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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번째 행인 Mar 07. 2021

콩나물을 키웠더니

Day 4~Day 5

글 시작 전 박수와 함성! 소리 질러~ 예~~~!

3월 3일 새벽 시작된 콩나물 키우기. 3일 밤 일부 콩이 발아를 시작했고, 그렇게 매일 눈에 띄는 성장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요 며칠 이 작은 생명체들 덕에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아니 뚜껑 열 때마다 다르게 쑥쑥 잘 커 준 콩나물. 이 일기를 쓰는 지금은 7일 새벽 1시다. 오늘 아침, 아니면 저녁으로 콩나물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재배기 아래, 다른 콩들에 깔려 있던 아이들은 아직 더 커야 하지만, 위층에는 벌써 내 가운뎃손가락 길이보다 긴 나물이들이 많다. 일부는 갈색으로 변하고 있어 위층의 콩나물은 ‘수확’을 해야 할 것 같다.




버리려던 플라스틱 그릇, 네가 생명을 키웠다


잘 자라준 콩들도 대견하지만, ‘버려질 것’이었던 플라스틱 배달 용기가 이렇게 누군가의 좋은 성장 터로 역할을 해준 게 더 기특하고 감동적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새벽 갬성인겐가.)


콩들의 좋은 모판이 되어준 플라스틱 배달 용기. 검은색이라 햇빛 차단도 되고 깊이도 적당했다. 다음 농사도 잘 부탁한다.


이번 콩나물 키우기는 사실 ‘에너지 분산’을 위한 나의 최소한의 몸부림으로부터 시작됐다. 최근 이런저런 고민에 혼자 마음의 땅굴을 파고드는 날이 많았다. 코로나 탓에 내 주의와 에너지를 분산시킬 외부 활동이 이전만 못하다 보니 회사에서 생긴 일이 그 날 나의 모든 시간과 감정을 쥐고 흔들었다. “안돼! 정신 차려!” 뭐든 해보자는 마음만 먹고 있던 내게 ‘콩나물 재배’라는 빛나는 영감을 안겨준 게 바로 족발집 플라스틱 포장용기다. 너는 내게 따뜻한 보쌈 고기를 담아다 주고, 지금은 나의 나물들의 ‘촉촉한 안식처’가 되어주었구나.



이런 사람 키워보소


뭔가에 지쳐서 억지로 다른 데 신경을 쏟고 싶은 사람, 심심해서 뭐든 해보고 싶은 사람, 그런데 끈기 있게 해 볼 자신은 없고, 신경을 30% 이상 쏟기 어려울 것 같은 사람 손! 그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콩나물 키우기’를 검색하십시오. 플라스틱 용기 외에도 주전자, 구멍 뚫린 소쿠리, 야채나 삶은 국수 물기 뺄 때 쓰는 채(이름을 모르겠다), 우유 팩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재배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집에 아이가 있다면 함께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 키워서 국 끓여 먹는 게 동심 파괴이려나…


지난 5일간 콩의 변화. 마지막 사진 왼쪽의 붉은색 동그라미는 재배기 측면 모서리에 추가로 뚫은(가위로 잘랐다) 배수구다.


키울 때 이건 참고하소


나처럼 재배용기 바닥에 수분 보충용 천을 깔았다면 콩들이 자라날수록 물이 잘 빠지지 않게 된다. 물이 안 빠지면 바닥의 콩과 콩나물 줄기가 썩는다. 그래서 나는 용기 옆 모서리에 물구멍을 따로 내  못 빠져나간 물들을 따로 따라 버렸다.


콩이 자라면서 콩 껍질이 벗겨지는데 이것도 보일 때마다 재배기에서 꺼내서 버려주시라. 이 껍질들도 줄기를 썩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이 일기 아직 안 끝났다


3일 시작해서(콩은 2일 밤에 불렸다) 7일까지 5일간 내게 기쁨과 뿌듯함을 안겨준 콩나물 키우기. 다음엔 환경(온도, 물 주는 시간)을 바꿔가며 또 한 번 즐겁게 키워보고 싶다. 이러다 클래식 음악 들려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허허. 


아직 이 일기는 끝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콩나물 요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메뉴는 뭘로 할까.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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