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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화 Jun 21. 2023

화장품 사업하겠다는 대표님 뜯어말린 썰

님아, 제발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 한지도 어느덧 3년차, 회사인 성수동 근처에서 패션 룩북 촬영을 업으로 하고 있는 포토그래퍼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에서 화장품을 한 번 만들어서 팔아보려고!
그래서 말인데, 시간 될 때 디자인 좀 해줄 수 있을까?


평소에 친하게 지내고 많이 믿고 따르는 형이라 나는 따로 보수를 받지 않을 생각으로 흔쾌히 'OK'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 형이 여러가지 현재 상황들을 알려주었다.


이야기인 즉, 본인의 스튜디오는 '촬영'에 특화되어있고 같이 동업하려는 사람은 '마케팅'에 특화가 되어있다보니 화장품 제품을 빠르게 생산하여 촬영과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어 판매해보겠다! 라는 계획이었다. 통상적으로 화장품이나 전자제품 등 판매 단계 이전에 제품 사진 촬영, 키비주얼 촬영, 마케팅 SEO 최적화 작업이나 대행사 선정 등의 예산이 수 천만원에서 억 단위에 이르기 까지 하는 것을 감안해볼 때 포토그래퍼 형님의 청사진은 충분히 메리트 있어 보였다.


그래서 형님께서는 '수분크림'을 판매하고 싶다고 했고, 지금 화장품 샘플을 받아서 직원들끼리 발라보고 있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보고 용기와 패키지 디자인을 맡아달라고 한 것. 결론을 우선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드랍되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여 형님은 나에게 20만원 상당의 고급진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만약, 화장품 브랜드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다.(아니면 그냥 해프닝으로 보아도 괜찮다.)


#1. 화장품 판매 전에 알아야 할 것들

기본적으로 화장품은 국내판매보다 해외 판매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마켓 사이즈도 크고 마진이 적더라도 진정한 '박리다매'로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현재는 K-beauty의 광풍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많다.


개중에는 중국, 베트남(동남아), 미국, 유럽 등 마켓 수요가 눈에띄게 높은 지역들이 있다. 우리 회사는 중국에 주로 판매하는 제품들이 많기 때문에 중국을 기준으로 형에게 설명해주었다. NMPA 라고 불리우며, 중국에서 화장품을 판매하기 위해 '위생허가'를 승인받는 절차를 뜻한다. 나는 디자인 담당이라 깊게는 알지 못하지만 중국에 화장품을 판매하려면 이 위생허가를 무조건 받은 뒤에 중국에 수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cGMP(미국 최근 우수화장품제조기준) 이상급의 인증을 받은 제조사여야 위생허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처리해 놓아야 할 것은, 화장품책임판매관리자 를 등록하는것. 그래야 화장품 책임판매업자를 회사가 등록할 수 있다.

우선 형에게 위에 대한 사전 준비 사항등을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현재 제조사는 cGMP나 GMP(KGMP)급이 아닌 일반 iso 수준의 제조사였고, 그렇게 되면 중국 수출이 어려울 수 있으니 제조사를 변경하는 것이 어떨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리하여, 화장품책임판매업 등록과 함께, 해외 수출 등을 고려한다면, 제조 시설의 인증등급 관리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형에게 각인시켜주었다.


#2. 어떤 화장품 용기로 만들 것인가?


이 형님들은 아주 용감하고 빠른 속도로 제품 생산을 진행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생산을 하는 것이 결국은 제조사 입장에서 좋은 점이라 빠르게 협조해 주었으리라 생각했다.(전성분, 핵심 컨셉 성분등에 관한 이야기도 할 말이 산더미였지만, 내 브런치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꺼내려고 한다.) 


화장품 용기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다. 기존 대표님들도 간과하고 지나가는 것은 화장품 용기나 패키지의 형태나 기능보다도, 본인이 원하는(흔히 말해, 꽂히는) 디자인의 용기 및 패키지디자인을 통해 제품을 출시하곤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건 완전한 악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서 제조사 선정과 샘플링, 실제 충포장 단계까진 가지도 않았지만 나에게 용기와 패키지 디자인을 요청했던 것이다. 화장품 용기에도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우선 두가지로 크게 나누면 자체 제작프리몰드 생산이 있다. 자체 제작은 원하는 용기의 모양을 3D 모델링 및 설계를 통해 실제 금형을 만들어서 원하는 용기 모양대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 프리몰드 생산은 화장품 용기업체가 미리 만들어놓은 금형으로 생산된 용기를 이용해 만드는 것이다.  


