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의 능력주의
나는 단 한 번도 세상이 평등하거나 공평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전 글들에서 몇 번 적었듯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불평등, 불공평, 그리고 불안정하다는 것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아마도 내가 그동안 이뤄낸 것들이 순수하게 나의 노력으로 이뤄낸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서, 또 그렇기에 그러한 세상이라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세상은 이것을 능력주의 (meritocracy)라고 부른다. 능력주의에 대한 글은 다음에 적어보겠다.
그렇다면 평등과 공평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얼핏 들으면 말장난같이 들리고 같은 말 같지만, 유명한 위의 사진에서 보듯 둘의 차이는 명백하다. 평등은 위와 같이 개개인의 특성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받침대를 두고 야구를 보는 것과 같다. 가족 식사로 예를 들면, 4인 가족 (엄마, 아빠, 유아 두 명)이 저녁을 먹는데 엄마 아빠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가 25%의 양을 받고 먹는 것이다. 하지만 공평은, 그 사람의 특성에 맞게 받침대를 더 주고 덜 주면서 - 식사 시간에 성인들이 (당연히) 더 먹고 아이들은 덜 먹으면서 - 형평성 있고 공정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이 두 단어의 개념을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공평은 평등에 비해 적어도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였다. 사람이 셋이기에 1명당 1박스씩 3개를 준비하는 것과, 사람이 셋이기에 + 개개인의 특성을 생각해서 + 그 사람에게 맞는 박스 개수를 주는 것, 쉽게 말해 과정의 복잡함에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요즘 사회에 가장 큰 이슈가 되는 안건을 접해보자.
결과의 평등 (Equality of Outcome)
결과의 평등의 대표적인 예로는 회사의 C-level급 임원진들 (CEO, CTO, 등)의 성별을 남녀 50:50으로 맞추자는 제안이다. 말 그대로 결과가 (임원진들) 성별로 보았을 때 평등해야 (50:50)한다는 주장이다. 내가 있는 네덜란드를 포함해서 실제로 정말 많은 나라들에서 이 안건이 활발하게 논의 중이고, 그와 맞게 찬반이 격렬하게 갈리는 안건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내보자면, 이 주장은 내 기준 거의 미친 수준이다. 개개인의 특성은 완전히 배제시키고 평등에만 몰두하는, 위의 예시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봐도 명백하지만, 두 가지만 추가해보면:
우리가 C급 임원들을 얼마만큼 아는가
언젠가 조던 피터슨의 강의에서, 우리가 언제부터 C급 임원들에게 이렇게나 관심이 많았고 그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주변에 건너 건너서 한 1000명 정도 안다고 한들, 그중에 많아야 1명 정도만이 큰 회사의 임원일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비슷하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보통이 아닌 극소수의 사람들 (다방면으로 너무 뛰어나기에)에게 대다수가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이러한 주장을 하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많이 반문하겠지만, 그렇다면 트럭 운전수들의 성비는 왜 관심이 없는 것인지, 건설업계는, 배관공에게는 왜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 것인지, 아마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져가며 의문을 가지는 게 아닐까 싶다. 미디어에 자주 보이는 직업이기에, 사무실에 앉아있는 직업이기에 더 관심을 가지는 아이러니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다르다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어떠한 직업이건 성비가 극명하게 차이나는 분야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남자는 아무래도 평균적으로 여자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좋아하기에, 대부분의 야외에서 일하는 직업은 남자의 성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여자는 대부분 남자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높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심지어는 많은 나라들에서 의사의 성비도 여자가 높아지고 있다.
한 회사의 임원이 가져야 하는 특성이 10가지라고 한다면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성별'에 상관없이 그 특성을 최고로,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임원이 되면 된다. 그 결과가 통계적으로 남자가 많다면, 그냥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그것이 남자가 더 많다고 인위적으로 여자를 더 뽑는다면, 무조건적으로 성비를 맞추기 위해 병원에서 남자 의사를 더 뽑으라고, 건설업계에서 여자를 더 뽑으라는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결과보다는 과정
제일 처음에 얘기했듯이, 지금의 세상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한다. 하지만 공평이 적어도 나에게 제시하는 점은, 무작정 평등한 결과를 바라는 것보다, 과정이 더 복잡해지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하는 관념의 '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과정의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은, 능력주의와 깊게 관련이 있기에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지만 결과의 평등이라는 개념은 한걸음 물러서서 지금 발생하는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항상 임원들의 성비를 50:50으로 맞추자는 주장을 볼 때마다, 마블의 타노스가 생각난다. (약 스포 주의) 몇 년 전까지 마블 세계관의 최고 빌런이었던 타노스는, 지구에 인구는 점점 증가하지만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자원의 고갈을 막으려고 손가락 튕기는 것 한 번으로 지구 상의 50% 생명체를 사라지게 한다. 해결책이나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을 바라본 참사였다. 우리의 현실에 타노스는 없지만, 세상은 점점 분열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개인의 의견이 중요시되고 최대한 많은 의견을 수렴하려는 세상의 트렌드가, 의도와는 다르게 세상을 더 갈라서게 하는 것 같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