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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Nov 21. 2023

 아빠는  마법사


코로나가 극심했고 많은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손녀는 배변 훈련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어린이집이 재미없다고 해서 제3 양육자인 할머니는 걱정이 많았다.  배변 훈련 스트레스로 변비까지 생기니 부쩍 떼가 늘었다. 게다가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대성통곡을 할 땐 대략 난감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나는 애가 타서 내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 어린이집엔 또래 친구가 없고 한 살 아래 남자만 네 명 있었다. 딱 한 명 있던 여자 친구가 오늘부터 다른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다. 우리 손녀 분명히 그것까진 세세히 모를 텐데. 오늘 뜬금없이 어린이집을 안 가고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손녀도 다른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는 말인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딸은 손녀가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면 적응하기 어려울 거라 판단하고 이동하는 것을 머뭇거렸는데. 오늘 당장 어린이집 가면 단짝 친구가 안 올 텐데.

‘울 손녀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클까?’ 생각하니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후회스럽고

목이 멘다. 다행히 떼쓰는 아이를 달래다 보니 그녀가 말한 다른 곳은 키즈 카페였다.

주말에 아빠랑 처음으로 버스 타고 가서 놀았던 키즈 카페가 인상적이었고 아빠랑 함께한 시간, 공간이 정말 좋았었나 보다.


코로나로 재택 근무하는 울 사위, 그 말을 듣고 딸 방에 들어가서 조곤조곤 그 카페에 다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준다. 3살 딸에게 오늘부터 울지 않고 3번만 어린이집 가면 주말에 아빠랑 버스 타고 그 키즈 카페에 다시 갈 수 있다고 달력 보며 확인시켜 줬다.

손녀는 안심하고 옷 입고 퉁퉁 부은 얼굴로 어린이집에 갔다.

가끔 손녀가 떼쓸 때 사위는 조곤조곤 그녀가 원하는 방법을 대화로 찾아나간다.

그럴 땐, 나는 가만히 다른 곳으로 피한다.


딸은 친정어머니한테 손녀를 봐달라며 우리 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다.

사실 어제도 손녀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병원 가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병원에 다녀왔다.

어린이집은 우리 집이 있는 같은 동 1층에 있다. 병원 다녀온 뒤로 손녀는 어린이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휘익 방향을 할머니 집으로 틀었다.

하루 종일 할머니 집, 자기 집 돌아가며 노는데 지루해서 저도 할머니도 너무 힘들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는 좍좍 내리고 밖에 나가서 좋아하는 킥보드도 머리카락 휙휙 휘날리며 못 타니 안달이 났다. 결국 오후엔 빗속에 킥보드를 타면서 우리는 “아이 추워, 아이 추워”를 연발하며 들어왔다.

그렇게라도 콧바람을 쏘니 한결 나아졌다.


 손녀를 가만히 관찰하면 참 재밌는 그녀만의 루틴이 있다.

아침 먹고 한참 쉬다가 플레이도우 놀이, 뽀로로 인형 놀이, 콩순이 보기를 한다.

그러다 시곗바늘이 크롱을 가리키면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한다. ‘그녀 몸과 마음에 리듬이라도 있는 건지?’ 조급함에 조금이라도 빠른 시간에 옷을 입히거나 다른 무언가로 손녀 루틴에 어긋나면 난리가 난다.

오늘 아침도 며칠간 머리를 감지 못해서 아빠가 시원하게 샤워하고 어린이집 가자고 한 것까지는 허락했다. 그런데 샤워 후 잠옷을 안 입히고 바로 어린이집 갈 외출복 입혔다고 어린이집 안 간다며 얼굴이 빨개져 우는데 맘이 너~~ 무 아프다.

아무튼 껄껄껄 호탕하게 소리 내어 웃는 게 어색한 사위.

어떨 땐 화난 얼굴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무표정해 보이는 사위.

하지만 장인 얼굴 뵌 지 오래됐다며 퇴근길에 직접 삼계탕을 사 와서 장인과 대화도 한다.

조곤조곤 나긋나긋하게 신나서 말하는 장인 말씀에 맞장구도 칠 줄 안다.


“다정함이 살아남는다.”라고 한다. 특히 가족 간에, 인간관계에서도.

사위는 손녀가 떼쓸 때는 전혀 소리 지르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다정다감한 아빠다.

“목소리에는 달콤함, 쓸쓸함, 시원함과 저릿함 등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

어떤 목소리는 물러서게 하고, 어떤 목소리는 다가서게 한다.”라고 한다.

오늘도 손녀는 어린이집 끝나고 “아빠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재택근무하고 있던 사위는 두 팔 벌려 손녀를 반긴다. 얼른 딸 손을 잡고 빨간색 볼펜으로 달력을 펴 보이며 함께 오늘 날짜에 X 표를 한다. 이제 울지 않고 두 번만 더 어린이집 가면 아빠랑 같이 또 키즈 카페 갈 수 있다고 확인해 주는 아빠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신뢰, 강한 믿음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의 믿음은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섬세한 사위의 마음씀은 손녀 마음에 얼마나 아빠를 찐하게 신뢰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녀간에 이루어지는 행동 하나하나가 믿음직스럽고 편안하며 참 좋다.

울 손녀의 매직을 풀어주는 아빠 마법사.

유정아!

이 할머니는 그런 아빠를 둔 우리 손녀 황 유정이 차~~ 암  부럽다.


놀이터와 할머니집 베란다에 꽃밭을 도망쳐 나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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