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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rk Nov 29. 2021

사회적 규범을 무시할 용기

나는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초등학생이던 즈음에 주변의 성인 남자들을 보며 나의 미래를 그려본 기억이 있다. 대충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초중고를 나오고, 웬만하면 대학교에 들어가서 중간에 군대를 다녀오고, 전역을 해서 대학교를 마친 다음에 취업 준비를 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여자 친구가 있으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는.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태어난 평범한 남자의 인생이었다. 그 당시에 만약 나의 미래도 이러하다면 인간은 정말 레고 같다고 생각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 모든 과정에 의문이 들었었는데, 가령 나는 왜 초중고를 나와야 하는 것인지, 대학교부터는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에 되어있지 않는데 왜 다들 가야 하는지, 등의 바보 같은 의문들이었다. 물론 그 당시 선생님들 포함 그 어떤 한 명의 어른도 나에게 답을 주지 못했었고, 그나마 들었던 답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무시를 받는다, 취업하지 못한다와 같은 질문의 본질을 오히려 회피하는 식의 답이었다. 오히려 중, 고등학생 때의 답변은 매로 대체되었고 아마 그때부터 나는 맞지 않기 위해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어렸던 잼민이의 질문들이 정말로 바보 같았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혀 바보 같지 않았고, 오히려 어른들이 그런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도 가끔씩 그때 나의 질문이 공부하기 싫어서 잔머리 굴리는 초딩의 꼼수가 아니라, 세상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사회적 관념들에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생각해줬던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내 인생은 꽤나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것이 사회적인 관념이지만, 수많은 나라에서 일하고 여행하며 내가 깨달은 것은, 흔히들 말하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러한 관념들은 대폭 줄어든다. 학벌, 회사, 나이, 종교 등과 같은 많은 예시들 중에서 유럽 와서 문화 충격 제대로 맞았던 결혼을 예로 들자면, 얘네는 생각보다 결혼을 많이 안 한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의 부모님 얘기를 들어봐도, 많이들 법적 부부가 아닌, 굳이 따지면 동거인에 불과하다. 또 결혼을 설령 했다고 한들, 이혼도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한다. 처음에는 이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결혼과 이혼이 갖고 있는 사회적 관념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세분화시켜보자면, 한국에서의 결혼은 마치 누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하지 않으면 당사자는 결혼 적령기 (그런 게 있는 것도 웃기지만)가 되면 주변의 눈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을 한다. 이혼도 이와 비슷하게 만약 하게 된다면 이혼남, 돌싱, 등 이상하리만치 많은 꼬리표들이 붙는다. 하지만 적어도 서/북유럽에선 결혼은 서로가 정말 사랑을 해서 그것을 법적인 서류로 까지 남기고 싶을 때 한다. 그 과정은 당연히 법이 아니기에 대다수는 결혼은 해야 한다던지, 언제 하냐 던 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이혼은 그 반대인 경우에 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꼬리표는 무례한 것이므로, 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만나본 이혼한 유럽 사람들은 본인들의 이혼을 가벼운 조크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리하자면 법이 아닌 것에 행동의 당위성 따위를 먼저 불어넣는 것들은 대부분 하지 않는다.


이런 일련의 것들을 사회적 규범이라고 거창하게 포장을 해 놓았지만, 사실 이것들은 한국의 고질적인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지랖, 눈치, 전체주의, 연고주의 등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억압하고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사회가 규정해 놓은 삶을 살게 하는 것들을 듣기 괜찮은 말들로 포장 -  '사회적 규범이니까' 혹은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에서 비롯된 나라이기 때문에'라는 식의 - 하는 것은 이제 재정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 서울 해야 해. 알겠지?
우리 딸은 공부를 잘하니까 의사가 좋을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엄마 친구 아들은 S전자에 들어갔다던데..


세상에 절대적인 답은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행동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법이 아니라면, 무조건적으로 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그런 것들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어른들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아야 내면적으로 더 건강하고 강한 아이가 되고, 그 강점이 사회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배움의 뜻이 없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대학교에 가서 졸업을 하고, 해야 할지 확신도 안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도 없으나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맞을까? 그전에, 우리에게 그런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할 권한 같은 게 있을까? 레고가 되어서 다른 레고를 낳는 것이 싫다면 (그런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에 최소한 질문 한 번은 던져볼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한 질문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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