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Nov 11. 2023

달을 찾아가는 나에게 (이병률의 혼자가 혼자에게 읽고)




OO아, 안녕!

육십 평생 처음으로 다정하게 불러보는 이름이다.

이렇게 부르는 것도 꽤 기분이 괜찮구나!


나는 그동안 눈앞의 무엇인가 계획을 세워 놓아야만 마음이 편안했어.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려면 먼저 죄책감이 생겼거든.  

젊어서는 일하느라 바빴고, 나이 들어 퇴직해서도 내 앞에 일은 언제나 명분을 달고 기다리고 있더라. 사실은 그것 모두 내가 벌여놓은 일인지, 나는 알지?

내 앞에 뭔가 그득하게 일을 만들어 놓아야만 안심이 되었던 것 같아.

참 별나지!

내 몸도 아껴가며 느릿느릿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매번 이렇게 허둥대네.

그러니 당연히 허당 짓을 잘한다.

조심해야겠어.



나는 팔 남매 중 넷째야. 어떨 땐 우리 가족 구성원이 열세 명일 때도 있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생각만으로도 아련하고 목이 멘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투쟁이었지. 

내 일은 스스로 챙겨야 했어. 

누구도 챙겨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 기대하지 않았고 철이 빨리 들었나 봐.

그렇다고 내가 홀대받으며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아. 

딸인데도 부모님께 인정받으며 살아왔던 것 같아. 

다행히 학교 다닐 땐 공부를 잘했지.

공부 욕심이 있었어.

1등 하면 내 어깨가 으쓱 올라가고 부모님 얼굴에도 함박꽃이 피었으니까.



그런 결핍의 순간, 경험들이 지금도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서 바쁘게 종종걸음 치게 한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내가 지치고 힘든 기운에 빨려 들어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야. 

여전히 의연하게 내 인생의 방향키를 내 손으로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다는 것이 참 대견해.

이런 에너지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은 글쓰기 동아리 활동과 골프나 라인댄스 같은 운동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바빠도 운동은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연습하러 골프 학교에 간다고 말해. 

그렇다고 골프를 잘하지 못해. 때론 가기 싫어. 

그래도 이 나이에 운동할 수 있는 여건에 감사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많이 웃을 수 있다며 내 뇌를 속이고 있지. 

남편은 땡땡이치려면서 왜 골프 학교에 가냐고 핀잔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커뮤니티가 구성되어 있어서 가족처럼 환대해 주는 친구와 동생들이 있어. 그곳에 출석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안해. 그들과 어울리다 보면 종종 안 풀렸던 글 타래도 풀 수 있어서 좋아!  

요즘 손주들이 아파서 그곳도 못 갈 때가 많아져 아쉽네.

언제부턴가 글을 쓰는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 자리를 답보하는 듯해 답답해.

사유의 폭을 넓혀 새로운 틀을 만들고 싶어. 

나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어.   



OO아!

나도 참 없는 재능을 그러모아 특별한 결과물은 없는데도 꾸준히 준비하는 거 보면 대단해. 그렇게 꾸준히 글 쓰는 태도는 결과가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믿음을 준다.

인간의 뇌는 경험보다 생각이 지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반지름을 길게 만들어 더 큰 원을 그리고 싶어.

내 글 쓰는 루틴을 만들고 큰 원 안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담고 사유의 폭을 넓히고 싶다.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여러 가지 맛의 초콜릿이 담겨있는 상자처럼 우리 인생의 색깔은 다를 수 있지만,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모두 비슷하게 짊어지고 간다. 언제 어떤 초콜릿을 먼저 꺼내 먹느냐의 차이일 뿐 모든 인생에는 똑같이 희로애락이 담겨있다.”라고 하더라. 이 글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됐어. 

난 금수저가 아니라 완전 흙수저니까,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니 덜 억울하고 기분이 좋더라고.

자기 길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생각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고.

외로움도 우울함도 결국은 나 자신이 만든다고.

스스로가 좋은 길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우리에겐 길을 바꿀 능력이 있다고 되뇌고 있어.


나는 딸만 둘이야. 지금은 작은딸 남매를 돌보고 있어.

단지 손주만 돌보고 있다면 여기저기 산재해 눈에 띄는 딸네 집안일을 하느라 

쉽게 나의 루틴이나 생활이 무너져 버렸을 거야.

나는 손주 돌보는 일과 내 취미 생활에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손주가 아프거나 꼭 필요한 일은 적극적인 자세로 도와줘야 한다는 지론은 확고해.


골프, 라인댄스 같은 운동과 글쓰기 동아리 활동을 함으로써 또 다른 나만의 에너지를 만들어 간다. 인생의 허무함과 우울감 느끼지 않고 탄력적으로 시간 활용하려고 애쓰고 있어. 얼굴도 근육이므로 자주 짓는 습관으로 표정이 생긴데. 내가 무슨 표정을 지으며 사는지 의식적으로 점검하고, 그래서 웃는 낯으로 손주들과 잘 논다.


물론 손주들과 생활은 힘들 때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때도 많아. 

하지만 집에 와서 남편에게 하루 일과를 말할 때 그날 일을 생각하며 실실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손주 돌보며 받은 에너지는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 

내면의 이야기가 풍부하고 연륜이 만들어 낸 우아함과 여유가 깃든 글을 쓰고 싶어.

흥 많은 할머니의 신나는 육아 일기와 취미 부자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무난하게 유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두 가지 루틴은 나에게 상생의 에너지를 주거든. 

현재 내 삶의 중요한 두 개의 끈을 놓치지 않고 유지하려고 굉장히 애쓰고 있어.


성공도 습관이래.

비슷한 모양의 작은 습관들이 모이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데.

물론 노력한다고 다 성공할 수는 없지.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치열하게 노력했다는 걸 알고 있어. 나는 ‘액티브 시니어의 인간적인 관심사가 무엇일까?’ 사유하고 있으며, 뭐라도 해야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글을 쓰고 책을 내려고 하고 있어.


OO아!

나 꽤 잘살고 있지 않니?

나름 계획적으로 살고 있어.

물론 엄청 힘들긴 해, 하지만 그런 일들은 누가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고 있어서 더 만족스러워.


OO아!

한 번 부르고 나니 자꾸 부르고 싶고 정겹네!

몇십 년 후에도 이렇게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고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게 목표야.

그랬으면 좋겠어.

여고 시절 왕복 4시간씩 걸리는 기차 통학하면서도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3년 개근상 받은 성실성은 인정하지? 그 성실성으로 나에게 주어진 아니 내가 만들어 가는 일을 쭉 이끌어갈 계획이야.




오늘 나를 이렇게 대하니 새롭다. 

지금껏 나를 소중하게 돌아본 적이 드물어서 미안하네.

종종 이런 글을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서툴기만 한 우리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