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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향처럼 진해진 하루

by 진향림 최윤순



“와, 이렇게 예쁘게 표고버섯을 탑처럼 쌓으니 꼭 피라미드 같아요. 무엇인가 건축 구조 방식에 따라 쌓은 것처럼 달라 보여요. 예술가신데요!”

아파트 옆, 폭이 넓은 가로수 길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던 그곳에서 나는 버섯 탑 옆에 놓인 두 개의 바구니를 유심히 바라봤다. “이쪽 바구니는 만 원, 저쪽 꽃 표고버섯은 만 오천 원이에요. 꽃표고를 사시면 오이고추를 덤으로 드릴게요. 이 버섯은 향도 맛도 육질도 좋아서 고급 요리에 많이 쓰여요.”

나는 만 오천 원짜리 바구니를 골랐다.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무늬가 잘 드러나도록 정성껏 쌓아둔 버섯을 담아 주었다.



“아저씨, 그냥 큰 박스에 있는 것으로 담아주셔도 돼요. 왜 공들여 쌓아 놓은 걸 팔아요? 다시 쌓기 힘들잖아요.”

“아니에요. 이렇게 쌓는 게 은근히 재미있어요. 작품을 만드는 기분도 들고, 몰입하다 보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예쁘게 해 둔 걸 드려야죠. 저는 다시 쌓으면 됩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분은 지나가는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창작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낫겠지. 자기 일을 즐겁게 찾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물건을 사는 사람의 마음까지 기분 좋게 만드니까. 상품을 파는데도 이렇게 마음의 자세가 다르구나! 집에 돌아와 향이 좋고 육질도 단단한 표고버섯으로 요리하니 진한 향이 머릿속까지 퍼졌다.




무더운 8월이었다. 나는 열대야와 불면증으로 매우 지쳐있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니 발걸음까지 한결 가벼워졌다. 이것저것 사고 전복죽까지 사 들고 온 터라 손은 이미 한가득! 하지만 성심껏 쌓아 놓은 표고버섯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더 사고 싶었지만, 손이 모자라서 한 바구니로 만족했다. 가끔 버스를 타고 아파트 옆 가로수 길을 지나칠 땐, ‘혹시 그 아저씨가 다시 표고버섯을 정성스럽게 쌓고 있지 않을까?’ 고개를 쭉 내밀어 본다. 마음을 다해 버섯을 쌓는 손길, 자기 일에 자부심을 품은 그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 아저씨의 모습은 문득 내 친정 언니를 떠올리게 했다. 언니는 십오 년째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다. 그녀 역시 자기 일을 귀하게 여기며 사시는 분이다.

“언니, 어디야?”

“나 요양하는 집.”

“오늘은 토요일인데 왜 거기 있어? 쉬는 날 아니야?”

“어르신이 요즘 이가 안 좋아서 잘 못 드셔서, 내가 먹으려고 만든 호박죽하고 달걀찜 좀 가져다줬어. 잘 드시네.”

“언니 마음씨는 달덩이야. 보고 있으면 다정하고 편안해. 주말까지 이렇게 챙기다니! 그분은 참 복도 많지. 우리 언니 같은 요양보호사를 만났으니 말이야.”

“동생, 인생이란 게 별거 있니? 모든 건 더하기 빼기야. 내가 잘해주면 누군가 나한테도 잘해주지. 내가 복을 줘야, 복이 오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언니는 늘 “인생은 더하기 빼기야.”라고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선선하다. 긍정의 에너지로 무엇인가 해주는 마음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누구나 편하게 생활하도록 도와주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 그분이 내 언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힘든데도 불구하고 한 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대하는 인생 선배님! 그녀를 보며 느낀다. 특별한 봉사 정신이 없이는, 요양보호사 일을 오래 하기 어렵다는 걸.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주말에 간간이 들러 어르신 상태를 봐 가면서 대처하는 언니의 모습에 매번 감탄한다.




이렇게 세상 곳곳에는 제 일에 중심을 잡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나는 무엇이든 자기 일에 마음을 기울이고, 한 올 한 올 정성을 쌓아가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들은 본인 일을 소중히 여기듯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도 귀히 돌본다. 성심을 다해 사는 사람들은 결국 타인의 존중을 받는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게도 큰 기쁨이다. 그들의 노력과 신념이 가족과 이웃을 살리고, 더 큰 신뢰를 낳으니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깊은 울림을 받고, 나의 삶에도 이런 가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나는 인생에 몰입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살고 있는가? 삶을 얼마나 성실하게 쌓아가고 있는가?’




현재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출퇴근하며 어린 남매를 돌보고 있다. 몸은 힘들지만,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올 땐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 딸이 “할머니 가신다. 인사해야지.” 하면 손주들은 보던 만화를 멈추고 달려와 “안녕히 가세요. 내일 또 만나.” 하며 내 품에 안긴다. 가끔은 강아지처럼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도 장난스럽게 손끝으로 목을 살살 긁어준다. 그러면 해맑게 웃으며 “할머니, 간지러워!” 하며 장난을 건다. “그래, 이 녀석들 덕분에 내가 웃지!” 아이들의 따뜻한 가슴을 품는 순간,

이런 돌봄의 시간 또한, 우리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삶의 작품임을.

언젠가 표고 향처럼 진하게 퍼져나갈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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