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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Feb 26. 2024

아니 근데, 스님 T세요?

Ppaarami’s Diary(35)

2월 5일


  스님을 알게 된 건 지난해 봄, 영월에서였다.

해외봉사단에 선발되어 영월 교육원에 입소한 둘째 날, 교육생들은 교육장에 모여 현지어 강사들과의 첫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20여 명의 현지어 강사들이 입장했다. 아랍어, 우즈베키스탄어, 캄보디아어, 스페인어, 따갈로그어, 인도네시아어, 등등 우리가 파견될 국가의 숫자만큼 많은 강사가 우리들 사이를 지나쳐 강단에 섰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스님이었다. 팔 척 장신에 발목까지 오늘 적색 두루마기 차림인 것으로도 충분했는데 챙이 있는 모자를 썼고 바랑을 메고 계셨다. 누가 봐도 스님인 것 같으면서도 정말 스님일까 싶었다.(스님이 왜 여기에...?) 신분도 신분이거니와 국적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동남아 사람이라고 하기엔 키가 너무 크고 그렇다고 남미 쪽도 아니고 요도 죠도 아닌 생소한 국가라면 거기밖에 없는데.

스리랑카


해외봉사단 국내교육원 시절, 현지어 강사님들과의 첫 대면.




빙고


  스님은 싱할라어를 가르치셨다. 아유보완(안녕하세요). 스뚜띠(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싱할라어 이름을 주셨다. 그렇게 나는 파라미가 되었다. 마게 나머 파라미(내 이름은 파라미입니다.).

  스님은 아동기에 출가했고 켈라니야 대학교를 졸업하신 후 한국으로 유학을 오셨다. 지금은 아산에서 사찰을 운영하며 한국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들을 돕는다. 스리랑카에도 자주 방문하신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러 스리랑카에 입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도 스리랑카에 오셨었다. 그때는 현지 적응교육을 받고 있어서 뵙지 못했다. 얼마 전에 학교사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가 인기척이 나서 고개를 들었는데 스님이 계셨다. 찰나동안 꿈인가 싶었다.  다시 스리랑카에 오신 스님은 모교를 방문하셨고, 나는 스님의 모교에서 교육 봉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움에 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했다. 


  스님의 스리랑카 본거지는 캔디의 한 사찰이다. 스님은 봉사단원들을 사찰에 초대해 주셨다. 오예, 스리랑카에서 템플 스테이라니. 만날천날 같이 쏘다니는 선생님 두 분과 함께 캔디로 갔다. 스님은 우리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재밌는데 구경도 시켜주시고 필요한 물건도 구해주시고 라면도 주셨다. 스님 덕분에 생전 못 먹어본 과일도 먹고(두리안), 스리랑카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배웠고(스리랑카 내전의 원인), 한국의 스리랑카인 사회의 여러 사정도 들었다. 


  스리랑카에서 스님에 대한 대우는 지극하다. 어디든 스님이 오시면 직원들이 깍듯하게 맞이하고 발아래 절을 하고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챙긴다. 그럼 스님이 우리에게는 다정하고 농담도 하시고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애써주셨다. 한국에서는 스님들이 왠지 어려워 말도 붙이지 못했는데 스리랑카에서 스님께 이런 도움을 받을 줄이야.


한 청년이 스님께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했다. 스님은 흔쾌히 응하셨다. 인싸이시다.



  감사한 마음에 스님이 돌아가시는 날 정성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스님,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시죠, 고맙고, 즐거웠고, 남은 기간 열심히 활동하겠고... 한국에서 뵙고 싶고, 잘 돌아가시길 바라고, 어쩌고 저쩌고 구구절절.

  보내고 두어 시간이 지나도록 읽지도 않고 답장도 없길래 벌써 비행기를 타셨나 보다 했다.

  그런데 곧 답장이 왔다.



[아니요, 내일 들어갑니다.]





이 스님, 티 맞죠?


스님,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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