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추천서 말고 입양 추천서
가르치는 제자, 배우는 교사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을 겸손한 교사의 미덕 정도로 알고 썼던 때가 있다. ‘교학상장’이란 말의 의미가 그저 표구된 급훈처럼 공허하게 들렸던 시절 M과의 만남은 그 단어의 실체감이 무엇인지 알게 된 시작이었다. 한 여고에서 27년간 문학을 가르치면서 제자에게 잘 사는 법을 배웠던 행복을 지금부터 자랑질할 생각이다. 이 자랑의 끝에서 우리 공교육의 희망 하나 발견할 수 있기를...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90년대 말 신학기 상담 자료는 개인정보를 까발리는 수준이었다. 호구조사는 기본이고 경제 수준을 상, 중, 하로, 주택 형태를 전세, 자가로, 공부방의 소유 여부까지 표시하는 조사가 정확한 학생 파악이라는 명분 하에 잔인하게 자행됐었다. 지금으로선 엄연한 범죄 행위를, 문제의식 없이 저질렀던 부끄러운 시절이다.
새아빠랑 산다는 얘길 10번째로 해야 하는 3월이 끔찍하다던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 최전선에서 가정사가 특별한 아이들의 신학기 출발을 악몽으로 만드는 성실한 앞잡이였다.
98년 2학년 첫 상담 시간의 M, 꿈을 묻는데 기습적인 가정사 고백으로 나를 당황시켰다.
"아버지는 어릴 때 딴 여자와 바람나서 같이 안 사세요. (정적) 그래서 제 꿈은 행복한 가정을 갖는 거예요."
조그만 입술에서 자기 결혼식에 절대로 아버지를 부르지 않을 거라는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도 흘러나왔다. 오랜 세월의 상처가 겹겹이 만들어낸 증오의 깊이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에 대한 어쭙잖은 연민과 효도를 당부하는 내용으로 상담을 마쳤을 것이다. 그런데 유별나게 발달한 내 눈물샘이 속절없이 가동됐고, 자기 얘기에 그렇게 우는 어른은 처음 봤다던 아이는 다음날부터 교무실을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좋아하는 선생님께 선물을 몰래 갖다 놓던 시절이었다. 스승의 날은 기본, 방학식날,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 종업식날, 생일 등 기념일마다 M은 편지를 빠트리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가르치다 팬심을 들켰을 땐 그 시를 필사한 문학편지가 출근길에 기다리고 있었고, 손수 녹음한 발라드 모음곡의 테이프와 CD는 지금도 가끔 추억을 소환한다. 그 무수한 편지들 중 끝판왕은 다음 해 스승의 날 받은 일기장이었다. 교환 일기가 유행이던 시절, 답장도 없을 나를 데려다가 1년이란 긴 시간 말을 걸었던 기록이 익숙한 필체로 담긴 노트였다. 하지만 솔직히 그 순간 올라온 감정은 감동보다 부담감이었다. 그나마 곧장 죄책감이 따라붙었던 나는 안 들키려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이 아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좋아하는 감정을 대가 없이 쏟아내는 이 외로운 마음을 내가 얼마나 받아줄 수 있단 말인가. 그날 일기장은 교무실 서랍에서 밤을 보냈고 오랜 후에야 꺼내 읽은 일기 앞에서 나는 땅 속으로 꺼지고 싶은 부끄러움을 맛봐야 했다.
며칠이 지나도 M은 읽었는지 물으러 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일기장 얘기는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때 내 감정을 들켰구나 직감했다. 유년기 상처가 큰 아이는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고 눈치가 빠르다는 정도는 내
경험으로도 알았으니까. 그렇다고 서운해서 팽 돌아서는 가벼운 아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적당해진 간격에 안심하며 M을 대했고, 빨리 돈 벌어서 어머니 식당일을 그만두게 하고 싶었던 M은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저 대학병원 응급실 지원했어요."
"하필 그 힘든 데를. 왜 사서 고생이고?"
"헤헤.. 제일 아픈 사람들이 모인 데잖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이나 ‘좋은 생각’이란 작은 월간지를 보내던 M다운 대답이었다. 간호사가 가장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간호사, 그 당연한 이치를 놓치고 사는 선생에게 10살 어린 제자가 한 방 먹였다. 창피했지만 전화라서 다행이다 생각 중인데 이어서 또 한 방 퍽~하고 강펀치가 날아왔다.
선생님, 예전에 선생님이 제 급식비 대 주실 때 그러셨잖아요.
다음에 돈 벌어서 너도 누구 돕고 살면 된다고. 공짜 아니니까 미안해 마라고요. 그래서 이제 월급 나오면 급식비 후원하는 선배가 되려고요.
선생님이 한 명 추천해 주세요.
하아-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면서 혼자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제자, 어찌 제자로만 남겠는가 말이다.
'어떡하면 너처럼 근사하게 사니. 어쩜 그렇게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거니.'
2년 넘게 연락이 뜸하던 M이 학교로 불쑥 찾아온 건 내가 마흔을 넘긴 봄날이었다. 양악 교정 후 귀여워진 얼굴로 나타난 M이 프리지어 다발을 안기며 말했다.
"선생님은 이 향기 맡을 때가 제일 봄 같다 그러셨잖아요."
(많은 걸 기억하는 녀석. 니 덕분에 몇 년 만에 느껴보는 봄인지 모르겠다)
"저 결혼해요 선생님. 그리고.. 이제 아빠도 용서했어요. 결혼식에도 오실 거예요."
병원을 그만두고 M이 선택한 아름다운 길은 보육원 상주 간호사였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보낸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재현되는 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조금씩 평화를 찾게 됐다고 전화로 알렸었다. 그런데 배변을 받아낼 정도로 악화된 허리디스크 때문에 집에서 요양하다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고, 죽을 때까지 안 보겠다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왕래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봇물처럼 쏟아놓았다. 그리고 함께 가정을 만들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며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M에게서 달콤한 프리지어 향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M은 상처를 치유하면서 꿈을 이뤄가는 아름다운 인생을 내 앞에 선물처럼 펼쳐 보였다. 옛 일기장에서 그러했듯이.
오늘 문학시간에 배운 시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나도 하늘이 사랑해서 외로운 걸까?
내가 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네요, 선생님.
좋은 시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2014년 스승의 날, 부탁드릴 게 있다고 학교를 찾은 M이 앞에 앉았다. 유산을 하고 보육원 아기를 입양하고 싶은데 요즘은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져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아.. 좋은 대학 붙이겠다고 읍소하는 입시 추천서가 전부였던 내 인생에 ‘입양 추천서’라는 따뜻한 글을 쓸 기회를 선물한 제자! 어디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치고 싶다. 불혹을 넘기며 시작된 교사 슬럼프를 단번에 축복받은 교사로 끌어올려준 M. 그녀는 아름답게 사는 법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려고 내 인생에 등장한 스승이다.
상처를 드러낼 줄 아는 용기와, 마음 준 이를 의심하지 않는 신뢰와, 용서로써 행복을 선택하는 지혜와, 생명을 거두는 사랑까지. 살면서 꼭 만나고 싶은 아름다운 덕목을 제자에게서 배우며 알아가는 행복, 나는 축복받은 교사로 늙어가는 중이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게 무엇인지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