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이름의 돌덩이
“대표님—”
처음 그 이름으로 불렸을 땐,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그럴듯한 말투와 함께 따라붙는 그 호칭이 낯설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젠 ‘대표님’이라는 이름이 내 이름 석자보다 더 자주 불린다.
조부께서 정성껏 지어주신 내 본래 이름보다도 더.
그래서일까, ‘대표님’이라는 말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은 또 하나의 이름표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체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느 날은 ‘책임’이라는 이름의 돌덩이로, 또 어느 날은 ‘불확실성’이라는 안개로 다가왔다.
직원이 퇴사 통보를 하고 나간 날엔, 밤새 잠을 설쳤다.
세금 신고 마감일에 숫자가 맞지 않아 등골이 서늘해졌던 날도 있었다.
심지어 단골 거래처의 외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돌아서서,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울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는다.
“대표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문득 고은 시인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한 사람이 가는 길이 바로 역사가 된다.”
그 말이 주는 울림이 달라진다.
대표란, 결국 내가 먼저 걸어야 하는 사람.
조금 앞서, 조금 더 버티고, 조금 더 책임져야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조금씩’이 쌓여 결국 모두를 위한 길이 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어깨를 누르던 ‘대표님’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건 짐이 아니라 깃털이었다.
춤을 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볍고 빛나는 날개의 깃털.
어느 날, 중요한 회의 자리에서 의견을 발표해야 했다.
피곤하고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을 이어가던 그때,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한 팀원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엔 말없이 전해지는 응원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
그 따뜻한 시선 하나가 나를 끝까지 버티게 했다.
나는 여전히 ‘대표님’이라는 이름이 무겁다.
그 무게는 매일 조금씩 내 어깨를 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는 바람처럼 가볍게,
공작의 깃털처럼 빛나게,
날개를 펼쳐 춤추고 싶다.
그 춤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서툰 춤이라도, 내가 진심으로 추는 춤이라면
분명 누군가의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대표님’이라는 이름으로 산다.
그 이름 안에 담긴 수많은 날들과 마음들을 안고,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