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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rk Jan 22. 2022

듣기 좋은 말과 좋은 말

우리는 아프니까 청춘일까, 청춘이기에 아픈 것일까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벌써 10년도 더 넘었) 두발규제라는 게 있었어서, 남자는 무조건 스포츠 스타일? 비슷하게 불리던 반삭을 해야만 했었고, 잘은 기억 안 나지만 여자는 귀밑 3cm까지 기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학교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제의 타당성을 불어넣기 위해서, "학생이 머리가 길면 사상이 불순해지고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들어 밀었었다. 거기다 대고 "미드 보니까 걔네들은 다 머리가 길던데, 그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미 망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했다가 학부한테 정말 사극에서나 보던 죄를 지은 백정처럼 쳐 맞았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하루는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 학교도 두발규제가 있었다) 친구와 밖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다음날 두발 검사를 하는 날인지 이 친구가 미용실에 다녀왔었는데, 정말이지 머리가 너무 별로였다. 그걸 본인도 너무 잘 알지만, 나한테 위로를 받고 싶었을까, 자기 머리가 그래도 괜찮지 않냐고 물어봤었다. 물론 나는 진짜 너무 별로였기에, 정말 별로라고 말해줬다가 한 달 동안 그 친구와 연락이 안 됐었던 기억이 있다. 


Photo by Dushane white on Unsplash


하지만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해프닝이, 나를 규정하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나 지금의 나는, 영양가 없는 듣기 좋은 말보다는 듣기에 조금 아플 수도 있지만 그래도 솔직한 답변이 사람을 발전하게 하는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예쁜 - 꽃이나 동물들 같은 - 것들은 정말 좋아하지만 예쁘게 보이려고 포장된 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혹은, '젊은 사람들이 취업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와 같은 본질은 별로 건드리지 않는 말들에 가슴 뛰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와 비슷한 주제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듣기 좋은 말은 돈이 된다. 취업 박람회 같은 곳에서 '여러분은 아프니까 청춘입니다!'라고 말하는 강연이, '여러분들이 취업이 안 되는 이유는 효율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는 것보다는 훨씬 채택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내가 저런 류의 듣기 좋은 말을 멀리하는 이유 중에 다른 하나는, 자기 위안에 빠지게 해서 마치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는 저 책에서 말하는 대로 x 때문이야
내가 지금 취업이 안되는 것은 저 교수가 말하는 대로 y 때문이야


물론 무언가를 성취해 본 사람은 성취만을 말하고, 그 반대의 사람은 실패만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자기 위안에 빠져 (잠깐의 힐링은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안 하게 되는, 더 정확하게는 내가 아닌 세상의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하기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만 같은, 그런 환경이 나는 더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자기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견고한 가치관이 있다면, 사방에서 돈이 되는 (물론 작가나 강연자에게) 말들을 필터링할 능력이 생긴다.


나에게는 아프니까 청춘도, 청춘이기에 아프지도 않다. 달콤한 말이지만,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다만, 힘든 일이 다가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극복하려는 나의 가치관이 나를 지켜줄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가 머리를 이상하게 잘라오면, 괜찮다고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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