이미 눈치를 챘을 수도 있지만, 자체 제작으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금형을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인 자유도가 굉장히 높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제품 경쟁력 측면에서 차별화되는 아주 중요한 브랜드 자산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하지만 금형 개발은 실제 사출에 필요한 틀을 직접 개발해야 하기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굉장히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화장품 생산량이 수 만개, 수십만 단위를 넘기는 경우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여 개당 생산단가가 저렴해지는 장점이 있다. 


반면 프리몰드 생산은 용기업체가 무료로 금형을 제공(사실 용기에 금형값이 녹아있..)하기 때문에 초기 개발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빠르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과 소량 구매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요즘처럼 마이크로 브랜드들이 굉장히 빠르게 탄생하는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빠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브랜드도 많기에 전략적으로 선택하기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용기 퀄리티가 그렇게 좋지 못하거나, 퀄리티가 좋으면 용기 단가가 꽤 비싼 제품들이 있다. 게다가 싼것만 찾아다니다간 뚜껑이 헛도는 용기를 사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이것은 실화이다.)


무튼, 이렇게 용기를 만들고 나서 이 용기가 화장품에 아무런 화학적 반응을 거치지 않는지도 테스트 해야하고, 누수 및 누유 체크, 기압 체크, 크랙이나 파손 여부 등도 체크 해봐야 한다. 그리고 후가공도 설정해야 하는데 이 내용은 나중에 용기 관련된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뤄볼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용기(container)가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고, 이제 패키지로 진행하는 것이다.


#3. 제품은 왜 만드나요?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해보겠다는 것은 이해했으나, 그 제품을 왜 만드는지, 그리고 그 제품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한 정의 없이 무턱대고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브랜드'라고 부른다. 브랜드는 저마다 세상에 끼치고싶은 영향력이 있다. 그 가치를 담은 결과물이 '브랜드'이고, 브랜드는 시각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태도, 가치관 등을 모두 반영하게 된다. 


그런데, 단순히 제품을 팔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알고있는가? 우리나라 화장품 브랜드는 최근 7년간 5000개 이상 탄생했고, 그중 2천800개 이상의 브랜드가 폐업했다. 살아있는 절반 중, 산소호흡기를 달고 간신히 버티거나 이미 망했음에도 폐업신고를 하지 않는 브랜드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50% 이상이 망해서 없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일개 브랜드를 만든다는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누구나 경쟁할 수 있으며, 누구나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명확한 목소리를 꾸준히 제공하지 않는 브랜드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그래서 나는 대표님들께, '화장품을 많이 팔기 위해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화장품이라는 매개체로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좀 더 해보시는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되면 네이밍과 브랜드의 모습, 앞으로 가야할 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대표님들과 거의 1시간 반이 넘도록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여기에 모든 내용을 담기엔 글이 너무 지루해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작성했다. 대표님들은 내 얘기를 들어보시고는 "아.. 우리가 너무 아무것도 모른 채 섣부르게 샘플링부터 진행하고 있었네요." 라고 답변하셨다.


결과적으로, 대표님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되돌아가야한다는 큰 깨달음을 얻으셨던 것 같다. 내가 오늘 미팅을 가지 않았더라면 나의 친한 형과 이 대표님들은 샘플링이 끝난 화장품을 제조에 들어가셨을 것이고, 약 3천만원 상당의 생산대금을 지급하고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려는 사람들에게 항상 기본적으로 위의 세가지는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 이야기를 듣고도 세상에 좋은 화장품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일념이 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좋은 화장품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대표님과 형은 나에게 아주아주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그리고 종종 보자고 하셨고, 이렇게 또 새로운 인연이 생김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제가 쓰는 모든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가 쓰는 글에 대해 반박하실 경우, 당신의 말이 100% 맞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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