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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Nov 14. 2024

누구나 1층을 평등하게 누릴 수 없을까?

내일은 아닌, 내 일이 되는

사회복지사인 내가 어쩌면 평생 되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면 안갯속을 보듯 막연하기도 하고, 확신할 수 없음에 두렵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그의 앞에서는 명료해 보인다. 이제껏 행동으로 세상을 바꿔온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단법인 무의' 홍윤희 이사장이다. 그의 딸은 이동할 때 휠체어가 필요했고, 딸이 가고 싶은 곳에 쉽게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로 무의는 행동을 시작했다. 9년 동안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모두의 1층', '걸즈온휠즈', '서울 궁 지도'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소행성 지구 충돌로 생물의 지배종이 바뀐 것처럼 세상이 뒤집어진 정도는 아니지만, 휠체어러의 삶은 '무의'로 인해 바뀌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를 보면 나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나는 소위 말해 사회 변화에 전문가이고, 돈을 받는 직업인이고, 사회복지사 동료와 밤새도록 변화에 대해 토론할 만큼 진심인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다양한 가치 판단의 상황에서 변화를 의심하는데, 그의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도 변화를 의심할 테다. 당장 내일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확신할 리 없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장애를 한 번이라도 경험하고 죽음을 맞이할 세대가 된다고 한다. 장애 등록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의료 기술의 발달로 지체나 시각 장애와 같이 줄어드는 장애 유형이 있는 반면에, 청각이나 언어, 지적, 정신적 장애 등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정 유형의 장애를 경험할 수도 있지만, 노화로 신체 일부를 보조 공학기기에 의존하며 살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안경, 지팡이, 휠체어 같은 것 말이다.


내일 당장은 세상이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애가 내 일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남의 일이라면 시급하지 않던 것이 나의 일이 되면 시급해진다. 우리에게 장애가 그럴 것이다. 내일은 까불거리며 뛰어다닐 수 있지만, 머지않아 휠체어를 타면서 테니스를 치는 것이 취미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지극히 보편적 조건을 그는 확실히 아는 듯하다. 어떻게 유추할 수 있냐면, '모두의 1층'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가 같기 때문이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나는 얼마 전에 <모두의 1층, 지속가능한 민관협력 접근성 포럼>에 발표자로서 다녀왔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되뇌던 문장이 있다. '김재용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하지 말자.' 사례발표나 포럼, 콘퍼런스를 다녀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지역에 특수성이나 담당자의 헌신, 다른 곳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기껏 귀한 시간과 수 시간의 이동, 비싼 돈을 내고 온 이유가 순간 사라진다.

모두의 1층, 지속가능한 접근성 민관협력 포럼에서 발표 중

누구나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동네에서 시도해 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다. 문제의식을 갖게 된 이유와 우리 동네의 상황, 물리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주관적인 접근성 확대가 필요한 당위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나의 사례는 우리 동네에서 직접 기획하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행착오를 겪고, 만들어가고 있기에 내 것이 맞다. 하지만 설명과 함께 진행 과정만 공유되면 전국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즉, 내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닌 셈이다. 나의 사례가 모두의 것이기를 바랐다. 패널 발표가 끝나고 나서 몇 사람이 찾아왔다. 잠깐의 쉬는 시간이지만 주관적 접근성에 대해 토의도 하고, 프로젝트를 응원한다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텐데 자신이 법적 자문을 해줄 수 있다며 명함을 건네고 간 사람도 있고, 서면으로라도 인터뷰를 하고 싶다 말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지지하거나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한 포럼이었기에 호의적인 참여자가 많았음은 분명할 테다. 다만 이후 세션까지 마치면서,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이 프로젝트를 내 것 같이 여긴다고 느꼈다. '모두의 1층'은 누구나 1층을 편하게 누릴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다. 당장 내일에는 내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곧 내 것 같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질 때 비로소 내 것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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