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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손주는 늘 귀한 손님입니다

by 진향림 최윤순



저는 황혼 육아 7년 차, 매일 오후 손주들이 있는 집으로 ‘출근’ 하는 할머니입니다.

결혼 전에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했고, 아이들을 키운 후에도 꾸준히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늦은 나이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실시한 영어 회화 전문 강사 선발 시험에 합격해 초등학교에서

영어 전담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큰 기쁨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정년까지는 조금 남아 있었지만, 큰딸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게 된 상황!

아침마다 삼 남매를 챙겨 등원시킬 딸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내 일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멈춰야 할까?’ 고민 끝에 한 걸음 물러서 생각했습니다.

손주 돌봄도 결국은 타이밍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손주 돌보는 일이 더 보람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저는 조금 일찍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그 결정은 제 인생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큰딸 삼 남매를 돌보다가 지금은 작은딸 남매를 돌보고 있습니다.

운전이 서툴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여전히 ‘출퇴근’을 합니다.

저는 퇴직자가 아니라, 여전히 ‘현역’입니다.




작은사위가 유연근무제로 남매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저는 오후 2시쯤 딸 집에 도착합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학원 픽업을 하고, 간식을 챙겨줍니다.

그리고 딸이 퇴근할 때까지 함께 놀며 하루를 보냅니다. 딸이 돌아오면 손주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퇴근합니다. 갈 곳이 있다는 것, 돌봐야 할 손주가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자 큰 행복입니다.


우리 딸들 키울 때는 ‘다른 애들보다 더 잘 자랐으면, 더 건강하고 똑똑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무한히 줄 수 있는 손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그저 평범하게 커 주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지!



엄마로서의 육아는 몹시 외롭고 고단했습니다.

1980년대의 독박 육아는 몸도 마음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죠.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자녀들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는

동료 교사들을 보며 다짐했습니다. ‘내 딸들이 일할 때는 내가 손주를 돌봐야지.’

그렇게 실천할 기회가 내게 온 것이 감사합니다.


게다가 손주들은 매일 새로운 글감을 선물해 줍니다.

다섯 손주가 5대 1로 던져주는 사건과 에피소드에 둘러싸여 하루하루 웃고 울며, 행복하게 글을 씁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제게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운동으로는 몸의 근육을, 글쓰기로는 마음의 근육을 튼튼히 붙들고 있습니다.

손주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동네 어린이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손주를 향한 다정한 눈빛이 어느새 이웃 아이들에게도 머뭅니다.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고 따뜻한 눈 맞춤과 다정한 말을 건넵니다. 손주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가슴 철렁한 일도 많지요. 하지만 그들이 주는 웃음, 한마디 말, 감동의 순간들이 저에게는 즐거움이고 큰 보람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면 제 마음도 어느새 말랑말랑해집니다.

이 책은 그런 손주들과의 일상. 기쁨과 놀람,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하루하루를 담았습니다.




출산을 앞둔 부모와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

지금 막 육아를 시작한 엄마 아빠,

늦은 나이에 손주 돌봄을 맡은 조부모님들.

그리고 내 아이, 네 아이 구분하지 않고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하길

다정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이웃들에게-

이 책이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되길 바랍니다.



‘아하,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육아를 바라보는 할머니도 있구나!

육아가 꼭 힘든 것만은 아니네. 이런 즐거움도 있다고!’

세대가 서로 위로받고,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의 ‘놀이판’ 위에 올라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흥 많은 할머니가 쓴 조금은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한 판! 이제 그 문을 열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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