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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Sep 17. 2024

<무도실무관> 아는 것 만으로는 힘이 없다.

"세 달 전에, 나는 전자 발찌가 뭔지도 잘 몰랐어. 근데 이제는 다 알아. 너무 많이 알아. 내가 배운 걸 잊을 수가 없어." 우연한 계기로 무도실무관이 된 김우빈(극 중 이정도)은 연쇄아동성폭행범을 잡으러 가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범죄 현장에서 아이를 구하다 칼에 찔려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는 그를 막지 못한다. "이제 나 응원해 줘."라는 아들의 말에 "몸 조심 해."라고 말할 뿐이다.


나는 아버지와 저녁을 먹으려고 차를 타고 나섰다.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했다. 그럼에도 난 창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물었다. "닌 덥도 안 하나?" 나는 "왜 안 덥겠노."라고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기후위기 관련 일장연설을 늘여 놓았다. 한참을 듣던 아버지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덥지 않냐며 넋두리를 했다. 어릴 때는 가만히 있으면 덥지 않다던 아버지였는데, 해도 너무한 날씨 앞에서 한계를 넘었구나 생각했다.

ⓒ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기억 of 고요한. All right reserved.

나는 몸에 열이 많아서 추위를 안타지만, 더위에는 취약하다. "자꾸 덥다, 덥다 말하면 더 덥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어렸을 때 어른이었던 아버지의 말을 따라 하고, 아버지가 더위를 참지 못해 칭얼대는 것을 보니 내 나이가 들었음을 느낄 때였다. "재용아, 누가 보면 차에 에어컨도 안 나오는 줄 알겠네. 세상 모든 것을 니 혼자서 바꿀 수 없다."


여름에 최대한 에어컨도 안 틀고 버티며, 하루 두 끼를 먹으니 절반이라도 줄여보겠다며 점심에는 비건식으로 바꾸고, 아버지 집에 와서 분리 배출 할 때 플라스틱 용기를 제대로 씻었는지 검사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나 보다. 나는 아버지에게 답했다. "나도 알아. 그런데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사회 변화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사회 변화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말로만 변화를 외치고 실제로는 기후 위기를 심화하는 행동을 할 수는 없다 아이가.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더라."


"그것도 그렇네." 아버지는 나의 행동을 지지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여름의 저녁에 창문을 열고서 저녁 먹으러 갔다. 물론 나도 절대 에어컨을 못 켜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에어컨을 켜지만, 되도록이면 참을 수 있는 상황까지는 참는다. 내가 에어컨을 켜서 시원함을 느끼려면, 누군가는 뜨거운 여름 날씨에 내가 포기한 더위까지 더한 고통을 감내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통나무를 들고 있는데, 팔 아프다고 나 혼자 팔에 힘을 뺄 수는 없는 것이다.

ⓒ 침착맨. All right reserved.

유튜버 침착맨은 LG에 새로운 가전제품 아이디어를 주겠다며 웨어러블 에어컨과 실외기, 태양전지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렸다.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리며 재미를 전달했지만, 사실 누군가 웨어러블 에어컨을 착용한다면 누군가는 웨어러블 실외기로 고통받아야만 한다. 에어컨을 직접 사람이 들고 다니지 않을 뿐이지, 이미 이것은 전 지구적으로 실행 중이다. 그래서 나는 차마 웃지 못했고, 이 영상이 블랙코미디처럼만 느껴졌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단순히 아는 것, 자체만으로 힘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힘이 없고, 행동할 때야 비로소 힘이 생긴다. 영화 초반에는 주인공이 단순 쾌락만을 추구한다. 보호관찰관이 무도실무관 일을 해보지 않겠냐 제안했을 때도, "근데 이게 재밌나요? 제가 재밌는 게 중요해서요."라고 답할 정도다.


하지만 무도실무관 일을 하면서 세상을 위협하는 범죄에 자신이 쓰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 행동하려 한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악마 같은 새끼가 다른 애를 다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 [...] 지금 순간에도 살짜리 여자애가 벌벌 떨면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 아빠. 모르면 상관없는데, 근데 이제 내가 아는 어떻게 가만히 있어."


아는 것, 즉 지식을 얻기에 너무도 좋은 세상이다. 각 분야가 세분화되면서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다. 전문가까지 필요 없기도 하다. 궁금한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 일 분 안에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단 일 분의 시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닌, 아는 것을 행동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자신의 무도 실력을 활용했다. 하지만 행동에는 꼭 무도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술 없이 단순히 더위를 참는 것도, 불편함을 감내하고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것도, 사회 변화 글쓰기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혼자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혁신적인 기술이라기보다 묵묵함이나 꾸준함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무도실무관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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