래하며 화면 너머의 우리와 함께한다.
Da Brat의 성공적인 데뷔가 이례적인 이유는 그가 여성 MC이기 때문이다. Da Brat이 데뷔하기 전에도 많은 래퍼들이 플래티넘을 기록했지만 모두 남성이었고, 힙합이라는 장르와 산업 자체는 그때부터 여성을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고 차별하는 경향이 짙었다. 따라서 90년대에 여성 MC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경우는 정말 손에 꼽는다.
울창하고 빽빽한 숲 속의 고립이다. 이렇게 험난한 힙합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여성 MC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 MC로 묶여 ‘남성’ MC와 비교되고 그들은 항상 서로가 서로의 비교치가 되었다. 인터뷰를 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 질문이 바로 그 증거이다.
지금 활동하는 여성 MC들끼리 사이는 어떤가요? (How are the vibes between all the female rapper out there?)
여기에 Da Brat은 여성 MC로서의 어려움보다는 여성 MC이기 때문에 점하는 우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힙합에서 MC들 사이의 디스전이나 불화는 중요한 문화이자 현상이다. 실제로 90년대 힙합씬은 MC들이 속한 갱단 간의 전쟁과 더불어 동부와 서부 힙합 간의 견제로 인해 초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분열은 사치다. 여성 MC들은 수는 적었지만 그래서 더욱이 뭉쳤고 연대를 형성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여성 MC라고 해서 서로 다 비슷하거나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 사진 속 네 명의 MC들이 바로 정글의 생존자들인데, 넷과 함께한 엘르 인터뷰 영상의 첫 일분만 봐도 그들의 스타일이 얼마나 다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Lil Kim은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반면 Da Brat은 데뷔 초부터 여자 Snoop Doggy Dog 스타일을 고수했다. (이렇게 넓은 여성 MC들의 스펙트럼은 다음에 한번 다루겠다.) 언론은 남성 MC들로 가득한 힙합씬이 늘 그렇듯 여성 MC들도 당연히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네 힙합 아이콘은 다르기에 존중하고 같기에 하나 되었다.
Da Brat이 공공연하게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을 알고 Jermaine의 망설임을 생각해 보면 그 무의미함을 두고 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민은 진심이었다. 90년대에 여성 MC의 랩은 숨어 들어야 했다.
그 누구도 여자들이 랩 하는 걸 듣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건 그냥 쿨하지 않았어요. (No guys wanted to get caught listening to female rapping. It was just not cool.)
그런데 Da Brat이 등장했고 더 이상 미국 힙합씬은 전과 같을 수 없다. 여성 MC도 쿨하다고? 아니. 여성 MC는 쿨하다.
*Gangsta Funk는 90년대 갱단 활동이 활발한 미국 서부 지역, 특히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장르이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Snoop Dogg, Dr. Dre, Ice Cube 등이 있다.
참고 자료 및 출처
- https://variety.com/2020/music/features/da-brat-coming-out-dish-nation-1234623270/
- https://www.youtube.com/watch?v=QTx7DwL9Chs&ab_channel=thepostarchive
- https://www.pinterest.com/pin/390335492704392308/
- https://en.wikipedia.org/wiki/Funkdafied#/media/File:Funkdafiedlarg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